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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도 담 넘는다'는 불도장, 의원 해장국 별명 붙었던 이유

[왕사부의 중식만담] 화려한 광둥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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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섬은 광둥요리의 꽃이라 할만하다.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인데 천엽으로 만든 것도 있다. 사진은 위가 뚫린 꽃모양의 소매(燒賣·사오마이). [사진 박정배]

산해진미(山海珍味). 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귀한 재료로 상다리 휘어져라 차려내는 요리상을 말한다. 이를 한 그릇에 압축해 담으면 광둥요리 불도장(佛跳牆) 아닐까. 기원설 중 하나는 이렇다. 청나라 사람 정춘발이 푸저우에 복수전(福壽全)이라 불리는 이 요리를 내는 식당을 열었다. 어느 날 그 맛에 반한 문인 중 하나가 ‘항아리를 여니 온통 특별한 향이 피어올라 스님이 도를 버리고 담을 넘겠네(壜啟葷香飄四鄰 佛聞棄禪跳牆來)’라고 읊었다. 여기서 불도장 이름이 나왔다.


돼지·닭·양·오골계·사슴힘줄·샥스핀(상어지느러미)·부레·해삼·전복·죽순·송이·은행·토란 같은 갖가지 재료가 얽히고설켜 복잡한 맛을 낸다. 10일 동안 재료를 준비하고 20시간을 달인다는 식당이 있을 만큼 품이 많이 든다. 개혁개방 뒤 1980년대까지 중국을 방문한 외국 정상 중 이를 대접받은 이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뿐이었단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국빈만찬 식탁에도 나왔다.


광둥요리는 화남지역인 광둥·광시·푸젠·홍콩·마카오 요리를 크게 묶어 말한다. 일대는 고대 중국 역사의 주 무대인 중북부와는 민족도 말도 다른 문화권이었다. 북쪽에 버티고 선 난링(南嶺)산맥이 천연경계선 구실을 했다. 북방민족을 피해서 내려오는 한족을 따라 점차 중원문화가 유입했다. 근세 들어서는 서구에 가장 먼저 문을 연 통상 창구의 하나였다. 홍콩(1997년 영국이 반환)과 마카오(1999년 포르투갈이 반환)를 통해 들어온 서구·인도·동남아 음식과 섞이며 광둥요리 지평이 넓어졌다. 2022년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은 식당은 홍콩만 76개다. 싱가포르가 55개, 서울은 34개다. 사치를 금하던 사회주의 중국 초기 본토는 전통요리 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이를 보존해온 홍콩 덕에 광둥요리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2모작이 가능한 기후, 주강삼각주, 남중국해 덕에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가 차고 넘친다. ‘광저우에서 먹고, 쑤저우에서 입고, 항저우에서 놀고, 류저우에서 죽는 것이 으뜸(食在廣州 穿在蘇州 玩在杭州 死在柳州)’이라는 속담의 배경이다. ‘날짐승은 비행기만 빼고, 네 발 달린 동물은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는 말처럼 시장에는 별의별 식재료가 다 있다. 20년 전 사스 파동 진원지로 찍힌 뒤 엽기식품은 많이 사라졌다. 광둥요리는 해외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청말 인구 폭증과 사회 혼란이 이어지며 광둥·푸젠 사람들 이민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1840년 무렵부터 1940년까지 1200만 명이 떠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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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을 대표하는 갖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불도장. 광둥 대표 보양식이다. [중앙포토]

뭐니뭐니해도 광둥요리에서 점심(点心·딤섬)을 빼놓을 수 없다. 차와 딤섬을 함께 즐기는 얌차(飮茶)문화는 일상이다. 작고 투명한 쟈오(餃), 두툼한 바오(包), 소가 밖으로 삐져나온 마이(賣)에서 파생한 종류가 셀 수 없이 많다. 닭육수에 샥스핀을 넣어 끓인 황란어시(黃爛魚翅), 제비집 수프 연와(燕窩)는 고급요리를 대표한다. 팔보탕·팔보채·팔보반처럼 팔보(八寶)가 붙으면 귀한 재료가 많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소랍(燒腊)은 숙성 고기구이다. 소유저(燒乳豬)는 새끼돼지통구이, 차소(叉燒)는 등심구이, 소압(燒鵝)은 거위구이다. 작자계(炸子雞)는 통닭튀김, 홍소유합(紅燒乳鴿)은 어린 비둘기 튀김이다. 일반 비둘기가 아닌 사육하는 식용비둘기를 쓴다. 백절계(白切鷄·백숙), 야자계(椰子鷄·맑은 훠궈)도 닭고기 요리다. 문창계(文昌鷄)는 닭대가리까지 접시에 올라와 비위 약한 사람들은 놀랄 수 있다. 향우구육(香芋扣肉)은 돼지고기 토란찜, 고노육(古老肉)은 광둥식 탕수육이다. 청증어(清蒸魚)는 최소한의 양념을 넣은 생선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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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식사로는 해산물·고기·채소를 넣어 끓인 정자죽(艇仔粥), 삭힌 오리알로 만든 피단죽(皮蛋粥), 새우만두와 하늘하늘한 면이 어울린 운탄면(雲吞面) 등이 있다. 노화정탕(老火靚湯)은 위를 보호하기 위해 식전에 마시고, 동과충(冬瓜盅)은 속을 파낸 동과 속에 갖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다. 채소 요리도 흔한데 박황고(拍黄瓜·오이무침), 공심채(空心菜)볶음 등이 있다. 귀령고(龜苓膏·거북이 등 성분이 들어간 젤리), 두화(豆花·고명 올린 연두부), 쌍피내(雙皮奶·우유푸딩) 등은 디저트로 많이 먹는다. 식빵 사이에 다진 새우를 넣어 튀긴 면포하(面包蝦·멘보샤)는 이제 한국에도 흔하다. 현지에서는 주로 하다사(蝦多士)라고 부른다. 박정배 음식평론가에 따르면 100여 년 전 홍콩에서 처음 등장했다. 서양의 식빵과 동양의 새우가 만나 일상음식이 된 셈이다.


광둥요리의 한 축에 객가요리(客家菜)가 있다. 중원의 전란을 피해 친족과 마을 단위로 남쪽으로 내려온 한족이 객가(客家)다. 이들은 스스로 고립을 택해 천 년 넘게 고유 언어와 문화를 유지해왔다. 두부 속을 파내고 소를 넣은 객가증양두부(客家蒸釀豆腐), 삼겹살찜인 매채구육(梅菜扣肉), 염장 찜닭인 염국계(鹽焗鷄) 등이 그들 음식이다.


얘기 하나 더. 1989년에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이뤄졌고, 92년에 한국과 중국이 수교했다. 이전까지는 아무나 중국에 갈 수 없었고 한국에서는 광둥 출신 요리사를 만나기 힘들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1976년 플라자호텔에 문 연 중식당 ‘도원’이 광둥요리를 내놨다. 79년 신라호텔에 생긴 ‘팔선’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중식 셰프를 우회 초빙한 덕이다. 내가 도원에 입사한 1982년에 샥스핀찜은 있었지만 불도장은 없었다. 80년대 후반 이 메뉴가 등장하자 불교계가 발끈하기도 했다. ‘스님이 고기를 먹자고 담을 넘는다’는 의미 때문이다. 지금은 웃고 넘어갈 일이지만 그럴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유력 인사들을 겨냥한 판촉전도 치열했다. 여의도 전경련회관의 ‘도원 분점’, 팔선이 기술 지원한 63빌딩 ‘백리향’은 정·재계 인사들 사랑방이었다. 이들 식탁에 불도장은 기본이었다. ‘국회의원 해장국’이란 별명이 붙었던 이유다. 지금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정리: 안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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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육성 중식당 ‘진진’ 셰프. 화교 2세로 50년 업력을 가진 중식 백전노장. 인생 1막을 마치고 소일 삼아 낸 서울 서교동의 작은 중식당 ‘진진’이 2016년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으며 인생 2막이 다시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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