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향과 고기 식감…버섯의 숨은 맛, 미식가는 안다
충북 괴산군 ‘다래정’의 자연산버섯전골. |
이탈리아 북부 지역 알바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마침 10월이라 화이트트러플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트러플(송로버섯) 생산자들의 자랑터인 축제는 흥겹고 왁자지껄했다. 축제장에서 주머니가 허락하는 정도의 적당한 트러플 덩어리를 사서 레스토랑에 가니 약간의 비용을 받고 스테이크나 파스타, 어느 요리에든 트러플을 얇게 쓱쓱 갈아 올려준다. 치즈, 마늘, 머스크 등 은은하고 복합적인 향을 뿜어내며 어떤 요리에 올려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요리 초년생 시절 음식 재료로 자연송이를 처음 접한 날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자연송이는 본연의 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생것으로도 많이 먹지만 싱싱한 상태의 자연송이에 열을 가하면 진가가 드러난다. 가장 싱싱한 횟감용 생선을 조림이나 찜으로 조리하면 날로 먹을 때보다 신선함이 훨씬 더 크게 와닿을 때가 많듯 자연송이 또한 마찬가지다. 그저 한 두 쪽 저며 전골에 넣었을 뿐인데,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방안 전체가 신선한 흙내음이 가득 차 향의 안개 속에 빠진 듯했다.
서울 서초구 ‘청주버섯찌개’의 버섯찌개. |
버섯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채취 방식과 향의 강렬함이다. 당연히 양식이 아닌 자연산일수록, 깊고 그윽한 향과 독특한 잔향을 머금을수록 고가의 버섯으로 친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붙이고 싶다. 바로 ‘수분’이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은 버섯을 꼽자면 지인의 시골집 고목 아래서 딴 이슬 머금은 표고버섯이었다. 흔하게 접해 왔던 표고버섯이지만 그날 아침의 표고버섯은 자연의 생기와 촉촉함이 사뭇 달랐다. 그렇게 채취한 귀한 버섯 일부는 볶고 나머지는 국에 넣어보았다. 씹을수록 풍성한 ‘물’이 느껴졌던 경험은 이후 좋은 버섯을 고르는 기준이 됐다.
균류(곰팡이)의 자실체인 버섯은 외부에서 유기물을 흡수하여 영양을 얻어 살기에 식물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특징을 보이는 식재료다. 채소는 가열하면 물러지고 고기는 단단해지면서 물성이 변하는데, 버섯은 키틴질로 되어 있어 식감의 변화가 없는 편이다. 오히려 고기 식감과 비슷해서 육류를 피하는 종교인이나 비건(채식주의자)들의 고기 대체품으로 애용된다.
수분 많고 식감이 일정하고 향은 풍성하고 독특하니 버섯을 만끽하기엔 가을이 그만이다.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요즘 먹기 좋은 따뜻한 버섯 국물요리 맛집을 추천해본다.
전북 무주군 ‘산들애’의 능이버섯전골. |
청주버섯찌개
버섯의 종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식당이 화려한 것도 아니다. 강남 뒷골목에 이렇게 소박한 버섯찌개집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말린 표고버섯에 얼큰한 다데기, 넉넉한 다진마늘, 감자, 대파 등을 넣어 즉석에서 끓여 먹는 버섯찌개다. 버섯찌개 단일 메뉴만 취급하며 세월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냄비, 연륜의 사장님은 노포의 맛을 납득하게 해준다.
서울 서초구 언남11길 22-14 / Tel 02-576-1255 / 버섯찌개 9000원
산들애
한 그릇에 담긴 다양한 버섯의 담음새가 압도적이다. 전국에서 공수한 귀한 버섯들이다. 자연산 능이, 백만송이, 표고, 은이, 목이, 황금팽이, 팽이, 느타리, 노루궁뎅이 등 평소에는 한 가지도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유기농 버섯과 소고기, 그리고 각종 채소가 덕유산 단풍 마냥 냄비 가득 흐드러져 오감을 즐겁게 한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 만선1로 94 / Tel 063-324-1611/ 능이버섯전골(中) 4만8000원, 능이버섯샤브샤브(1인) 2만1000원.
다래정
버섯전골 모양새는 평범하다 못해 썰렁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끓인 뒤 맛보는 국물맛은 은은한 품격의 깊은 맛이다. 유기농 도시 괴산과 어울리는 자연산 버섯으로 끓인다. 반찬으로 나오는 소간버섯은 신기하고 쫄깃한 식감을 선사한다. 식당에서 내려다보는 동진천의 풍경도 밥맛을 더 보탠다.
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진천길 165 / Tel 043-832-1246 / 자연산버섯전골 8만원.(3~4인용. 2인 경우 5만원)
글·사진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