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기자'의 흑백요리사 '한식 파인다이닝' 도전기
'흑백요리사' 백수저 김도윤 셰프
3년 연속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한국 식재료 발효·건조 풍미 특징
서울 신사동 윤서울 매장 전경/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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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기자가 직접 매장을 방문해 자비로 식사를 한 뒤 작성했습니다. 기자의 취향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미쉐린 원 스타
우리나라엔 음식점이 몇 개나 있을까. 국세청 사업자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음식점 사업자 수는 73만명에 달했다. 한 사업자가 여러 개의 음식점을 운영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이건 '최소 수치'다. 이 중 최고 식당의 대명사인 '미쉐린 스타'를 받은 곳은 올해 기준 1스타 식당이 25개, 2스타 식당이 9개로 불과 34개 뿐이다. 미쉐린 스타를 받을 확률이 0.004%인 셈이다.
그런 만큼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방문하기 어려운 곳이 미쉐린 스타 식당이기도 하다. 별을 받는 순간 예약이 어려워짐은 물론, 한 끼 가격도 만만치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방문하려는 곳이 '파인 다이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 끼 가격이 일주일치 식비다. 기념일쯤 돼야 시도할 수 있다. 어딜 방문해 볼 지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농심과 협업한 신메뉴를 내놓은 김도윤 셰프/사진제공=농심 |
올해 최고의 예능 프로 자리를 굳힌 '흑백요리사'에 등장한 100명의 셰프 중 백수저로 출연한 김도윤 셰프에게 눈길이 갔던 건 수많은 양식·중식 셰프 사이에서 그가 초지일관 한국의 맛을 고민해 왔기 때문이다. 승패보다는 '내 말린 식재료의 맛'에만 신경쓰는 모습이 오히려 호감이었다. 그는 백수저 셰프의 첫 대결인 2라운드에서 패해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폴리맛피아'의 리조또보다, '트리플스타'의 코스보다 궁금했던 건 김도윤 셰프의 요리였다.
김도윤 셰프의 '윤서울'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연속 미쉐린 1스타를 받은 한식 파인다이닝이다. 한식은 서양식 코스가 기본인 파인다이닝으로 해석하기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한상차림' 안에서 다양한 조화를 즐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한식을 흉내낸 서양식 코스 요리에 머무르기 일쑤다. 윤서울의 코스는 '한식'이 아닌 '한국 식재료'에 초점을 맞췄다. "이게 한식이야?" 싶다가도 "이게 한식이지" 라는 이해가 따라온다.
미쉐린가이드에서는 윤서울에 별 하나를 주며 '윤서울의 한식은 익숙하면서도 과감한 도전이 느껴지는 독특함이 있다. 특히 자가 제면 들기름 면과 자체 숙성한 생선을 활용한 요리에서 셰프가 추구하는 한식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다. 기존의 고급스러운 한식의 매력과는 다른, 정교하면서도 거침없는 한식의 매력을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고 소개했다. 치열한 예약 전쟁을 거쳐, 지난달 30일 윤서울에 방문할 수 있었다.
K-파인다이닝이란
첫 코스인 '한입거리'에선 말린 한치, 피스타치오, 육포 등 건어물 6종이 제공된다. 건어물의 풍부한 맛을 즐기기엔 다소 작은 '한 입'이다. 이후 사용될 재료들을 엿봤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고추장에 절인 삼배체굴은 '비리고 물컹한 굴'에 대한 편견을 싹 사라지게 하는 맛이었다. 굴 위에 얹은 얼린 올리브유의 풍미가 일말의 비린맛까지 싹 잡아준다.
먹어본 것 중 가장 큰 굴이었다/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
장어 타르트와 한우육회 타르트, 된장죽과 계란찜을 거치고 나면 윤서울의 시그니처 메뉴인 들기름면이 나온다. 일반적인 면의 형태가 아닌, 두껍고 넓적한 면을 돌돌 말아내 칼로 썰어 먹는 방식이다. 면에 들기름을 뿌린 심플한 요리지만 국산 밀의 고소한 풍미와 씹힘을 즐길 수 있다. 이날의 '베스트 2'.
윤서울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들기름 면/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
다음 요리엔 한우 등골과 캐비어에 커스터드 크림을 곁들였다. 등골의 부드러운 식감과 캐비어의 짭짤한 맛을 커스터드 크림이 감싸 주는, 동서양의 조화 같은 맛이었다. 다음으론 가리비와 관자, 단새우 등 해산물과 민어전 등이 한입거리로 나오는데, 윤서울이 원래 '한식주점'이었다는 걸 깨닫게 해 주는 '안주식 메뉴'다.
윤서울은 현재 자리로 이전하기 전에는 '한식 요리주점'을 표방했다/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
안주가 지나가면 본격적인 메인 코스의 시작이다. 김도윤 셰프가 재해석한 '만두'는 포르치니 버섯과 말린 해산물로 낸 국물에 만두소를 넣고 만두피를 위에 덮은, 이불 만두(?)다. 만두광인 기자의 입에는 이 만두가 오늘의 베스트였다. 오묘한 감칠맛이 가득한 국물과 실크같은 피의 식감은 다른 곳에서 맛본 적 없는 윤서울만의 맛이다.
다음 코스로 나온 생선구이와 수육이 아쉬워질 정도로 만두의 인상이 깊었다. 메인은 숯불과 액화질소를 번갈아 사용해 구운 한우 스테이크다. 매우 잘 구워져 맛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메인이 해산물이나 버섯 등이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베스트 메뉴'였던 만두/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
메인 코스가 끝나면 '한식'답게 밥과 국물이 제공된다. 이 국물도 30여 가지의 해산물과 채소를 넣고 우려냈다. 보양식을 먹는 듯한 깊은 맛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엔 아이스크림 3종과 과자 3종으로 입가심을 한다.
이날은 가지·더덕장아찌·신선초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제공됐는데, 매콤한 고추장 풍미가 감도는 더덕장아찌 아이스크림이 백미였다. 식사가 마무리되면 윤서울의 면요리 전문 매장인 면서울에서 판매하는 들기름면을 밀키트 형태로 선물해 준다. 현재 컬리에서 판매되는 밀키트와 동일한 제품이라는 설명이다.
왼쪽부터 각각 구운 가지, 더덕장아찌, 신선초로 만든 아이스크림/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
사람은 늘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 익숙함은 제자리에 머무르는 것이며, 새로운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다. 물론 평범한 직장인이 한 끼에 한 달치 식비가 들어가는 레스토랑을 자주 방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국에 평생을 살면서도 알지 못했던 한국 식재료의 맛을 알게 되는 만족도는 여행 못지 않다. 아니, '미각의 여행'이라 부를 만하다. 윤서울이 3년 연속으로 '별'을 받은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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