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차이는 무엇일까?
날이 더워질수록 생각나는 음식, 바로 살얼음이 둥둥 떠 있는 냉면입니다. 쫄깃한 면을 몇번 씹다가 그릇을 들고 달콤새콤한 육수를 시원하게 들이키면, 잠시동안 더위가 저 멀리 떠나간 듯한 기분이 들죠. 또 냉면은 유독 매니아가 많은 메뉴이기도 합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각자 냉면에 대한 확실한 기호와 취향을 갖고 있죠. 이런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냉면은 꽤 오래 전부터 우리의 역사와 곳곳의 지역들과 매우 깊숙한 관계를 맺으며 큰 인기를 누려 왔기 때문이죠. 익숙하지만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음식, 냉면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아봤습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차이는 면발의 재료다
많은 분들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차이로 전자는 육수에 말아먹는 것, 후자는 양념에 비벼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실 둘의 근본적인 차이는 면발의 재료에 있습니다. 평양냉면은 메밀을, 함흥냉면은 감자전분을 주 원료로 사용합니다. 이 때문에 평양냉면은 질기지 않은 반면, 함흥냉면은 쉽게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질긴 편이죠.
북한에선 냉면을 가위로 자르지 않는다
우리는 냉면이 나오면 가위로 두 번 정도 면을 자른 다음 면을 풀어 먹곤 하는데요. 북한에서는 냉면을 가위로 자르는 걸 낯설게 느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면에는 장수의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레드벨벳 예리가 한 TV 예능에 나와 공연차 평양을 방문하여 옥류관에서 평양 냉면을 먹던 중 가위를 달라고 하자 '이렇게 하면(잘라 먹으면) 촌스럽습네다'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에피소드를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고종은 냉면으로 불면증을 달랬다
냉면과 관련된 역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왕이 고종입니다.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무더운 여름밤 야참으로 냉면을 즐겼다는데요. 고종의 8번째 후궁인 삼축당 김씨가 전한 바에 따르면, 고종황제가 즐긴 냉면은 배를 많이 넣어 담근 동치미, 그리고 편육과 배, 잣을 위에 가득 덮어 장식하는 것이 특징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를 숟가락 한 입 크기의 초승달 모양으로 배어 면을 소복하게 덮어 배의 단물이 동치미 국물과 어우러지게 하였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 음식이었다
우리나라는 배달 음식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유명한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 음식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냉면입니다. 이는 기록에 기반한 것인데요. 1768년, 고창 출신 실학자 황윤석이 7월 7일 자신의 일기 [이재난고]에 "과거 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평양냉면을 시켜 먹었다"고 적어둔 자료가 있습니다. 이에 판단하건대, 우리나라 배달의 역사는 최소한 250년은 넘었다는 말이 되겠죠. 이외에도 조선 말기 문신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따르면 11살에 임금 자리에 앉은 순조가 즉위 초 달구경을 하던 중 냉면을 사오라고 시켰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밀면의 뿌리는 물냉면이다
부산에 가면 꼭 먹고와야 하는 음식으로 거론되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밀면입니다. 그런데 밀면을 먹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냉면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실텐데요.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실 6·25 전쟁 이후 부산으로 월남한 함경도 사람들이 '밀국수로 만든 물냉면'이 바로 밀면입니다. 실향민들이 본래 냉면에 쓰던 재료를 구하기 힘들어 당시 미군 원조품이었던 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냉면의 면발을 만든 것이죠. 냉면의 계보에서 파생돼 지역성이 결합된 음식이 밀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양에선 '국수'하면 냉면이었다
1911년에 '평양조선인면옥조합'이 생길 정도로 일찍이 평양냉면은 평양에서 대중적인 음식이었습니다. 1937년 8월 1일자 [동아일보]에서는 평양에만 80여 개에 이르는 냉면집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음식 프로그램을 제작해온 백헌석, 최혜림 PD가 쓴 [냉면열전]에 따르면, 당시 평양에는 '평양냉면집'이라는 간판이 없었다고 합니다. 동네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국수였기 때문에, 냉면을 파는 음식점이 대부분 그냥 ‘국숫집’이라고 불리었다네요.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은 평양의 국수가 서울로 전해오면서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본래 겨울 음식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찬반의 여지가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냉면은 본래 겨울 음식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역사적 사료에 기반한 것인데요. 우리나라 세시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1894)에서는 냉면을 '겨울철 시식으로서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은 냉면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황해도로 부임하는 친구에게 장난하듯 써준 시에도 눈이 쌓인 겨울 방안에서 냉면을 먹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죠. 이후 얼음 공장이 생기면서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냉면의 인기로 1926년 '냉면'이라는 소설도 나왔다
평양냉면이 1920년대 초 서울로 진출하면서 냉면 전문점이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서울은 말 그대로 냉면 홀릭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냉면]이라는 소설까지 발표되었으니까요. 소설가 김랑운이 [동광(東光)] 제 8호에 발표한 이 소설에는 신문사 기자 순호가 무더운 여름 냉면 한 그릇을 먹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한국의식주생활사전]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는 모던보이들이 저녁에 종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낙원동 일대에서 갈비와 술을 먹은 다음 물냉면을 먹는 풍속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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