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 다음으로 많이 먹은 식용 곤충
메뚜기 /연합 |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 '이흥걸'이란 친구가 있었다. 60명이 조금 넘는 반에서 45번이었던 나보다 머리가 한 개쯤 더 커 반에서 제일 마지막 번호를 차지했던 친구다. 경주와 포항 사이에 있는 '사방'이라는 읍 단위 동네 출신이었다.
바로 옆엔 면 소재지인 '안강'이 있는데, 이 지역은 6.25전쟁 때 한국군과 북한군이 대규모 전투를 벌였던 '안강 전투지'로 유명하다. 작고하신 나의 부친 또한 참전용사로 이 전투에서 북한군과 싸웠고, 내가 졸업한 경주고등학교 선배들은 '구국 일념'에 따라 학도병으로 참전해 엄청나게 전사했던 곳이다. 그래서 경주고엔 경상북도에서 가장 유명한 '학도병 참전비'가 있고, 고등학생 시절 해마다 6.25 때가 되면 헌화하고 묵념도 했다.
안강은 경주와 포항 사이의 평야 지대여서 안강평야로 불렸고, 벼농사로 제법 유명한 곡창지대다. 어린 시절 동네 어른들은 이곳을 '안강 뜰'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신라가 도읍을 경주로 정할 때 안강평야도 중요한 요인이 됐을지 모른다. 또 지방 소도시에서 평야라고 부를 만한 곡창지대를 가진 것은 농경시대에 큰 복이었을 것이다. 나눔과 베풂을 상징하는 '경주 최부자' 얘기도 그냥 나온 것은 아닐 테고.
갑자기 경주 주변의 평야와 중학교 시절 친구를 소환한 것은 먹거리 문화에서 아주 특이한, '식용 곤충' 메뚜기 때문이다. 메뚜기는 한국에서 번데기 다음으로 많이 먹었던 식용 곤충이 아닐까 싶다.
번데기는 술집에 가면 안주로 종종 등장하고, 겨울이면 포장마차에서 팔기도 했지만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친척들이 누에를 부업으로 길렀기 때문에 번데기의 일생을 잘 알기 때문이다. 꼬물꼬물 기어 다니며 뽕잎을 갉아 먹는 누에들의 소리는 마치 잔잔한 빗소리 같았다. 이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그러나 메뚜기의 기억은 정반대다. 앞에서 말한 흥걸이의 도시락 반찬 때문이다. 그때까지 메뚜기를 여러 번 봤지만 음식으로 접한 건 처음이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자 교실 뒤쪽에서 '와~' 하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메뚜기 반찬"이라며 고함을 질렀다. 흥걸이 주변으로 친구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아마 신기해서 그랬을 것이다.
나도 젓가락을 들고 다가갔다. 얼핏 보기엔 빨간 멸치 같았다. 흥걸이 엄마가 멸치처럼 프라이팬에 볶은 것 같았다. 입에 넣어 보니 질감과 식감이 바삭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맛이 좋았다. 고소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아주 독특했다.
까마득한 기억이지만 60명이 넘는 학급에서 흥걸이의 인상과 이름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메뚜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음식만큼 단단한 추억의 징검다리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전북 완주군 고산자연휴양림일대에서‘2018 완주와일드푸드축제'에서 메뚜기 튀김을 바라보는 어린이. 2018.10.7 /완주군 제공, 연합 |
어른이 된 후 메뚜기가 소환된 일이 또 있는데, 성경의 구약에 나오는 메뚜기떼 얘기다. 출애굽기 10장을 보면 하나님이 이집트에 내린 메뚜기떼의 재앙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특히 15절엔 "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됐으며,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의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란 구절이 있다
바로 앞의 9장 25절을 보면 이집트는 이미 7번째 재앙으로 받은 우박 때문에 산천초목이 엄청난 피해를 본 상태였다. 그런데 메뚜기떼까지 몰려와 그나마 남아 있던 채소와 함께 푸른 것들을 죄다 먹어 치웠으니 온통 초토화됐을 것이다.
'그까짓 곤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메뚜기가 한 마리일 때다. 메뚜기가 수억 마리로 떼를 지어 다니면 얘기가 달라진다.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다. 암컷 메뚜기 한 마리가 한 철에 300개의 알을 낳기 때문에 메뚜기떼는 하늘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군집을 이루고, 새카맣게 떼 지어 다니며 눈앞의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특히 크기가 어른 손가락만 한 사막메뚜기는 자기 몸무게의 2배 정도나 되는 작물을 먹어치운다고 한다. 애벌레마저 어른 메뚜기만큼 먹는다고 하니 남아나는 게 없다.
비교적 최근인 2023년엔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아프가니스탄이 식량난을 하소연했고, 그밖에 이탈리아, 파키스탄, 중국 등도 국가적 재난이라고 할 만큼 메뚜기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급기야 중국은 파키스탄 접경에 메뚜기의 천적인 오리를 10만 마리 풀어 해외토픽에 올랐다. 오리 한 마리가 하루에 200마리의 메뚜기를 잡아먹으니 효과적인 대책이다. 이 밖에도 메뚜기떼로 인한 재난은 수없이 많다.
어느덧 여름이 왔으니 메뚜기떼가 다시 창궐할 개연성이 높다. 메뚜기는 날씨가 더울수록 더 많이 창궐한다고 한다. 하지만 '메뚜기도 한 철'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이 말은 메뚜기의 생애가 아주 짧아서 생겼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짧은 순간을 빗대어 말할 때도 쓴다. 그런데 만약 이 말이 식량난을 우려할 정도로 일부 국가에서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면 당연히 그 '한 때'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흥걸이가 싸 왔던 바삭한 메뚜기 반찬도 희미해져가는 추억이 될 것 같다. '착한 메뚜기'와 '나쁜 메뚜기'로 구분하려는 마음 또한 좋은 추억을 잊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일 것이다. 메뚜기떼의 재난에도 불구하고 내 어린 날의 추억이 그대로 아름답게 남아 있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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