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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특별히 살찌는 음식 없다, 양의 문제일 뿐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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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간에는 탄수화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다이어트의 적,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이니 하면서다. 심지어 마약에나 쓰는 ‘중독’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한다. 주로 설탕 등 단 음식과 밀가루(빵), 백미(쌀밥)가 그 대상이다. 우리가 수백 년 먹어온 이런 음식에 중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과연 옳은가.


각설하고 어디 살을 찌게 하는 게 이들 탄수화물뿐이랴. 단백질, 지방을 많이 먹어도 당연히 살이 찐다. 무엇을 먹든 남아도는 것은 모두 지방으로 쌓이기 때문이다. 그럼 살이란 지방인가? 맞다. 몸이 부풀어 오르듯 찌는 살은 지방 덩어리다.


식물과는 달리 동물에서는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에너지의 저장형태가 아니다. 단, 단백질은 운동과 근력에 필요할 때만 근육질로 쌓이지만 필요 이상으로는 축적되지 않는다. 탄수화물은 아주 소량 간이나 근육에 글리코겐의 형태로 저장되긴 하지만 에너지 공급이 부족할 시 잠시 이용될 뿐, 살찌는 것 하고는 관계가 없다.


밥을 많이 먹는다는 뜻은 뭘까. 식사량이 많다는 뜻도 되지만 우리에게는 주식인 쌀(혹은 밀가루)과 같은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다는 뜻도 된다. 가장 살찌게 하는 원인이다. 단, 남아돌도록 과잉으로 먹어준다는 전제가 따르긴 하지만.


그러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중 어느 쪽이 더 살찌게 할까. 많이 먹으면 뭐든 다 똑같다. 물론 지방이 단백질과 탄수화물보다 에너지 함량이 2배 이상 높아 쉽게 살찌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실제 지방은 그렇게 많이 먹지 않는다. 먹기가 거북하고 주식으로 먹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비만에의 기여분은 그렇게 높지 않다. 하지만 지방함량이 많은 육류나 튀김 종류를 특히 좋아할 경우는 그럴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그럼 요즘 유행인 지방으로 대부분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살을 빠지게 하는 이유는 뭔가. 적게 먹기 때문이다. 식단을 보라. 그게 먹을 음식인가. 한 끼 두 끼는 견디지만 기름 덩어리를 매끼 먹을 수 없으니 고역으로 먹는 둥 마는 둥 하니 살이 빠지게 되어있다. 신봉자들은 케톤체가 어떻고 하지만 말장난이다. 에너지원으로 지방을 이용하려면 모두 케톤체로 변해 대사되기 때문에 특별할 것도 없다. 당뇨 환자는 포도당을 잘 이용하지 못해 에너지는 보통 지방에서 얻는다. 해서 혈중 케톤체의 농도가 극도로 높다. 케톤체는 혈액을 산성으로 변화시키는 물질이라 농도가 지나치면 몸에 해롭다. 혈액의 점도를 높여 혈액순환을 나쁘게 해 문제를 일으킨다. 모세혈관이 많은 신장, 눈, 말단(당뇨발) 등 여러 질병에 원인을 제공한다.


이렇게 탄수화물을 무리하게 기피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두뇌 활동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혈액 속에 일정 이상의 포도당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뇌에 탄수화물을 공급하기 위함이다. 조금 피곤하면 ‘당 떨어졌다’고 엄살을 피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혈중 포도당농도가 낮아질 경우는 체단백질이 분해되어 포도당으로 전환된다. 근육의 위축이 동반된다.


탄수화물 자체가 비만이나 성인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섭취량과 관계가 있다. 그럼 왜 과잉 섭취하는 모든 음식이 다 지방으로 변할까. 적은 양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저장 욕구가 인간의 DNA 속에 본능으로 잠재해 있다. 식량 사정이 어렵던 시절 식사는 정기적이지 않았고 있을 때는 포식하고 굶을 때는 언제 먹을지 기약이 없었다. 그럴 때를 대비해 지나칠 정도로 비축하려는 본능이 우리의 세포 속에 입력돼있다.


그렇다면 적게 먹어도 살찐다는 사람은 뭔가. 물만 먹어도 살찐다고? 거짓이다. 단 에너지 이용의 효율적인 면은 있다. 유전적 요소도 있고 건강상태, 심지어 대장 속 미생물의 영향까지도 들먹이면서 장구한 이론을 펴는 부류도 있다. 어쨌든 보편적 이유는 ‘인풋’과 ‘아웃풋’의 밸런스다.


우리가 못살던 시절 비만 체질로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면 부러워했다. 마치 그걸 부의 상징처럼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람을 의지가 약한 아둔한 미련탱이로 취급한다. 그래서 누구나 살 빼려고 고군부투다. 눈물겹게, 아니 목숨을 걸 정도로. 설문조사에 의하면 20~30대 여성 직장인 열 명 중 아홉 이상은 스스로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94%, 남성은 77%가 살을 빼야 한다는 대답이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60% 정도는 다이어트 강박증에 시달린다고 밝혔다. 다이어트 생각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는다, 수시로 몸무게를 잰다, 폭식과 굶기를 반복한다, 섭취 열량을 일일이 점검한다는 등이다.


다이어트의 목적에 대해 여성은 날씬하고 멋진 몸매를, 남성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극히 정상인데도 자기는 살쪘다고 우기면서 다이어트를 들먹인다. 이에 집착하다 보니 거식증이 생겨 섭식장애가 오기도 한다. 청소년 사이에 ‘프로아나’가 유행이고 일부 약물로 식욕을 억제하며 경쟁적으로 ‘뼈말라, 개말라’ 등 속명으로 등급을 매겨 용맹정진한다는 소문이다. 일종의 병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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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회 분위기 탓에 황제다이어트, 디톡스다이어트, 허니다이어트 등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언뜻 설명이 되지 않는 온갖 다이어트 법과 레시피가 판을 친다. 그동안 수만 가지의 다이어트법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다이어트 산업이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선무당도 안되는 어중이들이 이에 편승해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하며 소비자를 갈취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비만은 의료사업 측면에서 보면 이상적인 질병이다. 효과적으로 치료가 안 되면서 일생 치료하고자 노력하는 우려성 질병에 가까우니까.


인터넷을 뒤지니 해독쥬스, 레몬디톡스 하면서 체내의 독소를 제거해야 살이 빠지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다는 등 허위선전이 도배했다. 간헐적 단식이니, 황제다이어트니 하는 에너지공급을 제한하는 살 빼기는 그래도 조금 납득이 가지만 디톡스하고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조사해 보니 밥 먹는 것은 줄이고 해독쥬스로 버티는, 에너지 공급을 제한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배터지게 먹고 살 빼는 방법은 없다. 비만의 원인은 과식일 뿐. 시중의 지방분해 약침과 복부주사? 할 말을 잃는다.


별별 다이어트로 체중이 줄어들어 즐거워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체중으로 되돌아와 실망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먹은 게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현상을 요요라 하던가? 인간의 세포는 개체보다 더 현명하다. 주인이 자기를 굶긴 경험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가 영양성분이 들어오면 또 굶길 때를 대비해 에너지를 과도하게 비축하려는 본능이 있다. 대사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원한 맺힌 그때의 재발에 대비해 절약 모드로의 전환이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 세포에는 원래 그런 성질이 있다. 그래서 체중감소를 위해서는 먹으면서 양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다이어트는 식사량을 줄이거나 운동으로 과잉의 열량을 소모하는 방법밖에 없다. 아니면 소화가 느린 통곡이나 거친 음식, 아예 소화가 되지 않으면서 포만감만 느끼게 하는 까갱(식이섬유)이 칠갑인 풀만 먹든가. 자주 권장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실행이 어렵다.


결론은 다이어트 하겠다고 무리한 방법을 쓰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거. 어설프게 했다간 ‘몸 버리고(요요)’, ‘마음 버리고(자신감)’, ‘돈 버리고(비용)’라는 3종 세트의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사실 명심하자. 적당한 비만이 오래 살고 뇌경색도 가볍게 앓는다는 통계도 있다 하니 너무 살 빼는 데에만 올인 할 일은 아닌듯하다.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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