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아닌 정성과 진심의 농도 담아
서울의 프렌치 비스트로 세 곳: 꼼모아(강남), 라따뚜이인서울(용산), 라씨에트(서래마을)은 각각 섬세한 요리와 아늑한 분위기로 프랑스의 맛을 전한다.
서울 강남구 ‘꼼모아’의 가리비볼오방. |
유서 깊은 종가의 종부님들을 만나 인터뷰를 여러 차례 한 적이 있었다. 흔히 ‘종가’ 하면 제사 상차림이 먼저 떠오르기에, 종갓집 밥상은 잔치나 제사와 같은 의례 음식처럼 거한 상차림을 마주할 것 같은 상상이 들곤 한다. 인터뷰가 있던 어느 날, 예정에 없었던 모 종갓집의 일상 밥상에 마주 앉아 식사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종갓집이라는 이름 아래 품고 있던 이미지와 달리 수수한 밥상은 여느 가정집과 다름없었다. 오히려 간결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하나하나 스며있는 차림이 옛날에 먹던 추억의 밥상을 떠올리게 했다. 손수 담근 된장으로 끓인 국은 인위적인 맛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맛으로 깊은 여운을 남게 했다. 빠르고 간편함이 미덕으로 통하는 시대에서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꿋꿋하게 전통과 자연의 조화, 그리고 수제의 가치를 존중하는 프랑스 음식도 이와 유사한 느낌을 갖지 않을까?
서울 용산구 ‘라따뚜이인서울’의 오븐에 구운 가리비그라탕. |
프렌치 요리라고 하면 허리 꼿꼿이 펴고 푸아그라가 들어간 음식을 포크와 나이프 여러 개 놓고 즐길 것 같은, 격식 있는 문화라는 이미지가 있다. 얼마 전 1800년대 후반 프랑스 배경의 ‘프렌치 수프’라는 요리 테마 영화를 봤다. 사랑하는 연인이자 동료인 두 요리사와 귀족 미식가들이 나온다. 페이스트리 안에 여러 채소를 넣은 대표적인 프랑스 요리인 ‘볼오방(Vol-au-vent)’부터 신선한 재료를 위한 텃밭 관리까지, 요리에 관한 디테일이 드러나는 영상이 많았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불필요할 정도로 화려한 코스만이 손님 접대용이라고 생각하는 유라시아 왕자에게 평범한 프랑스 가정식 국물 요리인 ‘포토푀(Pot-au-Feu)’를 준비하는 장면이었다. 한국 영화 ‘식객’에서 주인공 성찬이 음식 대결에 궁중 소고기 요리가 아닌 기본기 확실한 ‘육개장’을 선보였던 장면처럼, 음식의 깊이는 화려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소박함 속에 담은 정성과 진심의 농도임을 새삼 깨달았다.
서울 서초구 ‘라씨에트’의 통오리콩피. |
‘비스트로’는 소박한 식사와 술을 파는 규모가 작은 프랑스 식당을 의미한다. 프랑스 음식이 전통을 잘 기록해 체계화시켜놨기에 세계적으로 요리의 기본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스트로’라는 용어가 이제는 이탈리안, 아메리칸, 심지어 코리안 뒤에도 붙어 편하게 음식과 술을 즐기는 공간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그래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들이 정말 ‘비스트로스럽다’ 라고 하는 곳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규모가 크지 않아 셰프의 손맛과 눈길을 마주하기 좋아야 하며, 집집마다 반찬 맛이 다르듯 같은 음식이라도 그곳만의 개성이 묻어나야 한다. 서울에서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며 소신 있게 프렌치 비스트로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곳을 소개한다.
꼼모아
해방촌의 터주대감으로 강남에도 새 매장을 열었다. 이곳을 이끄는 김모아 셰프의 요리는 무척 섬세하다. 파테, 에스카르고, 어니언수프, 볼오방, 비프웰링턴 등 프렌치 비스트로를 대표하는 요리는 어느 것을 주문해도 프랑스에 온 듯한 만족을 안겨준다.
서울 강남구 선릉로135길 29 SH빌딩 1층 / Tel 02-6958-5330 / 에스카르고 2만1000원 가리비볼오방 2만8000원 인스타그램 @commemoa
라따뚜이인서울
프랑스인 뽀드홍뤽(Portron Luc) 셰프가 운영하는 곳. 다락방처럼 꾸며놓은 2층 공간은 꽤 아늑하다. 바게트는 물론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든다. 오랜 시간 고아 만든 ‘뵈프부르기뇽’부터 자주 바뀌는 시즌 메뉴 모두 현지 프랑스답다.
서울 용산구 청파로 270-2 / Tel 0507-1422-7032 / 뵈프부르기뇽 6만5000원 시즌코스 7만원 정도. 인스타그램 @ratatouille.in.seoul
라씨에트
금호동 ‘고메트리’에 이어 서래마을에 오픈한 김성모 셰프의 비스트로. 샐러드, 통오리콩피, 문어나 랍스터 요리 등 무엇을 주문해도 밝은 색상으로 건강미가 흐른다. 프렌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금방 좋아할 스타일이다.
서울 서초구 서래로6길 6 2층 / Tel 0507-1368-1250/ 리옹샐러드 2만8000원 통오리콩피 4만5000원 인스타그램 @lassiette__restaurant
글·사진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