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의 ‘단맛’은 정말 해악일까?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막걸리 집 편을 보고 이런저런 갑론을박이 있습니다. (해당 편에서 백종원은 자신만의 막걸리를 고집하던 막걸릿집 사장을 비판하고 백종원식 솔루션을 제공했죠.)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가 개입하며 커진 이 논란에서 비판자들은 대체로 '백종원이 특색있는 막걸리집에 감미료를 퍼부었다'는 식으로 비판하는데요.
전 이 비판이 아무래도 탁상공론이지 싶습니다. 골목식당은 기획과 연출로 만들어지는 예능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점을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1.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
첫째로, <골목식당>은 파인다이닝 급 식탁을 평론하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정상궤도에서 이탈한, 망해가는 대중식당을 최소한의 정상궤도 위에 올려놓는 프로그램이죠. 고객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상품을 특색있다며 계속 만들고 싶다면 돈을 벌기 위한 대중식당 대신 차라리 연구소를 차리는 게 맞습니다. 그렇지만 출연자들이 그걸 원하는 건 아니죠.
둘째로, 저는 이런 비판이 단맛이 나는 술보다 달지 않은 술이 고급이라는 선입견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흔히 ‘스위트하다’와 ‘드라이하다’로 갈라지는 술의 특성 말이죠. 흔히 말하는 '본연의 맛'을 즐기기에는 단맛이 약한(드라이) 편이 좋은 경우가 많지만, 이것도 무조건 그런 건 아니죠.
감미료를 섞으면 본연의 맛이 사라진다? 언뜻 보면 맞는 말 같지만 이것도 뭔가 생각해 볼 구석이 있죠. 우선 본연의 맛이란 게 대체 뭔가요? 감미료란 자연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연이 아닌 것일까요? 감미료를 섞는다고 해서 정말 모든 맛이 천차만별로 똑같아지나요?
물론, 개개의 차이가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반드시 차이가 크게 나야만 맛의 고유성, 다양성이 지켜지는 것일까요? 맛의 다양성이란 무엇을 위해 지켜야 하는 것일까요?
ⓒSBS |
둘째와 비슷한 맥락인데, 셋째로 저는 이런 비판이 대중의 미각을 무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대중이라고 단 건 무조건 좋아하고 드라이한 건 무조건 싫어하지 않습니다. 요즘엔 다양한 맛의 막걸리가 생산되고 있고 개중에는 단맛이 아주 약한 막걸리들도 많죠. 사람들도 이런 막걸리들을 사랑하고요.
단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달지 않은 막걸리를 먹는다면 낯설어하거나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평가할 순 있지만, 보통 그걸 상품으로서 아예 평가절하하진 않아요. 그런데 <골목식당>의 그 막걸리는 2~30대 대중으로부터 상품으로서 성립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평가를 받았단 말이에요. 단 한 사람도 그 막걸리를 선택하지 않았죠. 이 정도라면 달고 안 달고가 문제가 아닌 거죠.
2.
좀 더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죠. 한국인은 정말 단맛에 중독돼 있을까요? 한국인의 당 섭취량은 (낮추면 물론 좋긴 하지만) 외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니고 가장 많은 당을 섭취하는 경로도 과일입니다. 1인당 설탕 섭취량도 적은 편이고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
한국식약청은 첨가당 섭취량 기준을 총 섭취 열량의 10% 미만으로 잡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의 25%나 영국의 15~20%, 이탈리아의 15% 등에 비해서도 낮아요. 수치상 한국인은 단맛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죠. (출처: 시사저널)
최근 당류가 건강의 적이라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만, 사실 한국인의 경우 쌀밥이 당류 과잉 섭취의 주적이 아닌가 싶죠. 삼시세끼를 쌀밥을 먹으니 당류 섭취량이 적을래야 적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한국인은 쌀밥에 중독돼서 문제라고 한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3.
백종원의 단맛을 비판하는 유명인으로 황교익 씨가 있죠. 얼마 전 EBS 프로그램에서도 또 백종원을 겨냥한 듯 음식에 단맛을 퍼붓는 현상을 비판했는데요.
ⓒEBS |
‘백종원 레시피’라 불리는 것들이 실제로 따라 해보면 단맛이 강합니다. 당연히 불호가 있을 수 있는 맛이긴 한데 사실 그거야 개인이 취향 따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그냥 덜 넣으면 되죠.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백종원 레시피를 그렇게 자체적으로 변용해 잘 쓰고 있고.
사실 요리(?)를 처음 해보는 사람들이 많이 실패하는 게 설탕이든, 마늘이든, 양파든, 파든, 어쨌든 뭘 너무 적게 넣는다는 겁니다. 소금처럼 조금만 넣어도 맛이 확 변해버리는 재료도 있다 보니 초심자 입장에선 조심스러워지는 게 당연하긴 하죠.
그래서 백종원이 말하는 "괜찮아유"라는 건… ‘당 팍팍 먹고 병 걸려 죽어도 괜찮아유’란 뜻이 아닙니다. ‘이만큼 넣는다고 맛이 이상해지는 거 아니니 괜찮아유’란 뜻에 가깝죠. 요리 초보들이 흔히 하는 실수를 과감하게 교정해주는 것.
ⓒ국민일보 |
사람들은 멀쩡히 너무 달다 싶으면 설탕 좀 덜 넣고, 마늘 좀 더 넣고 하며 잘 변용해 쓰고 있습니다. 요리하다 보면 당연히 그렇게 되죠. 백종원 단맛에 대한 황교익 씨의 과도한 비판은 결국 혼자 사람들이 세뇌당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꼴 아닐까 해요.
영양을 생각해서 당 섭취를 줄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일단 한국인의 첨가당 섭취량이 세계적으로도 낮은 편이라 이쪽 주장도 영 뿌리가 약해 보입니다. 결국, 그의 백종원 비판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백종원 레시피에 노출되는 대중을) 이상할 정도로 얕잡아보는 은근한 경향이 깔린 건 아닐까요?
직썰 필진 임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