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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경향신문

경북 상주, 그 골목엔 수타의 고수·구이의 달인 있다

거의 매주 ‘풀뿌리 식당’을 찾아 길을 떠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 동네, 우리 골목, 우리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외지인보다 현지인이 주로 찾는 식당을 개인적으로 그렇게 부른다. 이번 목적지는 경상북도 상주시. 서울 삼전동에서 솥밥과 숯불구이를 주력으로 하는 식당 사장이자 누구보다 음식을 흠모하는 사람과 함께 다녀왔다. 매력적인 요리와 흥미진진한 사연과 거룩한 노동이 공존하는 공간 속으로 지금 바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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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장을 아시나요’의 사장이자 주방장이 수타로 면을 뽑는 모습. 물 흐르듯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진아씨멘집’을 홀로 운영하는 어머니가 연탄불에 고등어를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굽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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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하지 않은 중국집

지난달 10일 오후 1시, 상주시 남성동에 있는 ‘손자장을 아시나요’에 들어섰다. 상호가 알려주듯 기계 면이 수타 면을 거의 대체한 세상에서 여전히 손으로 직접 면을 뽑아 만든 짜장을 선보이는 중국집이다. ‘손자장을 아시나요’는 2002년 출범했지만 춘천이 고향인 58세 사장의 요리 경력은 그보다 오래됐다. 1982년 춘천에 개업한 작은아버지의 중식당에서 학창 시절부터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다. 대학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제주에 있는 호텔 업장에서 근무한 끝에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


주방이 들여다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짜장면 두 그릇과 고기튀김을 주문했다. 힐끔힐끔 쳐다본 주인장의 수타 퍼포먼스는 적잖이 놀라웠다. 손으로 치고 늘이고 가닥을 뽑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과도하게 힘을 쓴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부드러운 초식으로 강호의 협객들을 모조리 제압하는 전설의 무림 고수 같았다. 면을 칠 때 밀가루도 거의 쓰지 않았고, 반죽이 도마를 때리는 소리도 크게 들리지 않았다. “수타 때문에 어깨가 망가져서 그만두신 분들이 많던데 사장님은 괜찮으세요?”라고 염려를 건넸더니 “본인 몸에 맞게 수타 방법을 정립하지 못해서 그래요”라는 단단한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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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장을 아시나요’의 짜장면. 소스는 진하고 면발은 쫄깃하다.

면 강화제는 물론이고 소금조차 첨가하지 않는다는 이곳의 면발은 자연스레 흰색을 띤다. 그동안 경험한 다른 중식점들의 수타 짜장면에 비해 한 뼘 더 쫄깃했으며,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짜장소스는 생각보다 진했다. 동행한 지인은 한 젓가락 맛본 후 “소스가 살짝 느끼해 식초를 조금 뿌리니 알맞게 느껴진다”고 했다. 뒤이어 등장한 고기튀김도 다른 곳과 사뭇 결이 달랐다. 탕수육보다 고기튀김에 대한 애정이 커서 메뉴판에 있는 경우 늘 시키곤 하는데, 지금껏 먹은 어떤 고기튀김보다 삼삼했다. 소스의 도움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보통 소금이나 후추 등으로 밑간을 한 꺼풀 짙게 하기 마련인데 이 집 고기튀김은 확연히 싱거웠다. 반죽에도 감자전분, 고구마전분, 쌀가루, 찹쌀가루 등이 고루 입장한다고. “고기튀김이 쉬워 보여도 정말 어려운 메뉴”라는 사장의 말에는 자부심이 한껏 서려 있었다.


특유의 음식철학과 그걸 기반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음미하자 호기심이 더욱 증폭돼 결국 메뉴 하나를 더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있는 재료로 ‘가볍게’ 해준다며 마련한 해삼탕은 정작 해삼, 소고기, 관자, 오징어, 새우, 두부, 목이버섯, 팽이버섯, 청경채, 피망, 오이, 양파 등이 망라된 호화로운 요리였다. 어떤 연유에서 메뉴명에 탕을 넣어 작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튀기고 볶은 요리였다. 해삼과 소고기튀김은 간이 약했지만 고추기름을 더한 마늘소스는 감칠맛이 도드라졌다. 아래로 흐르는 기름을 받아내기 위해 생팽이버섯을 가장 밑에 깔아놓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독특한 중국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극정성으로 굽는 고등어

‘손자장을 아시나요’와 개업 연도가 동일한 서성동의 카페 ‘커피가게’에서 근사한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고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오후 7시 무렵, 같은 서성동에 자리한 ‘진아씨멘집’의 문턱을 넘었다. 1949년 상주 시내에서 태어난 주인은 서울에서 30여년을 살다 고향으로 내려와 외환위기 때 ‘진아씨멘집’을 열었다. ‘진아’는 지금 자리에 먼저 터를 잡았던 분식집 이름인데, 여기에 건물이 시멘트로 되어 있어 ‘씨멘집’을 추가로 붙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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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0분 동안 구워낸 ‘진아씨멘집’의 연탄고등어.

메뉴판을 보며 ‘뭉티기’를 골랐는데 “최근 비가 많이 와서 고기가 별로”라는 말을 듣고는 연탄고등어로 방향을 틀었다. 고등어를 굽기 전 식당 어머니는 생오이, 마른 멸치, 달걀프라이 그리고 ‘문제의’ 고추장을 내왔다. 두껍고 묵직하면서도 점잖은 단맛이 슬쩍 배어 있는 장이었다. “해마다 초봄에 고추장과 된장을 담그고 2년 묵힌 다음 손님에게 제공해요. 이 보리쌀 고추장에는 사위가 재배하는 블루베리가 들어가요.” 이윽고 어머니는 식당 바로 앞에서 연탄불에 석쇠를 걸고 꼼꼼하게 고등어를 굽기 시작했다. 말끔하게 손질된, 엄청나게 큰 고등어를 완벽하게 굽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30분. 혼자 운영하는 식당 입장에서 보면 이런 비효율이 없다. “프라이팬에도 구워봤는데 비려요. 연탄에 골고루 오래 구우면 식어도 비린내가 안 나요.” 실제로 먹는 도중 식어버린 고등어에서는 일말의 비린내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풍성하고 탄탄한 고등어구이 하나만으로도 충만한 밥상. 실로 뇌리에 영원히 남을 역대 최강의 고등어구이였다.


‘고갈비’를 뜯는 도중 가져다준 지난겨울 김장김치도 강렬하기 짝이 없었다. 갈치, 생태, 생오징어, 갈치속젓, 블루베리, 황태와 양파를 우려 만든 고춧물 등으로 버무렸다. “밥 먹을래요? 보리밥이 좀 남아 있어요.” 빼어난 풍미의 고추장과 김치를 맛보고 나니 마다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고추장에 밥을 비벼 고등어 살점과 김치를 정성껏 올려 코를 박고 먹었다. 티끌만 한 흠결도 없는 참으로 행복한 조합이었다. 장을 손수 담근다는 이야기를 듣고 메뉴판에 없는 된장찌개를 간청했다. “어휴, 짜! 서울 사람들 입맛에 안 맞아요.” 어머니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짠맛이 강력하게 응축되고 짠맛이 폭발하는 된장찌개였다. 색깔부터가 매우 짙었다. 메주콩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대멸치도 보였다. 두부, 양파, 고추 등도 한몫 거들었다. 짜지만 요즘 식당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생동감 넘치는 된장찌개였다. 하릴없이 밥 한 공기를 더 요청했다. 마주 보고 앉은 지인은 밀양에 계신 어머님 음식이 생각난다고 했다. “김치도, 된장찌개도 제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의 진한 버전 같아요.”


물 한 모금 들여보낼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꽉 찼지만 식당 어머니는 다른 테이블 손님을 위해 끓인 김치짜글이까지 조금 덜어줬다. 김치가 극강이니 숟가락을 담그기 전부터 기대가 만발했다. 하긴 주방에서 김치짜글이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미 감탄사를 연발했던 터다. “찌개에 자투리 고기가 아니라 즉석에서 통삼겹살을 조리해 잘라 사용하시네요. 양파도 바로 망에서 꺼내 쓰시고.” 동행인의 눈썰미가 포착해낸 장면들이었다. ‘진아씨멘집’에서의 저녁 식사는 식당 주인과 나눈 대화의 성찬이기도 했다. 서울 청담동에서 수입 옷 장사한 에피소드, 일흔 중반의 딸이 아흔 중반의 노모를 모시는 상황, 건강 관리를 위해 등산과 MTB를 즐기다 지금은 동네 어귀에서 살살 자전거를 탄다는 근황, 얼마 전 발목을 다쳐 두 달간 문을 닫아야 했던 안타까움, 부상 여파로 지난봄 장을 못 담가 사돈집에서 받기로 했다는 고백, 상주에 축사가 많아 전국에서 파리가 가장 많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내게 ‘풀뿌리 식당’ 여행은 먹는 여정이 아니라 듣는 여정이다.

엄마-딸로 이어진 청포묵

이튿날 아침, <생활의 달인>에 출연했다는 시장통의 오래된 빵집에서 구입한 찹쌀떡과 샐러드빵은 개인적인 기호와는 거리가 있었다. 한입 베어 물고 서둘러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오전 11시, 업력 11년째인 서문동의 ‘기연청포묵’에서 이른 점심을 해결했다. 식당 간판이 일러주듯 곱디고운 청포묵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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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직접 쑨 청포묵과 깔끔한 찬들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기연청포묵’의 정식.

대표 메뉴인 청포정식 2인분을 주문했다. 조밥과 뭇국을 필두로 상차림이 완성됐다. 숙주, 미나리, 당근, 김 가루를 위에 얹고 참기름을 두른 청포묵 사발에 밥을 넣고 고추지를 충분히 뿌려 비비면 된다. 매끄러운 청포묵이 꿀떡꿀떡 잘도 넘어간다. 녹두비지빈대떡, 조기구이, 머위나물무침, 땅콩볶음, 참외장아찌, 비트장아찌, 달걀장, 양배추샐러드 등으로 이어지는 찬들도 하나같이 깔끔하고 맛이 좋았다. 특히 참외장아찌는 한 접시 더 청할 만큼 입에 잘 맞았다. 예천군에서 태어나 열 살 때 상주로 이주한 주인아주머니는 식당을 차리기 전 10년 동안 일식집 찬모로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큰오빠가 상주시청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3년 전 정년퇴직 후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오늘 음식 재료 중 고추, 머위, 비트 등이 큰오빠 농산물이에요.”


청포묵 장사를 어떻게 하게 됐는지도 물었다. “처음 5년간은 친정엄마가 집에서 청포묵을 만들어주셨어요. 엄마 돌아가신 후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제가 묵을 쑤고 있어요.”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치르는데 식당 주인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지난해도 어려웠는데 올해는 더 장사가 안 돼요. 저야 뭐 정 안 되면 다른 식당으로 일 나가야지요.” 식당을 나서며 청포묵과의 재회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때는 꼭 탕평채에 막걸리 한잔 기울여야겠다.

알·쓸·食·잡


상주는 돼지석쇠구이가 유명하다.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는 식당도 있다. 특산물로는 곶감이 첫손에 꼽힌다. 배, 포도, 오이 등도 호평을 받는다. ‘손자장을 아시나요’의 수타 짜장면 가격은 6000원, 간짜장은 7000원이다. 탕수육도 많이 찾는다. 소 1만5000원, 중 2만원, 대 3만원.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요일은 점심 장사만 한다. ‘커피가게’는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수요일만 낮 12시) 오후 9시30분에 문을 닫는다. 화요일 휴무. ‘진아씨멘집’은 오후 5시부터 이튿날 오전 3시까지 문을 열어둔다. 홍어삼합, 홍어찜, 뭉티기, 육전, 돼지석쇠, 닭볶음탕, 김치전 등 술안주들이 가득하다. ‘기연청포묵’의 청포정식 가격은 1만2000원, 탕평채는 3만원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노중훈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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