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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릇함 속 야릇한 19금 채소

장양초·기양초·파옥초·파벽초·월담초…스태미나의 상징 ‘부추’

신장 기능 높여줘 남성에 좋단 속설

성적 의미 담긴 ‘낯 뜨거운 별명’ 많아


어디서나 잘 자라 예부터 흔한 밥 반찬

‘정력과 소박’ 모순적 이미지 동시에

경향신문

따지고 보면 들어본 이야기이고,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그래도 늘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화젯거리가 있다. ‘뭐가 몸에 좋다더라’ ‘이런 증상이 있을 때 이걸 먹으면 특효다’ 따위의 건강 정보다. 내 몸의 건강 상태와 직결되는 먹거리 이야기에 동하는 원초적 호기심은 뿌리치기 어렵다.


기승을 부리는 더위가 가실 줄 모르는 요즘 꽤 많이 언급되는 먹거리가 있다. 특유의 향과 청량한 뒷맛을 가진 채소, 부추다. 의사나 식품 전문가들이 권하는 부추의 효능은 기력 회복과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혈액 순환을 돕고 소염효과도 뛰어난 데다 간과 위장, 신장의 기능을 개선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기력을 잃고 지치기 쉬운 여름철을 나는 데 도움이 되는 팔방미인 부추의 효능을 보노라면 보약에 버금갈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동의보감>이나 <식료찬요> 같은 옛 의서에도 부추는 간을 튼튼하게 해주고 위장과 신장을 이롭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지대 초빙교수를 지낸 농부이자 목사 임락경은 <나를 살리는 음식과 건강 이야기>에서 “부추는 채소라기보다는 약재에 가깝다. 50병 통치약은 되겠다. 반찬으로 수시로 먹어주면 병이 안 난다”고 썼다.


부추의 다양한 ‘재능’ 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것은 양기, 즉 스태미나를 강화하는 데 좋다는 점이다. 세종 때 간행된 <향약집성방>에는 부추가 양기를 보한다는 설명이 있다. 중국 명나라 때의 의학서 <본초강목>에서는 부추가 ‘온신고정(溫腎固精)’에 효과가 있다고 쓰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신장을 따뜻하게 하며 생식 기능을 높여준다는 뜻이다. 신장이 배뇨나 발기와 관련 있는 신체 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이야기다. 당나라 때의 의학서 <본초습유>에도 부추가 중추 기능을 따뜻하게 하고 오장육부를 조화롭게 하며 양기를 보충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양기(陽氣)는 몸 안에 있는 양의 기운을 의미한다. 비단 남성의 성적인 기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부추와 관련해 야릇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옛말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봄에 나는 부추의 효능이 특히 좋은데, ‘봄 부추는 아들 대신 사위에게 준다’ ‘이른 봄에 나는 아씨 부추는 사위한테도 안 주고 영감한테만 몰래 준다’ ‘부추 씻은 첫 물은 아들도 안 주고 신랑만 준다’ ‘봄 부추는 인삼·녹용과도 바꾸지 않는다’와 같은 속담이 그것이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부추는 재미있는 별명도 많이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장양초(壯陽草)’ 혹은 ‘기양초(起陽草)’다. 장양초는 양기를 북돋우는 풀이라는 뜻이고 기양초는 양기를 세워주는 풀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청나라 말기의 지배자 서태후가 이를 즐겨 먹으며 ‘기양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부추의 효능을 직관적으로 드러내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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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김치

민간에서는 파옥초(破屋草)라는 이름도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집을 부수는 풀이라는 의미다. 왜 집을 부순다는 의미를 갖게 됐을까. <한국인의 삶과 문화>(최운식·보고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웃 사람의 잔치에 가서 술과 음식을 먹고 돌아온 농부가 그날 밤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했는데 아내가 크게 만족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잔칫집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묻자 농부는 부추 무침과 부침이 특히 맛있어서 그걸 안주 삼아 밥을 먹었을 뿐 별다른 건 없었다고 말했다. 이튿날 농부가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아내는 집을 헐고 있었다. 깜짝 놀란 농부가 아내에게 묻자 아내는 “집을 헐어 당신에게 좋은 부추를 심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초가삼간이 무너지는지도 모를 정도로 운우지정을 나누게 하는 풀이라는 뜻으로 파옥초가 유래했다는 설명도 있다. 이외에 부추를 먹으면 오줌 줄기가 벽을 뚫을 정도로 거세져서 ‘파벽초’라 칭하기도 했고, 과붓집 담을 넘을 정도라 하여 ‘월담초’라는 이름도 있다. 아무튼 의미를 알고 보니 낯뜨겁기까지 한 별명이다. 이름만 놓고 본다면 ‘19금 채소’라 칭해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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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전

부추는 지역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제각각이다. 수도권이나 강원도에서는 부추, 전라도에서는 솔, 충청도에서는 졸, 경상도에서는 정구지라고 한다. 경상도 방언 정구지를 두고 한자어 ‘정구지(精久持)’라는 주장도 제기되어왔다. 이를 해석하면 부부간의 정을 오래 유지한다는 뜻이다.


부추의 양기를 이야기할 때 종종 소환되는 인물이 화가로도 유명했던 송나라 휘종이다. 그는 서른이 될 때까지 슬하에 자녀가 셋밖에 없었다. 자녀를 많이 둔 농부의 다산 비법이 부추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열심히 부추를 먹은 덕분에 이후 수십 명의 자녀를 얻게 됐다.


이 같은 부추의 속성은 아무래도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수도자에게는 맞지 않다. 불가에서 금지하는 5가지 채소, 즉 오신채에 부추가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다.


부추는 ‘게으름뱅이 풀’로도 불린다. 따로 돌보지 않아도 아무 데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키우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증보산림경제>에서는 부추를 일컬어 ‘게으른 사람의 나물’이라고 하면서, 해마다 심지 않아도 되고 1년에 서너 번 베어내도 뿌리가 상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사실 이 별명은 부추의 미덕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추가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런 미덕 때문인지 부추는 오래전부터 하늘이나 조상에 제사하는 제사상에 오르는 식재료였다. 중국의 고대 시가를 모은 <시경>에는 ‘2월이 되면 아침 일찍 염소를 바치고 부추로 제사를 지냈다’는 구절이 나온다(<미식가를 위한 식물 사전>에서 인용). <한식문화사전>에서도 “부추로 만든 구저, 즉 부추김치는 <세종실록 오례>에 따르면 사직제를 비롯해 왕실의 각종 제사에 올리던 제수였다”고 쓰고 있다.


고려나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 부추는 청빈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중국 남북조시대 남제의 선비 유고지는 가난했지만 곧고 바른 성품을 가졌다. 그의 밥상 반찬으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부추만 올랐다. 부추 절임과 데친 부추, 생부추 등 3가지만 먹어 ‘삼구’로 불렸다. 이를 두고 ‘반찬이 스물일곱 가지(3×9=27)나 되는데 누가 유고지를 가난하다 했는가’ 하며 농담을 했다는데, 후대의 선비들은 유고지의 삼구를 종종 언급하며 청빈과 소박한 삶을 노래했다. 스태미나와 청빈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모순적인 듯하면서 흥미롭다.


부추는 중국 서북부 지역과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먹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중·일 3국에서는 즐겨 먹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서양에서 익숙한 식재료는 아니다. 간혹 유럽에서 많이 사용하는 차이브(chives)를 부추라고혼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부추와 차이브는 다른 작물이다. 우리가 먹는 부추는 갈릭 차이브(garlic chives)이다.


앞서 부추의 강인한 생명력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엉뚱한 비하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를 통상적으로 ‘개미’라 칭한다. 중국에서는 ‘주차이’, 즉 부추라고 부른다.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은 기관투자가들에 당하고 막대한 손실을 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다시 시장에 뛰어든다. 이 같은 속성이 부추를 닮았다는 것이다. 비하의 의미긴 매한가지나 차라리 개미가 낫다고 느껴질 만큼 씁쓸한 비유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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