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맛볼 시간 남았다..."죽음과도 바꿀 맛" 겨울 바다 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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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겨울이 제일 맛있다. 이유가 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생선 중에 겨울이 제철인 생선이 많다. 여기에서 제철이란 생선이 산란기를 앞두고 살을 찌우고 기름이 많아진 때를 말한다. 제철은 아니지만 차가운 겨울 바다에서 살이 단단해지는 물고기도 있고, 날이 따뜻해지면 자취를 감추는 어패류도 있다. 하여 바다는 겨울이 가장 맛있다. 2월은 봄이 오면 맛보기 힘든, 적어도 맛이 뚝 떨어지는 바다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계절이다.
전남 여수 먼바다 거문도에서 낚시하고 사는 소설가 한창훈은 제철 생선을 앞두고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고 말한 바 있다. 유난히 모질었던 겨울이 가고 있다. 우리 더는 불쌍해지지 말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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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조개의 계절 - 새조개(충남 홍성)
새조개는 ‘귀족 조개’라 불린다. 가격도 비싸고 맛도 빼어나서다. 새 부리처럼 생긴 조갯살이 큼직한 데다 여느 조개보다 단맛이 강하고 쫄깃쫄깃하다. 남해안에는 진해만·득량만·가막만, 서해안에는 천수만 같은 잔잔하고 얕은 바다에서 산다. 이 중에서 천수만 한가운데 자리한 충남 홍성 남당항이 일찌감치 새조개 산지로 명성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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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항은 2004년 국내 최초로 새조개 축제를 열었다. 7년 먼저 시작한 ‘대하 축제’와 함께 남당항은 서해안의 맛 여행 명소로 떠올랐다. 사실 남당항 새조개 어획량은 2003년 1156톤으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내리막이었다. 남획과 해양 오염으로 2012년부터 한동안 씨가 말랐다. 충청남도에서 치패 방류 사업을 벌인 결과, 2020년부터 어획량이 늘었고 지난해에는 약 75톤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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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항 새조개 축제는 1월 14일 시작됐다. 공연이나 불꽃놀이 같은 행사는 1월 31일 끝났지만, 새조개가 통일된 가격(식당 기준 1㎏ 8만원)에 제공되는 축제는 3월 31일까지 이어진다. 3년 만에 열린 축제는 성황을 이루고 있다. 주말에는 주차난이 빚어지고 일부 식당은 점심 장사만 했는데 새조개가 동나기도 한다. 정상운 남당항 어촌계장은 “새조개는 12월에 수확하기 시작하는데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라며 “2월 셋째 주부터는 생산량이 늘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당항에서는 새조개를 샤부샤부로 먹는다. 배추·미나리·바지락 등을 넣은 육수에 새조개를 5초 담갔다가 먹는다. 남당항 82개 식당은 모두 가격이 같다. 새조개 1㎏을 포장하면 7만원, 식당에서 샤부샤부로 먹으면 8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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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굴젓 - 갯굴(충남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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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 간월도는 조선 시대 수라상에 올랐던 어리굴젓의 본고장이다. 입이 얼얼할 정도로 맵다 해서 어리굴젓이다. 레시피는 단순하다. 굴을 소금에 절여 15일간 숙성하고 고춧가루에 버무린 뒤 석 달을 다시 숙성하면 어리굴젓이 완성된다. 곰삭은 젓갈은 처음엔 매콤 새콤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과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굴젓 몇 점만 있어도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울 수 있다.
간월도 사람들은 어리굴젓의 맛은 소금과 고춧가루도 중요하지만 굴 자체의 맛이 결정적이라고 말한다. 김덕환 간월도 어촌계장은 “남해안이나 다른 지역의 굴은 향이 약하고 육질이 연해 숙성하면 흐물흐물해진다”며 “생굴이나 굴젓만큼은 간월도 굴 맛을 따라올 수 없다”고 말했다.
굴 따는 일은 70~80대 마을 아낙네의 몫이다. 11월부터 4월까지, 약 30명이 한 달에 14일을 굴 따러 갯벌로 나간다. 굴 따는 아낙 중에는 아흔네 살 할머니도 있다. 하루 7~8시간 중노동을 마칠 즈음엔 사방에서 곡소리가 난다. 해종일 갯벌에서 굴 10~20㎏을 딴 뒤에는 허리가 펴지지도 않는다. 할머니 대부분이 유모차같이 생긴 보행보조기를 밀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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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도 앞바다에서 캔 굴은 99% 어리굴젓용으로 쓴다. 간월도 식당에서 파는 영양 굴밥이나 굴전에 들어가는 굴은 대부분 남해안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간월도 굴은 비싸고 물량도 부족하다. 그래도 굴무침이나 굴물회에 들어가는 생굴은 간월도 굴을 쓴다.
처음 먹어봤는데, 굴물회가 별미였다. 관광객용으로 개발한 음식일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굴 따는 일을 하는 김민규(81)씨는 “아주 옛날부터 고춧가루와 식초를 풀어서 물회를 만들어 먹었다”며 “굴밥이나 굴전 같은 음식도 대대로 먹던 음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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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놈이 왕 - 방어(제주도 모슬포)
방어 맛이 절정을 맞는 계절도 겨울이다. 사계절 연근해에서 잡히지만, 11월부터 2월까지 올라오는 방어가 유독 차지고 맛이 좋다. 봄 산란기를 앞두고 살을 찌우는 시기여서다. 방어 특유의 기름기도 이때가 가장 풍부하다. 반대로 여름 방어는 살이 무르고 기름기가 적어 맛이 확 떨어진다. 미식가와 낚시꾼 사이에서는 ‘겨울 방어 여름 부시리’라는 말이 통한다. ‘여름 방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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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 하면 떠오르는 고장이 제주도다. 기후변화로 수온이 올라 요즘은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도 방어 떼가 올라오지만, 아직 제주 방어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잡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동해안에서는 정치망을 던져 놨다가 쓸어 담는데, 제주에선 외줄 낚시가 오랜 전통이다. 살아있는 자리돔을 미끼 삼아 방어를 잡아들이는 방식으로, 제주도에서 방어를 ‘자리방어’라 부르는 연유다.
제주도 남서쪽 모서리 서귀포 모슬포항이 방어 최대 집산지다. 모슬포는 방어 미끼로 쓰이는 자리돔의 주 생산지로, 마라도와 관탈도(추자도와 제주도 사이 무인도) 앞바다에서 방어를 잡은 고깃배들이 아침마다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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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포 수협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잡아들인 방어가 대략 3만 마리에 육박한다. 위판장에서는 요즘 특방어(8㎏ 이상)가 13만원대, 대방어(4㎏ 이상)가 6만~7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모슬포 수협 관계자는 “하루 1500마리까지 잡혀 올라오는 날도 있지만, 작년보다 어획량이 많지 않아 가격이 다소 뛰었다”고 말했다. 참고로 방어도 큰놈이 왕이다. 몸집이 클수록 지방 함량이 많아져 맛도 훌륭하고 식감도 부드럽다.
모슬포항 앞에 방어를 다루는 횟집이 모여 있는데, 상차림은 대개 비슷하다. 2~3인분 이상을 주문하면 방어회와 함께 방어전·방어회무침·방어지리 등이 상에 오른다. 회는 뱃살·사잇살·등살·꼬릿살 등으로 분리해 올리는데, 비교하며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통 기름기 많은 뱃살은 김이나 백김치에 싸 먹고, 사잇살은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소주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기는 뱃살도 사잇살도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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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유혹 - 복어(강원도 강릉)
심기를 건드리면 배를 빵빵하게 부풀리며 성난 이빨을 드러내는 복어. 치명적인 독으로 유명한 복어는 미식가 사이에서 겨울철 최고의 진미로 통하는 생선이다. 중국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는 ‘죽음과도 바꿀 만한 맛’이라고 읊은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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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는 종류가 워낙 많다. 식용이 가능한 복어만 따져도 57개 종에 이른다(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2006).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도 복어는 7개 종이 소개돼 있다. 참복‧자주복‧까치복‧밀복‧졸복 등이 널리 알려진 복어인데, 이들 대부분이 11~2월 제철을 맞는다. 겨울은 산란기를 앞둔 복어가 독성이 약해지고 살집이 차오르는 때다.
복어는 한반도 전 해안에서 두루 잡힌다. 부산‧통영‧목포 등 복어로 이름난 고장도 여럿 있다. 부산은 맑은탕 형태의 복국을 전국에 퍼트린 복어의 본산이고, 통영과 목포는 손바닥보다 작은 졸복을 가득 넣어 끓이는 졸복탕이 유명하다.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오동동에는 복요리 거리가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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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에서는 강릉 주문진이 복어 최대 주산지로 통한다. 가까운 주문진 앞바다부터 먼 울릉도‧독도 근해까지 나가 복어를 잡아들인다. 먼바다까지 나가는 큰 배는 한번 출항하면 일주일 이상 바다를 누비며 5톤 가까운 복어를 싣고 항구로 들어온다. 등이 검고 가슴에 황색 띠를 두른 밀복(검복)이 가장 많이 잡힌다. 회로도 먹고, 복국으로도 먹는 종이다. “복어는 성미가 급해 뭍으로 나오면 금세 죽기 때문에 배 위에서 바로 경매를 진행하고, 곧장 활어차에 실어 식당으로 나른다”고 주문진항 홍정현 중매인은 말했다.
복어는 애주가가 유독 사랑하는 어종이다. 회나 탕뿐 아니라 수육‧죽‧튀김‧껍질무침 등 다양한 형태로 먹는다. 미나리와 마늘을 듬뿍 넣고 맑게 끓여 먹는 복국은 추위에 언 몸을 단번에 풀어주는 겨울 음식이자, 최고의 해장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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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부터 먹는다 - 삼치(전남 여수)
삼치는 억울한 생선이다. 크기부터 잘못 알려진 바가 크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구이용으로 먹는 한두 뼘 크기의 삼치는 남해안에서 삼치 취급도 못 받는다. 겨울이면 1m 넘는 삼치가 흔하게 올라오기 때문이다. 전남의 포구 마을에선 작은 삼치는 삼치라고도 안 한다. ‘고시’라고 따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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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 맛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겨울 생선회 하면 방어회부터 떠올리지만, 삼치회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삼치도 회로 먹느냐고? 저런, 거문도 소설가 한창훈에 따르면 삼치는 회부터 먹는다. 1m짜리 삼치를 잡으면 무게가 7∼8㎏ 정도 된다. 일단 회로 배를 채우고, 남으면 구워서 먹고 끓여서 먹는다. 옛날에는 전남 해안에서 삼치로 김치도 담가 먹기도 했단다.
삼치회가 익숙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산지 아니면 먹기 힘들어서다. 삼치도 민어처럼 성질이 급해 뭍에 올라오면 바로 죽는다. 하여 전남 여수나 고흥 같은 남도 갯마을에서도 활어 삼치회는 드물다. 대부분 숙성 회로 먹는다. 여수에서 뱃길로 2시간 거리인 거문도에나 들어가야 갓 잡은 삼치를 회로 먹을 수 있다. 맛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 기름지고 부드러운데, 참치 뱃살보다는 식감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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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는 살이 워낙 부드러워 회 뜨기도 쉽지 않다. 살이 부드러워 조금만 거칠게 다뤄도 살이 뭉개진다. 하여 삼치회는 뭉텅뭉텅 크게 자른다. 큼직하게 자른 삼치회는 고춧가루·마늘·양파·쪽파 등을 넣은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다. 돌김이나 묵은김치에 밥을 담은 다음 양념간장 적신 삼치회를 올려 먹기도 한다.
겨울 삼치의 대표 산지가 거문도와 추자도 바다다. 여수 수협에 물어보니 이번 겨울은 삼치가 많이 잡히지 않았다. 특히 대물 삼치가 드물었다. 그래도 삼치회는 먹어봐야 한다. 삼치회를 맛볼 수 있는 시간도 길어야 한 달 정도 남았다.
손민호ㆍ최승표ㆍ백종현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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