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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햄버거병의 원인은 대장균…햄버거는 억울하다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80)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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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유치원에서 햄버거 병이 집단으로 발생했다. 일부는 심각한 증상으로 발전하여 문제가 됐다. 그런데 햄버거 병은 바른 명칭이 아니다. 대장균에 의한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이라 해야 옳다. 이 이름의 발단은 미국에서 1982년 속이 덜 익은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먹고 집단 발병한 게 계기가 됐다. 심할 경우는 심각한 염증, 혈변도 동반하며 신장이 손상되어 복막투석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원인은 대장균의 독소에 의해 응고된 혈액피딱지가 신장의 모세혈관을 막아 그렇다는 것이다.


햄버거 병의 원인은 대장균(E. coli O-157)으로 유통 중 오염이 된 채소, 과일, 고기, 살균되지 않은 우유, 요구르트, 치즈 등을 섭취하거나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과의 접촉, 물놀이 등에 의해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드시 햄버거를 먹어서 발생하는 병이 아니라는 거다. 햄버거가 억울한 이유다. 여기의 O는 대장균에 있는 표면 항원의 종류이고, 숫자는 항원의 고유번호를 뜻한다.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치사율은 낮은 편이다. 합병증이 발생한 환자 중 2~7%가 사망에 이른다.


장내에 서식하는 일반 대장균은 보통 안전하다. 장이 아닌 다른 부위에서 기화 감염을 일으키긴 하지만, 인간과 오랜 기간 공생의 관계를 유지해 온 친구 같은 존재다. 그런데 이렇게 평소 안전하던 대장균이 왜 나쁘게 바뀌었을까.


유전형질의 변이에 의했다는 추론이다. E. coli O-157이 어느 날 갑자기 나쁜 놈으로 돌변한 것은 에둘러 얘기하면 친구를 잘못 사귀어 나쁜 물이 들었다는 것이다. E. coli 는 소행이 바른데 4촌쯤 되는 시겔라(Shigella)라는 놈이 꼬드겨서 그렇게 됐다는 설이다. 시겔라는 평소 나쁜 짓을 많이 했다. 사람에게 급성염증, 이질이라는 질병을 일으켜 콧물 같은 물똥과 피똥을 싸게 하는 불량배쯤 된다. 항생제로 퇴치가 가능하다.


햄버거병이 고약한 것은 생산되는 독소 때문이다. O-157의 독소는 이질균의 시가톡신(Shiga-toxin)과 매우 유사하다. 고로 시가톡신의 형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대장균에 전달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옆에 있는 4촌이 안 돼 보여 독소 유전자를 선심 쓰듯이 선물로 주었다는 것이다.


전달되는 과정은 이렇게 본다. 박테리아에 감염하는 바이러스인 파지(phage)에 의해 형질이 도입됐다는 설과 서로 불륜관계를 맺어 접함(接合)에 의해 독소 유전자를 플라스미드(plasmid)로 실어 옮겼다는 설, 이 둘 중 하나일 것으로 예측한다. 이런 유전자의 교환은 미생물 세계, 아니 생물계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인간 유전자의 30% 정도가 바이러스가 옮겼다는 설도 있다.


어떻게 보면 O-157은 불행한 균이다. 대장균에게는 실제 우리의 대장이 이상적인 서식지에 해당한다. 먹이도 풍부하고 일정한 온기를 유지해 주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좋은 환경이라는 것. 이런 좋은 곳에서 조폭행세를 하니 숙주(인간)가 가만있을 리 없다. 설사에 밀려나고 항생제로 죽임을 당하는 불운을 자초했다.


과거에는 우리의 위생환경이 좋지 않아 이질이 잦았다. 그러나 그렇게 큰 병으로는 치진 않았다. 우리의 민간요법으로 부추에 고춧가루 듬뿍 넣고 밥 비벼 먹으면 낫는다고 다들 그랬다. 대개는 설사하다 나았다. 필자도 경험했다. 한국인이 이질균에 대해 강한 체질을 타고났다는 주장도 있다. 외국에는 이질의 사망률이 매우 높아 큰 병으로 친다. 일본에는 이질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한국에서는 죽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부추와 고춧가루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체질설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말이 나온 김에 대장균에 대해 좀 더 얘기하자. 앞에서 일반 대장균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왜 식품에서 대장균이 발견되면 안 되는 걸까. 법규 때문이다. 대장균이 검출되는 건 그 식품에 인간이나 동물의 분변과 직·간접으로 접촉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수인성 전염병의 대부분은 분변으로부터 전염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보고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보면 된다. 이른바 음식의 오염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균으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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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는 어떨까? 뒤를 닦았을 때, 애 기저귀를 간 엄마의 손에 무수한 대장균이 묻었으리란 건 쉽게 추측된다. 이들이 음식 등을 통해 우리의 입으로 들어갈 가능성은 다분히 높다. 그래도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이 보균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의 대변이라면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식품에 대한 규제가 까다로워졌다. 음식에 단 한 마리라도 대장균이 나와서도 안 된다. 대신 일반세균은 상당량(?) 나와도 상관없다. 1cc당 수천~수만 마리가 있어도 검사에 통과한다. 식품위생법에 허용되는 일반 세균의 숫자가 식품별로 정해져 있지만, 그 숫자의 관대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비교적 위생적이라 생각하는 시판 우유에 1cc당 1만 마리가 나와도 규정위배가 아니다.


너무 깔끔 떨지 말자. 입으로 들어간 비병원균은 대부분 위산에 의해 사멸되니까 탈이 나지 않는다. 아니라도 원래의 장소에 되돌려 주는 거니까 무슨 상관(?)이겠나. 적당히 미생물에 노출되면 오히려 면역력이 높아진다. 어릴 때 조금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애가 커서 더 건강하다는 통계도 있다.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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