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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양배추, 그냥 생식? 버터에 지져 식초 뿌려야 제 맛

이용재의 세심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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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양배추(Brussel Sprout)는 푹 삶아 먹는 데 익숙한 식재료지만 버터에 지져 먹거나 각종 드레싱에 무쳐 먹으면 알차게 즐길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식초는 그저 식초일 뿐인데 언젠가부터 ‘비네거’로 불리고 있다. 특히 고급 수입 식초일 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페트병에 담긴 국산은 식초이고 유리병에 담긴 수입산인 ‘비네거’인가? 요리책을 번역하며 식재료의 명칭이며 요리 용어를 놓고 늘 고민하는지라 때로 이런 식의 무차별적인 수용과 음식 언어 체계의 교란에 환멸을 느낀다. 그런 가운데 영화 ‘나를 찾아줘 (원제 Gone Girl)’처럼 기발함에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작명의 산물인 식재료가 몇몇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땅콩 호박과 국수 호박(각각 버터넛 스쿼시와 스파게티 스쿼시), 그리고 오늘 소개할 방울 양배추 (브뤼셀 스프라우트)이다.


‘방울 양배추’라니. 방울 토마토처럼 양배추의 꼬마 버전일 거라는 연상이 바로 들어 상상력의 큰 소모 없이도 크기와 족보를 한 방에 떠올릴 수 있다. 꼬마 채소는 귀여우니 맛도 왠지 좋을 것 같다. 작명 덕분에 낯섦을 적당히 극복하고 바로 한국의 채소, 더 나아가 식재료의 세계에 연착륙한다. ‘방울 양배추’라는 이름을 달고 채소 선반에 놓여 있다면 양배추와 비슷하겠거니 여기고 한 번쯤 먹어 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네거’처럼 무엇인가 있어 보이겠다고 ‘브뤼셀 스프라우트’라는 이름을 그대로 붙여 내보냈다면? 생김새로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왠지 조리법도 특별하거나 까다로울 것 같고, 초고추장 같은 건 찍어 먹으면 안 된다고 여기고 지나쳐 버릴 수 있다. 브뤼셀 스프라우트도 우리도 모두모두 불행해지는 시나리오이다.


실제로 브뤼셀 스프라우트는 일정 수준 불행함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채소이기는 하다. 5세기 유럽 북부에서 처음 등장해 13세기 브뤼셀에서 집중적으로 경작해 지금의 이름이 붙은 브뤼셀 스프라우트는 미국의 추수 감사절 만찬에 곁들이로 빠지지 않는 전통 식재료이다. 그런데 브라시카(배추속)의 식물이 대체로 그렇듯 익히면 특유의 역한 냄새, 좀 더 적나라하자면 구린내가 나 특히 아이들이 싫어한다. 황 탓인데 구린내는 오래 조리할수록 강해지니 조금은 세심해야 되는데 대체로 그러지 못한다. 결국 뭉개지도록 푹 삶아 질감도 기분 나쁘고 구린내도 풀풀 풍기는 식탁의 불청객으로 돌변해 만들었으나 먹히지 않는 슬픈 역사를 매년 되풀이해 겪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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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양배추는 부피에 비해 무겁고 지름이 3.5~4㎝가 적당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속은 꽉 차고, 지름은 3.5~4㎝가 적당

본고장의 팔자가 이렇다고 지레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들 했지만, 우리는 뒤집어 물 건너온 탱자를 귤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브뤼셀 스프라우트의 구린내도 뭉개질 듯 푹 삶은 질감도 새로운 이름인 방울 양배추와 함께 잊고 새출발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보자. 한국어 이름이 방울 양배추이고 배추속의 식물이라면 일단 고르는 요령을 우리가 모를 리 없다. 속이 부피에 비해 무겁도록, 튼실하게 꽉 들어차야 맛있다. 배추나 양배추가 그렇다면 방울 양배추도 마찬가지이다. 특히나 백화점 같은 곳에서 플라스틱 상자에 소포장해서 파는 경우라면 대강 집어올 수도 있는데, 꼬마 채소라고 우습게 보았다가는 쭉정이처럼 속이 허당임을 집에서 발견하고 허탈함에 빠질 수 있다. 또한 꼬마 채소라는 정체성과 본분을 존중해 지나치게 큰 것을 피한다. 지름이 3.5~4㎝ 수준이면 적당하다.


에라 모르겠다고 푹 삶아 버렸다가는 사단이 나지만, 약간의 섬세함을 발휘하면 방울 양배추도 아름답게 익어 우리에게 화답해준다. 거의 모든 채소를 생으로 먹는 우리인지라 방울 양배추도 시도는 해 볼 수 있지만 권하지는 않는다. 이파리 한 켜씩은 괜찮지만 켜켜이 뭉친 한 포기(?)는 의의로 딱딱하고 뻣뻣해 씹다가 사레가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조린다는 기분으로 적당히 부드러워질 때까지 삶아 먹는 기본 조리를 권한다. 일단 방울 양배추를 준비해 수직으로 반 가르는데, 단면이 드러나면서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바깥 켜의 이파리는 뻣뻣할 수 있으니 자연스레 버려도 좋다. 그대로 익혀도 좋지만 여유가 있다면 큰 양배추를 손질하듯 밑동의 심을 발라내면 좀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심을 삼각뿔 모양으로 발라낸다는 느낌으로 칼끝으로 썰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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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감과 향을 살리려면 약불로 8~10분 가량 삶는다. 게티이미지뱅크

냄비에 손질한 방울 양배추를 담고 물을 잠기도록 자작하게 붓고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불에 올린다. 소금은 방울 양배추 500g 기준으로 ½~1큰술이다. 물이 끓어 오르기 시작하면 약불로 낮추고 뚜껑을 덮어 보글보글 조리듯 끓인다. 과도의 끝으로 찔렀을 때 한가운데까지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8~10분 가량 삶아 건진다. 먹는 요령은 양배추를 따라가도, 먼 친척 뻘인데다가 손질해서 데쳐 놓으면 크기가 비슷한 브로콜리를 참조해도 좋다. 초고추장과 쌈장 말이다. 브로콜리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면 방울 양배추를 못 찍어 먹을 이유가 없고, 또한 양배추를 쌈장에 찍어 먹는다면 방울 양배추도 똑같이 먹을 수 있다. 제육볶음에는 찐 양배추 잎을 쌈 싸먹으면 맛있는데, 때로 이파리가 두꺼워 씹는 게 부담스러울 때 방울 양배추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밥을 한 술 떠서 제육 한 점, 쌈장 찍은 삶은 방울 양배추를 반 개 올려 같이 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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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방울 양배추를 버터에 지지면 풍미가 배가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버터에 지져 발사믹 식초 톡톡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조리의 기본이라고 했으므로 삶은 방울 양배추는 여러 갈래로 응용해 열심히 먹을 수 있다. 최소의 효과로 최대의 맛을 끌어 낼 수 있는 요령을 꼽자면 버터 지짐이다. 팬을 중불에 올리고 버터를 조금 넉넉하다 싶게 녹인다. 팬은 무쇠나 스테인리스 스틸 등, 두꺼운 것일 수록 좋다. 버터가 녹아 거품을 내며 끓어 오르기 시작하면 삶아 건진 방울 양배추의 가른 면을 팬의 바닥에 닿도록 올려 지진다. 이미 충분히 익혔으므로 방울 양배추는 버터, 특히 유당의 힘을 빌어 지진 면을 캐러멜화 해준다는 느낌으로만 익힌다. 자른 면이 검은색에 가깝도록 진한 갈색을 띠면 팬에서 꺼낸다. 방울 양배추가 너무 물러졌다면 삶는 시간을 줄인다.


지방으로 맛을 내 줬으니 산으로 균형을 잡아 주는 게 도리이다. 레몬을 필두로 사과, 와인 등의 기본적인 과일즙이나 식초류는 두말하면 잔소리 같을 정도로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가운데, 발사믹 식초가 삶아서 버터에 지진 방울 양배추를 위한 ‘히든 카드’이다. 어쩌면 신맛보다도 두드러지는 단맛 때문에 일반적인 샐러드에는 열심히 권하지 않지만, 바로 그 단맛이 방울 양배추의 뒷자락에 깔리는 씁쓸함과 균형을 잘 맞춘다. 조리가 끝난 뒤 마무리 격으로 끼얹어 버무려도 좋지만 지지는 가운데 더해 살짝 졸여주면 한결 더 맛있다. 수분이 졸아들면서 맛과 향이 한결 강해지는 것은 물론 끈끈해져 방울 양배추에 얇은 막을 한 켜 입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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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믹 식초 등으로 방울 양배추를 살짝 조리면 맛과 향이 한결 강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는 ‘글레이징(glazing)’이라 일컫는 조리법이다. 도자기 표면에 발라 구우면 광택을 내주는 유약이 ‘글레이즈’이니 조리의 글레이징 또한 식재료에 반짝이는 맛의 켜를 입혀준다. 글레이징까지 할 용의가 있다면 방울 양배추를 미리 삶지 않고 아예 팬에서 지져 익혀도 좋다. 버터를 녹여 반 가른 생 방울 양배추를 올려 6~8분 지진 뒤, 팬의 바닥에 깔리는 정도의 자작한 국물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발사믹 식초와 물을 적절히 섞어 붓고 5분 가량 졸여 물기를 날린다. 좀 더 또렷한 단맛을 원한다면 발사믹 식초를 메이플 시럽으로 대체하고 무엇이든 가지고 있는 식초를 더해 균형을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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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방울 양배추를 고추와 식초 등으로 만든 태국식 매운 소스 ‘스리라차’에 살짝 버무려도 잘 어울린다. 게티이미지뱅크

한편 ‘한국인은 누가 뭐래도 초고추장’이라는 입장을 꿋꿋하게 지켜나갈 이들에게는 제 2의 히든 카드가 있다. 바로 핫소스와 스리라차이다. 서양에 타바스코로 대표되는 핫소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스리라차가 있다. 제형과 매운맛의 강도는 다르지만 고추의 매운맛과 식초의 신맛을 함께 지니고 있어 초고추장파에게 훌륭한 대안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할 수 있다. 그냥 삶았든 지졌든 적당히 뿌려 버무리면 단맛, 신맛, 매운맛이 골고루 잘 어울려 수육이나 치킨에 잘 어울린다.


그래도 배추속이고 이파리 채소인데 방울 양배추는 대체 왜 날로 먹을 수 없는 것일까 궁금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없지는 않다. 방울 양배추를 반 갈라 최대한 가늘게 채친다. 폭이 0.5㎝ 이하로 좁아야 하니 식칼보다는 길고 뾰족한 큰 과도가 좀 더 효율적이다. 마요네즈부터 랜치 드레싱, 비네그레트에 이르기까지 좋아하는 드레싱으로 버무려 30분에서 2시간 정도 두었다가 먹는다. 그래야 방울 양배추의 숨이 조금 죽으면서 부드러워지는 한편 앞서 언급한 황의 구린내도 걷어낼 수 있다. 드레싱에 절여 두면 물기가 배어 나오므로 간은 약간 세게, 드레싱은 평소보다 조금 되직하게 만드는 게 좋다. 방울 양배추만 먹으면 왠지 심심할 것 같다면 당근이나 양배추(특히 적채)를 함께 버무리면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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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양배추는 견과류, 말린 과일 등을 곁들이면 식감과 맛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견과류ㆍ건과류ㆍ베이컨과 잘 어울려

삶고 지지고 채쳐 무치는 세 가지의 기본 조리법만 살펴 보았지만 평생 방울 양배추를 맛있게 먹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일단 그 자체로 완성된 요리이기도 하지만, 하늘의 별처럼 많은 부재료를 더해 다양한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맛과 질감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눠 살펴 볼 수 있는데 가장 쉽게 보완할 수 있는 부재료로 견과류가 있다. 아몬드부터 호두, 피칸에서 캐슈넛을 아우르고 잣, 사실은 견과류도 아닌 땅콩까지, 제각기 조금씩 다른 기름진 고소함으로 방울 양배추를 떠받들어 준다. 물론 특유의 바삭함이 북돋아주는 질감의 대조는 그냥 얻어 걸리기에는 미안한 덤이다.


다음으로는 단맛을 더해주는 부재료인 건과류가 있다. 흔하디 흔한 건포도부터 체리와 크랜베리 살구까지, 발사믹 식초의 단맛과 같은 원리로 방울 양배추의 맛을 한결 북돋아준다. 한편 석류는 건과류도 아니고 단맛이 두드러지지도 않지만 단순한 균형 잡아주기를 넘어 방점을 땅땅 찍어주는 강한 신맛과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즐거움으로 특히 방울 양배추 샐러드의 부재료로 잘 어울린다.


마지막으로 베이컨이 있다. 돼지기름은 어떤 채소의 맛도 북돋아 주는 마법의 식재료이니 방울 양배추가 누리지 못할 이유도 없다. 한두 쪽 팬에 지져 기름만 낸 뒤 방울 양배추를 지져 먹어도 좋지만, 아예 함께 요리를 만들어도 좋다. 베이컨을 먹을 수 있을 만큼 팬에 구워 기름을 녹여 내고 건진 뒤 다진 마늘을 더해 볶다가 방울 양배추를 더해 버터 지짐과 같은 요령으로 익힌다. 다 익으면 대접에 담아 바삭해진 베이컨(부스러트린다)과 균형이 맞을 만큼의 식초를 더해 버무려 먹는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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