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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한겨레

오향장육, 짙은 향료·양념장 배인 시원 쫄깃한 고기맛

한겨레

쓰촨식 마라양념을 넣은 오향장육. 박찬일 제공

젤라틴 많은 부위 삶으면 제맛

냉채류에 후끈한 고량주 궁합

돼지 족발보다 우육 사태가 대세


이국적이라는 말은 내가 어렸을 때는 중국식을 말한다고 봐도 좋았다. ‘외국인’은 화교 말고는 볼 수 없던 시대였다. 아, 서울 광화문에 강제동원되어 태극기를 흔들었던 ‘가봉 공화국의 봉고 대통령 환영 연도 행사’(1975년 7월)에서 흑인을 보기도 했지만. 그 화교들이 파는 음식은 곧 이국적인 맛을 의미했다. 짜장면이 그랬다. 심지어 중국집은 탁자에서조차 이국의 냄새가 났다. 냄새는 음식에선 향료와 장이 큰 영향을 끼친다. 인도의 냄새, 중국의 냄새, 일본의 냄새. 향료는 강하고, 장은 발효되어서 진했다. 오향장육은 향료와 장이 같이 채도 짙은 향을 뿜는다. 양념을 뒤집어쓴 차가운 고기는 입에 넣자마자 군말 없이 맛을 보여준다. 사각거리는 오이를 곁들이니 더 좋다.


중국집에서 냉채 잘하는 곳은 주방장이 자존심이 센 집이라고 생각한다. 냉채처럼 잘 팔리지 않는 음식을 고집하고 있으니. 요새는 냉채 없는 중국집이 많다. 냉채, 채소, 생선요리가 중국집에서 사라져간다. 안 시키니 안 만들고, 그러다보니 만들어도 맛이 없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중국요리가 얼마나 많은지. 냉채나 장육(장육도 차가운 요리니 냉채다)을 시켜서 고량 같은 술을 마신다. 수수를 넣은 고량주는 입에 짝짝 붙는다. 쌀로 만든 소주가 세련되게 목을 훑고 지나간다면, 고량주는 정수리로 치고 오는 것 같다. 맥주는 1-2-3-4로 올라가는 술인데, 중국집 고량주는 6-3-1로 정수리부터 태워내려간다. 그 후끈한 스트레이트가 좋아서 마셨다가 이제는 슬슬 맥주로 갈아탄다. 고량에도 얼음을 탄다.

만두집의 신비로운 고급음식

입맛도 없고 시원한 술 한잔 하려고 소 사태를 삶았다. 기왕 양념을 특이하게. 오향장육으로. 오향은 이제 배합된 걸 판다. 레시피도 많다. 오이에 얹어 먹기로 했다. 좋은 중국집에는 꼭 냉채를 파는데, 양장피며 삼품냉채 같은 것이었다. 냉채에 장육이 같이 나오곤 했다. 삶아 식힌 고기에 양념을 끼얹고 오이와 곁들였다. 만들어두고 냉장해서 며칠이고 먹을 수 있다. 더운 날 술안주로 그만이다. 특별한 음식이니 멋도 난다. 위스키하이볼, 요새 유행하는 중국술 하이볼도 좋다. 그냥 맥주나 소주도 잘 어울린다.


젤라틴 많은 부위는 사실 싸다. 소고기 말이다. 구워먹을 수 없다는 뜻이다. 체중을 지탱하는 부위다.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하는 관절 옆이라 젤라틴이 많다. 새나 닭 날개, 소 정강이살, 돼지 족발, 머리의 볼살 같은 데가 그렇다. 똑똑한 조상들이 일찍이 알았다. 푹 삶으면 맛있다는 걸. 인터넷에서 소 정강이살을 샀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서울 시내에 가면, 특히 다동이나 을지로, 북창동처럼 화교 많은 곳엔 좀 특이한 중국집이 있었다. 보통 중국집이라면 요리와 면을 판다. 한데 이 특별한 집에서는 짜장면이나 볶음밥을 팔지 않았다. 더러는 그런 걸 찾는 이들을 내치듯 ‘짜장 짬뽕 없음’이라 써붙여 놓기도 했다. 그걸 모르고 한번은 교복 입은 우리들이 우르르 몰려 갔더니, 차이나칼라 면직물 청나라 옷을 입은 할머니가 그랬다.

“만두 있어요. 짜장면 없어.”

우린 그뒤로 그 집을 중국집이 아니고 만둣집이라거나 공갈빵집이라 불렀다. 그때 중국집 가게는 대개 작았다. 좀 거친 나무로 짠 문틀과 창틀에 유리를 끼우고 페인트로 ‘대중식사 연회석완비’를 적어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통 중국집과 달리 공갈빵집, 만두집만큼은 좀 특별한 장식을 하고 있었다. 돌출한 입체 유리장을 길거리쪽으로 붙여 짜 넣었다. 그 진열장 안에 만두며 공갈빵을 진열하곤 했다. 그 유리장 밖에는 소년들이 하염없이 침을 흘리며 서 있곤 했다.


그런 만두집에 정말 맛있는 다른 고급음식이 있다는 건 어른이 다 되어 알았다. 가게 바깥에 써붙인 ‘五香醬肉(오향장육)’이란 한자를 읽을 줄 알게 될 무렵부터 저 신비로운 음식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제는 인터넷을 쳐서 3분이면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음식. 물론 공갈빵집에서 풍겨오던 밀가루 타는 냄새 -이게 오븐에서 빵이 익는 냄새란 걸 나중에 알았다- 와이셔츠 입고 카운터에 앉아 있는 중국인 노인도 없는 오향장육은 진짜가 아니겠지만.

쓰촨식 마라 양념 레시피

덧붙이면, 옛날 중국집은 연회도 할 수 있던 거대한 요릿집, 요리와 음식을 어지간히 갖추고 있던 대중식사집, 그리고 만두와 공갈빵을 파는 가벼운 가게 정도로 분류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만두집의 일부가 오향장육(또는 오향족발)도 같이 팔았다는 점이다. 배갈도 있고, 몇 가지 요리도 있었다. 뭐랄까. 좀 특화된 소흘(小吃店, 중국식 스낵)이 되었다. 배갈에 오향장육 즐기던 옛날 아저씨들. 듣기로는 소고기보다는 돼지 족발이나 정강이살로 만드는 게 더 흔했다 한다. 내가 어른이 된 후로는 소고기 정강이살(사태)이 표준이었다. 서울은 그랬다. 아마도 수입 소고기가 늘면서 좀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고기 오향장육으로 대세가 기운 것일까. 더는 사람들이 이런 중국집으로 족발을 먹으러 가지 않았다. 장충동이며 많은 동네에 한국형 돼지족발집이 생겼다.


부산에선 여전히 오향장육은 흔히 돼지고기 사태로 만든다. 변화가 더디고 입맛이 고집 센 부산의 문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초량에 만두집이 많고 거의 다 오향장육을 판다. 초량 언덕배기에는 한 가게가 있다. 노장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방을 물려주고 은퇴해서 가게앞에서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보기 좋던 ‘석기시대’다. 만두랑 돼지 오향장육을 판다. 왜 상호가 ‘석기시대’냐고 그 노장 아버지께 물었더니 “내 이름이 석기요”했는데, 그게 진인지 농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입 무거운 부산사내에게 두 번 묻는 거 아니다.


내가 이번에 만든 건 한국의 옛 중국집식의 오향장육은 아니다. 쓰촨식의 마라양념을 넣었다. 원래 우리 중국집에는 ‘짠슬’이라고 하는 젤라틴 양념을 냈다. 족발이나 사태를 삶으면 진득한 육수가 고이는데 여기에 간장이나 춘장 양념을 해서 굳혀 썰어내는 걸 말한다. 쓰다보니, 냉채에 꼭 나오던 피단(삭힌 오리알)도 그립다. 중국집 요리사들이 일일이 가게에서 삭혀 만들던. 이제는 제대로 된 피단은 한국에서 보기 어렵다.


고기용 재료


소 사태 500그램, 파 반 뿌리, 마늘 1개, 생강 손톱만큼, 소주 소주잔으로 2잔분, 소금 1작은술, 오향분 반 작은술


소스용 재료


고추기름 5큰술, 마자오가루 반 찻술, 청양고추 반 개 다짐, 다진 마늘 1큰술, 파 흰부분 다진 것 약간, 후추 약간, 설탕 1큰술, 간장 2큰술, 식초 1큰술, 고운 고춧가루 1큰술, 오이 1개


만드는 법


1. 먼저 고기를 삶는다. 냄비에 사태를 통째로 넣고 물을 2리터를 넣는다. 거품을 걷어내며 센불 10분, 중약불로 줄인다.

2. 거품을 걷어내고, 모든 고기용 재료를 넣어 중약불로 계속 삶는다.

3. 소스를 모두 합쳐 제조한다. 냉장한다.

4. 고기는 2시간 삶아 식혀 냉장한다.

5. 고수, 오이를 곁들여 먹는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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