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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소스는 직설적이다

토마토 소스에는 어려운 말도 필요 없고 허례의식, 격식도 필요 없다

 

토마토 소스는 직설적이다. 입에 넣으면 글루탐산의 감칠맛이 혀를 조이고 앙칼진 신맛이 침샘을 자극한다. 그리고 은은히 입안을 가득 메우는 단맛, 이 세 가지의 조합은 마법이다. 여기에 토마토 특유의 생그러운 풍미가 더해지면 거의 완벽한 맛을 창조해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모두 가진 남자다. 키 184센티미터, 찰랑이는 금발, 눈빛만으로도 여자 옷을 벗길 것 같은 섹시한 코발트 빛 눈동자, 매번 바뀌는 모델 여자친구…. 얼굴만 믿고 연기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도전적이고 힘든 역은 모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몰리는 것 같다. ‘더 울프 오브 어메리카’에서는 뱃살을 드러낸 채 마약에 취한 연기를 했고 차기작 ‘더 레버런트’에서는 영하의 온도에서 동물의 사체 속에서 자고 얼음을 깨며 강물을 건넜다. 


그런데 그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카데미 상이다. 다섯 번이나 아카데미 상에 노미네이트 됐지만 아직 한 번도 타지 못했다. 물론 일곱 번 째에 상을 탄 알 파치노를 떠올리면 조금 위안이 되지만, 대 배우의 길을 가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아카데미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 왜일까? 왜 디카프리오는 상을 받지 못할까? 내가 생각한 이유는 이거다. 너무 잘 생겼고, 너무 완벽하다. 완벽한 외모, 극에 완전히 빠져드는 매소드 연기, 너무 잘 하니까 오히려 과소평가받는다. 음식 중에도 디카프리오 같은 게 있다. 너무 맛있고 만들기도 너무 쉽다. 그런데 너무 좋으니까 고급으로 쳐주질 않는다. 이 녀석의 이름은 토마토 소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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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레스토랑, 그러니까 파인 다이닝(fine dining)하는 레스토랑 치고 토마토 소스를 내놓는 곳이 없다. 그것보다 조금 더 고상한 것들을 취급하는 게 보통이다. 섬세한 맛, 조금 더 복잡한 맛, 생각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는 맛이 고급스럽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토마토 소스는 직설적이다. 입에 넣으면 글루탐산의 감칠맛이 혀를 조이고 앙칼진 신맛이 침샘을 자극한다. 그리고 은은히 입안을 가득 메우는 단맛, 이 세 가지의 조합은 마법이다. 여기에 토마토 특유의 생그러운 풍미가 더해지면 거의 완벽한 맛을 창조해낸다. 그 맛은 배후가 없고 복선이 없다. 소리 높은 소프라노처럼 먹는 즉시 혀를 지배한다. 이 열정적인 소스는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낭만주의자요, 핑크빛 로맨티스트다. 이탈리아 음식 태반에 토마토가 들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다. 토마토는 다시 말하지만 거의 완벽하다. 


콜롬버스가 남미에서 토마토를 가지고 온 이후 이탈리아는 토마토에 중독됐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쓴 미국의 음식전문 저술가인 마이클 폴란은 이탈리아 음식이 프랑스에 비해 다양성이 떨어지게 된 것은 바로 토마토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그럴 수 있다. 너무 맛있거든! 여러 번 한 말이지만 토마토 소스는 어디에도 잘 어울린다. 


이탈리아에는 수십, 수백 종류의 파스타가 있다고 하는데 그 모든 파스타는 토마토 소스와 한몸처럼 어울린다. 피자는 또 어떤가? 토마토 소스 쓱 바르고, 바질 한 줌으로 정직하게 만든 피자 반죽과 뜨거운 장작불만 있으면 누구나 사족을 못 쓰는 피자가 나온다. 스테이크와 토마토 소스도 좋다. 스테이크는 스테이크니까 소금만 있어도 맛있지 않느냐는 반문은 잠깐 접어두자. 스테이크에 토마토 소스를 찍어 먹으면 맛이 배가된다. 살짝 스모키(smoky)한 토마토 소스와 크러스트가 제대로 생긴 등심 스테이크를 떠올리면, “오 마이 갓, 맘마미야!”를 외치게 된다. 갖은 양념을 치면 맛 없는 음식이 없듯 토마토 소스와 함께라면 맛없는 음식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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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토마토 소스 만드는 법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토마토 소스 만드는 법은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별의별 버전이 다 있다. 양파를 어떻게 구워야 하는지, 분 단위로 쪼개어 설명한 이도 다수다. 하지만 세상에 사람이 많다고 나의 존재 이유가 없진 않은 법. 오늘 말하고 싶은 토마토 소스는 세상에서 제일 간단한 토마토 소스다. 


여기서 도우미로 소환해야 할 사람이 있다. 또 다시 내 전(前) 동거인, 알베르토다. 카르보나라에서 소개했듯 알베르토의 직업은 트럭 운전사.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그의 고향은 이탈리아 하고도 자그마치 나폴리다. 다른 데도 아닌 태양의 도시 나폴리! 나는 가본 적 없지만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피자집 ‘미켈레 (PIZZERIA DA MICHELE)’가 있는 그곳 아닌가? 


이 이탈리아 남자는 나폴리 출신 아니랄까봐 요리도 꽤 했다. 프로 요리사는 아니었지만 맥을 짚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특히 이탈리아 요리가 그랬다(물론 이탈리아 요리만 했지만). 자 그렇다면 알베르토의 토마토 소스에는 비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가게에서 파는 소스는 안 써. 비싸고 맛이 없거든.”


병에 담아 파는 소스는 왜 안 쓰냐는 나의 질문에 대한 알베르토의 답이었다. 심한 짠돌이이기도 했던 알베르토. 콩 한 쪽도 자기가 다 먹어야 제맛이라는 알베르토지만 그래도 배고픈 동양남자가 불쌍했는지 먹다 남은 파스타를 가끔 주곤 했는데, 첫째가 달걀만 넣은 카르보나라였고 둘째가 토마토 소스를 넣은 파스타였다. 양파도 없고 당근도 없고 요즘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샐러리도 없는 심플한 소스는 단순했지만 맛있었다. 


“어? 맛있네.”


나의 칭찬에 으쓱한 알베르토. 집세라도 좀 싸게 줬음 너와 나 진정한 친구로 남았을 텐데. 어쨌든 지난 일은 지난 일. 이제 남은 것은 그의 레시피 뿐이다. 


알베르토 토마토 소스의 비법은 간단하다. 어떻게 만드는고 하니, 마늘 두 쪽 바질 한 줌, 그리고 토마토 통조림만 있으면 된다. 토마토 통조림에서 발끈하는 분들도 있겠다. 생 토마토를 써야 하는 거 아니냐는 근본 원리주의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일일이 답해주는 것도 피곤하지만 굳이 답을 한다면 토마토 통조림이 오히려 더 맛있다는 거.


이탈리아 현지가 아닌 이상 제대로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구하기는 어렵다. 대륙성 기후로 겨울에는 영하 10도 넘게 기온이 내려가는 한반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단맛도 신맛도 다 떨어지는 토마토로 만든 소스는 영혼도 없고 맛도 없다. 그러니 차라리 수입된 토마토 통조림을 쓰는 게 좋다. 베리 파인(very fine)한 레스토랑도 다 통조림을 쓰니 양심의 가책 가질 필요 없다. 


먼저 올리브 오일을 팬에 콸콸 붓는다. 달걀 프라이 부치듯이 코팅하는 게 아니라 콸콸 부어야 정통 이탈리안 맛이 난다. 이탈리아 맛이란 과잉이고 카타르시스다. 사춘기의 사랑처럼 아끼지 말자. 그리고 편을 친 마늘을 기름에 넣는다. 마늘이 갈색으로 노릇하게 익을 즈음, 잘게 갈아놓은 토마토를 붓는다. 


여기서 잠깐. 토마토가 담겨 있던 토마토 통조림 캔은 버리면 안 된다. 캔에 다시 물을 담고 잘 흔들어서 남은 토마토 찌꺼기까지 모두 팬에 붓는다. 팬 위에 토마토 소스가 보글보글 끓으면 준비해둔 바질 한 줌을 쿨하고 무심하게 툭 넣고 휘이휘이 저으면 바로 간단한 토마토 소스가 완성된다. 소금 후추 간은 잊지 마시라. 레시피에 나오지 않는다고 넘어가면 안 된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 가듯이 당연한 거라서 안 적었을 뿐이다.


이렇게 완성된 토마토 소스는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묽다. 맛도 복잡다단하지 않다. 하지만 당신이 간만 제대로 했다면 이 맛은 단순하지만 명쾌하고 저 남국의 햇살처럼 싱싱할 것이다. 무엇보다 20대 찬란한 젊음처럼 그 자체로 빛나는 맛이리라. 


토마토 소스에는 어려운 말도 필요 없고 허례의식, 격식도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큰 파스타 접시와 포크, 식사를 함께할 사람만 있으면 된다. 토마토 소스를 먹는 날에는, 진하게 화장한 듯 짜릿하게 올라오는 산미가 입맛을 돋우는 이탈리아 산 와인도 좋고, 입가에 빨간 소스를 묻히고 짓궂은 농담을 해도 좋다. 밤이 길어도 좋고 날이 추워도 좋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상을 못 받아도 좋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도 어쨌든 좋다. 왜냐면, 지금 빨간 토마토 소스가 내 몸에 스며들고 있으니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글 | 정동현(셰프)




토마토 소스는 직설적이다

셰프의 빨간 노트
정동현 저 | 엑스오북스(XOBOOKS)


다큐멘터리의 카메라처럼 유럽과 호주 레스토랑의 주방 풍경과 셰프들의 뜨거운 전투를 현장감 있게 속속들이 비춰준다. 그 장면 하나하나가 눈과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은 셰프들의 벌거벗은 조리 과정을 비롯해 음식에 얽혀 있는 역사와 영화, 예술, 여행 이야기, 나아가 러브 스토리까지 버무려 놓기 때문이다. 군침 넘어가는 레시피와 음식에 관한 깨알 같은 상식과 에티켓까지 음미하고 나면 서양 음식 앞에서 생기는 괜한 주눅도 말끔하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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