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맛집? 뭐, 어디든 먹을 만은 해유
뭘 봐유, 보긴. 여기 아무것도 없슈.
음식? 뭐가 있간. 그럭저럭 먹을 만해유. 뭐, 이상하진 않어유.
청주는 내륙이지만 호수라는 큰물을 품고 있다. 문의문화재단지에서 본 대청호. 어째 바다 비슷하쥬? |
서울에 대면 쬐끄만 동네쥬
충청도(忠淸道)는 충주(忠州)와 청주(淸州)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지명이다. 그래서 청주는 어엿한 호서(湖西)의 중심도시다. 이때 호(湖)는 제천 의림지 또는 호강이라 불리던 금강을 뜻한다. 살펴보면 왜구 탓인지 조선의 중심도시는 바닷가가 하나도 없다. 경주 상주의 경상도, 전주 나주의 전라도다. 해안을 낀 충청남도는 살짝 비켜 있었다.
“뭐가 많어유. 서울에 대면 쬐끄만 동네쥬.” 말은 이렇지만 지금도 충북도청 소재지이자 최대 도시다. 인구 85만여 명의 대도시로 호서 제2대 도시로 꼽힌다. 광역시인 대전을 제외하면 충청도 최대 도시다. 당연히 충북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도시이며 교육도시로도 명성이 드높다. 교통도 좋다. 철도와 도로가 사방을 연결한다.
청주는 분지다. 도심과 신구 시가지를 중심으로 서쪽엔 부모산이 있고 동쪽엔 우암산 등 온통 산악 지형으로 둘러싸여 있다. 중심엔 무심천이 관통하고 있고 ‘내륙의 바다’ 대청호까지 품었다. 시내에는 산단과 석교 등 육거리가 유독 많다. 심지어 칠거리(내덕)도 있다. 내비게이션 패널에 낯선 별 모양 지도가 그려진다.
구도심은 옛 청주읍성 안에 있던 성안길이다. 택시를 타고 “시내 가유” 하면 이곳이다. 유럽의 성안(Burgh) 마을인 셈이다.
“헐 껀 다 허고 살어유.”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가 2년마다 열리고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직지심체요절이 청주 흥덕사에서 나왔다. 문화 예술적 수준이 높다. 요즘 문화 관련 시설로 가장 돋보이는 곳은 문화제조창이다. 원래는 담배를 만들던 전매청의 국내 최대 연초제조창이었는데 지난 2004년 폐쇄된 이후 2019년 담배 연기가 아니라 문화 향기를 펄펄 피우는 문화제조창으로 바뀌었다.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우암산 수암골은 청주의 ‘핫플’이 됐다. 골목마다 다양한 벽화가 있어 벽화 마을로 불린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흔히 등장했다. 베이커리 카페인 ‘풀문’과 ‘오지’가 야경명소로 인기가 높다. 오지 카페는 270도 파노라마 전망이 펼쳐지는 야외 테라스도 갖췄다. 9월엔 조금 덥긴 하지만 ‘오지게’ 덥진 않다. 수암골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촬영지로 알려져 지금까지 순례객을 모으고 있는 ‘영광이네 분식’이 있다. 우동과 돈가스, 고로케(크로켓) 등을 잘한다.
이상하진 않어유
“먹을 만해유.” 충청도식 화법이다. 보통 충청도 양반들에게 뭔가 맛있는 집을 물어보면 당최 맛있다는 게 없다. 삼겹살거리나 ‘짜글이’가 어떠냐고 물으면 “뭐, 딴 덴 그런 거 없대유?” 한다. 음식 맛에 대한 청주 사람들의 최고 극찬은 ‘먹을 만해유’나 ‘이상하진 않어유’다.
삼겹살도 청주가 일찌감치 시작했다. 기쥬? |
우선 ‘삼겹살거리’가 서문시장에 있다. 삼겹살을 파는 곳이야 전국 어디나 있지만 이렇게 한데 모여 있는 곳도 드물다. 간장에 적셔 굽는다는 점이 색다르다. 저마다 특제 간장 소스를 만들어 간장 삼겹살을 판다. 청주는 예전부터 돼지고기로 유명했다.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도 청주에서 해마다 돼지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겹살이 전국적 인기를 끌기도 전인 1960년대 이미 삼겹살을 ‘시오야키(소금구이의 일본어 표현)’로 구워 먹었다. 1970년대 초부터는 간장 소스에 담가 철판에 구워 먹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한다. 특히 대파를 채 썰어 양념에 버무리는 ‘파조리개’가 이곳에서 처음 나왔다고 하니 과연 찾아 ‘먹을 만하다’. 서문시장 터주 격인 ‘함지락’에서 잘한다. 구울 때 옅은 간장물을 끼얹어 두꺼운 삼겹살의 느끼함을 잡고 속살의 풍미를 돋운다. 돼지고기 요리로는 ‘짜글이’도 있는데 김치와 돼지고기, 감자 등을 자작하게 지져 먹는 음식이다. 시내 곳곳에 짜글이 맛집이 있다.
‘빨간고기’도 빼놓을 수 없다. 기사식당으로 출발한 ‘봉룡불고기’. 처음부터 빨갛지는 않다. 고기를 굽다가 양념국물을 부어 익힌 후 물을 빼고 양념을 넣고 볶아 먹는다. 양을 다소 줄이고 저렴하게 파는 기사식당 메뉴가 따로 있다. 매운 양념이지만 기름기와 적절히 섞여 식사를 겸한 안줏거리로 딱 좋다. 이 외에도 돼지 한 마리에서 딱 한 덩어리 나온다는 울대(목갈비)와 특수부위를 넣고 끓여 낸 울대찌개도 있고, 짬뽕에도 해산물보다는 고기가 잔뜩 들어가니 역시 내륙(內陸)은 내륙(內肉)이다. 분평동 ‘청풍루’는 진정한 ‘고기짬뽕’ 맛집이다. 칼칼한 양념이라 느끼함은 덜하다. 토박이들은 군만두를 국물에 푹 적셔 먹는다.
다슬기(올갱이)는 충북의 상징 식재료다. 해장에도 좋구 뭐 이상하진 않어유 |
해장 걱정도 없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귀에 익은 전국구 명성의 ‘남주동해장국’이 청주에서 출발했고 현재도 영업 중이다. 소고기와 선지를 듬뿍 넣은 역시 매콤한 맛의 해장국이다. 매운맛이 싫다면 ‘올갱이국(다슬기국)’을 찾으면 된다. ‘서문동 상주집’. 콩가루에 굴린 다슬기와 우거지 배추로 끓인 된장 베이스 올갱이국을 하는 집이다. 구수하고 시원한 국 안에 다슬기가 푸짐하게 들었다. 신시가지엔 유명한 고깃집도 있고 닭발집도 있다. 가경동 ‘로얄닭발’은 매콤하게 볶아 먹는 닭발이 주메뉴인 포차로 새벽까지 인기를 끄는 집. 두툼한 닭발을 철판 볶음 형식으로 볶아 먹는데 맵싸한 양념에 소주병이 끊이지 않는다. 어찌 괜찮쥬? 청주, 먹을 만해유.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트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