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왜 커피를 끊었을까
“저는 술을 못 마십니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습니다.”
한강(사진)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 첫 마디가 커피애호가에게 화두이다. 그것은 ‘오롯이 홀로 서겠다’는 절규이기도 했다. 작문 스타일은 바쿠스적이냐, 아폴론적이냐로 이분되기도 한다. 한강은 양 진영의 한계를 벗어났음을 자기 고백처럼 조곤조곤 들려줬다.
한강의 글은 군더더기가 없고, 어느 한 줄 우연이 없다. 마디마디가 결국 생명으로 꿈틀거린다. 접속사나 외마디 감탄사마저도 ‘복선’이 아닐까 싶은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그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공식 석상에서 ‘술’과 ‘커피’와 그리고 ‘카페인’을 가장 먼저 꺼내 들었다. 이를 치밀한 ‘서사 전략’으로 풀이한다면 지나칠까?
헤밍웨이가 “술에 취해 글을 쓰고, 깬 뒤에 고쳐라(Write drunk, edit sober)”고 말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진위가 모호하지만, 그가 영감의 원천으로 술을 즐기면서도 글을 완성하는 순간에는 이성에 귀의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겠다.
알코올을 적정량 섭취했을 때 효과적인 자극제가 된다는 연구결과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커피를 마셨을 때 나타나는 창의성 및 생산성 향상 효과를 술로도 볼 수 있다는 내용들이다. 다만 술을 마시면 엔도르핀이, 커피를 마시면 도파민의 분비가 각각 더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엔도르핀은 통증과 스트레스를 완화해 기분을 좋게 하는 한편 도파민은 즐거움과 인지 기능을 향상시켜 긍정적인 감정과 웰빙 상태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됐다.
수상소감을 미뤄 짐작해보면 한강 작가는 커피를 꽤 많이 마신 것으로 보인다. 발자크나 카뮈, 괴테나 키르케고르처럼 글을 쓸 때 에너지를 솟구치게 하는 효과가 카페인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간파하고 나중에는 그 물질에 탐닉한 시기도 있었을 성싶다.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라면 결국 ‘카페인 디톡스(Caffeine detox) 과정’을 밟게 된다. 매일 커피를 몸에 주입하는 바람에 24시간 내내 혈관에 남아 있게 된 카페인을 배출하려고 애를 쓰는 시기이다. 혈관에 카페인을 일정량 이상 담고 있지 않으면, 마치 감기 증상처럼 머리가 지끈거림을 겪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연거푸 하품을 하며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볼테르, 사르트르, 스타인, 포프 등 걸출한 작가들의 커피 사랑은 대체로 그들의 전성기에 빚어진 이야기이다. 그들이 카페인 디톡스를 해야 할 처지에 몰렸을 때 일화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한강처럼 카페인을 멀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지금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운명처럼 다가올 커피와의 이별에도 대비해야 한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그것을 더욱 오래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 잔의 커피가 문학가로 하여금 영감을 떠오르게 한다고 말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아이디어보다는 실천력에서 커피가 유효함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 유시 데이비스(UC Davis)의 연구결과, 커피(더 정확히는 카페인)는 창조성이나 기술적 능력을 향상시키기보다는 일할 수 있는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소설을 쓸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굴려 볼 때 에너지 음료나 커피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얼개가 맞춰지면 카페인은 초안을 더 빨리 작성하는 데 역할을 해 준다. 한강이 다시 커피 잔을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새 소설이 곧 나올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도 좋겠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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