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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세계일보

소금에 절이거나 찌고 말리고 훈연… 풍미를 입힌다

‘더 큐어링’ 박진필 셰프

20대 후반 늦은 나이에 요리 눈떠

육가공품을 총칭하는 ‘샤퀴테리’

원서·영상 참고해 독학으로 습득

치즈 플래터의 햄·소시지 등 해당

하몽·살라미·잠봉으로 많이 알려져

“나를 지탱해주는 원칙은 ‘꾸준함’”


더 큐어링의 박진필 셰프를 만났다. 박 셰프는 어린 시절에 요리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만화가를 꿈꿨기 때문에 28살까지 만화 습작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을 만화에 투자했지만 만화가가 되어서 작품을 선보인다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앞날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었지만 문득 뒤돌아보니 스스로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스스로 벌어서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여러 가지 직업을 찾아보다가 이탈리아 요리가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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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필 셰프

전공과 무관한 일이다 보니 유명한 레스토랑을 찾아가서 일하겠다고 무작정 들이밀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20대 후반이 되어가는 나이에 처음 시작하는 직업은 문턱이 매우 높았다. 막내로 들어가기에는 많은 나이였기에 대부분의 업장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많은 곳에서 거절당했지만 꾸준히 레스토랑의 문을 두드렸고 마침내 안나비니에 입사했다. 안나비니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이탈리안 요리의 최전방 업체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업장이었다. 운이 좋게 가장 바쁜 매장에 취업하면서 그동안 요리에 대해 가져왔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어린 나이에는 단순히 재미있고 인기가 많은 직업이라는 생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우연히 시작된 요리를 꾸준히 하다 보니 요리의 진정성을 알게 됐고 지금은 레스토랑 더 큐어링의 오너 셰프가 되었다.


더 큐어링은 샤퀴테리를 기반으로 하는 와인 바이다. 샤퀴테리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아직 많지 않지만 사실 그 용어가 생소할 뿐이며, 이미 샤퀴테리는 우리가 많이 접하고, 먹고 있다. 샤퀴테리는 고기와 고기의 부속물을 사용하여 만드는 육가공품을 총칭하는 프랑스어이다. ‘chair(살코기)’와 ‘cuit(가공된)’가 합쳐진 단어로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으로 양산하는 공장 제품이 아니라 전통적인 방식과 자연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직접 수제로 만드는 육가공품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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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퀴테리 숙성 모습

최근에 와인을 마실 때 흔히 제공되는 치즈 플래터에 올라가는 햄이나 다양한 소시지의 종류들도 넓은 의미에서 샤퀴테리라고 할 수 있다. 샤퀴테리는 소금에 절이거나 바람에 건조시키는 방식, 훈연하는 방식, 익히고 찌는 방식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한다.


하몽(스페인), 프로슈토(이탈리아), 살라미(이탈리아), 리예트(프랑스), 잠봉(프랑스) 등이 대표적이다. 박 셰프는 샤퀴테리라는 아직은 생소한 장르를 선택했지만 샤퀴테리 제품들이 앞으로 사람들에게 더 알려지고 시장도 더 커지기를 기대한다. 샤퀴테리 시장이 넓어진다는 건 식문화 관련 전문점들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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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체타

더 큐어링은 ‘큐어(Cure)’에서 그 의미를 가지고 왔다. 큐어는 원래 ‘치유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지만 조리 용어로는 ‘절이다’ ‘염장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 큐어링은 샤퀴테리 다이닝을 표방하고 있기에 이름에서부터도 샤퀴테리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업장의 이름을 더 큐어링이라고 정했다.


박 셰프는 직접 만드는 샤퀴테리 7종과 와인과 어울리는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샤퀴테리를 어렵게 느끼고 있어서 입맛에 맞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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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퀴테리 플레이트

더 큐어링의 시그니처 메뉴는 당연히 샤퀴테리다. 박 셰프는 유학 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외국 셰프에게 만드는 방법을 전수받지 않았음에도 그냥 샤퀴테리를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원서를 사고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면서 공부했다. 수많은 실패 끝에 스스로 조율해 완성시킨 만큼 박 셰프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뛰어나다. 더 큐어링의 샤퀴테리는 유럽보다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져 있어서 염도의 정도가 적당히 조절되어 있다. 목살로 만드는 카피콜라, 등심으로 만드는 론자, 홍두깨살로 만드는 브레사올라, 훈연 후 익혀서 만드는 베이컨과, 로인 햄, 위스키와 너무 궁합이 좋은 테린 등 다양한 샤퀴테리 제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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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박 셰프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꾸준함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꾸준함이야말로 스스로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업장을 운영하다 보면 잘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고 바쁜 날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흔들려서 자기만의 루틴을 잃어버리면 꾸준함이 사라지게 된다. 꾸준함을 잃으면 아무리 재기발랄한 음식을 하고 유행하는 음식을 만들어 내어도 시간이 지났을 때 그때만의 유행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함이야말로 박 셰프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직업 철학이다.


꾸준히 샤퀴테리를 연마하고 있는 박 셰프는 앞으로 샤퀴테리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더 큐어링을 꾸려갈 계획이다. 또 다른 분야의 요리들과 같이 협업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고 나중에는 박 셰프만의 레시피들을 공유, 교육할 작정이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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