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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더 건강한 빵을 만들고 싶었어요”…‘효모빵’에 푹빠진 김경란 아나운서

-천연 발효종 넣은 건강빵에 매료, ‘르 꼬르동 블루’ 과정도 수료

-빵과 어울리는 음식도 연구, ‘로푸드 디저트’로까지 관심 이어져


[리얼푸드=박준규 기자] ‘KBS 뉴스9’, ‘스펀지’, ‘사랑의 리퀘스트’, ‘열린 음악회’…. 김경란 아나운서는 KBS에서 이른바 ‘전천후 아나운서’였다. 메인 뉴스부터 교양ㆍ오락 프로그램까지 잡아보지 않은 마이크가 없었다. 귓속 인이어에서 “15초만 끌어주세요”라는 PD의 주문이 흘러나오면 기계처럼 15초간 멘트를 날렸다. ‘너는 천생 아나운서다’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초 단위로 흘러가던 아나운서 김경란의 ‘머릿 속 시계’가 이제는 한참 늘어졌다. 오븐 속에서 빵 반죽이 부푸는 모습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켜본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온갖 빵 사진이 즐비하다. 지난 12일 영등포 당산동에 있는 한 쿠킹 스튜디오에서 김경란 아나운서를 만났다. 사진기자의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우러나왔다. 수줍어하는 여느 인터뷰이들과 달랐다.

김경란 아나운서의 빵엔 그저 물, 밀, 소금, 천연 발효종이 들어간다. 이스트나 첨가물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김경란 아나운서의 빵엔 그저 물, 밀, 소금, 천연 발효종이 들어간다. 이스트나 첨가물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홈 베이커’가 되다

그는 빵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빵순이’라고 불렀다. 김 아나운서의 아버지가 서른 넘은 딸에게 “빵 좀 그만 먹어라” 할 정도였다. ‘밥보다 더 건강한 빵을 직접 만들겠다’는 각오로 홈 베이커(Home baker)로 나선 게 3년 전이다.


초보 홈 베이커는 스펠트밀 같은 ‘고대 밀’에 매료됐다. 아버지께서 당뇨로 고생하셨던 터라, 먹어도 당 수치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말에 솔깃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 밀로 만드는 빵이 흔하지 않았다. 직접 밀을 구해다가 반죽을 치고 연구했다. 여느 빵에나 들어가는 이스트 대신 천연 발효종을 넣었다. 

김 아나운서가 집에서 준비해 온 사워도우 반죽. 반죽을 집 밖으로 가져나온 건 이날이 처음이라고 했다. [사진=윤병찬 기자]

김 아나운서가 집에서 준비해 온 사워도우 반죽. 반죽을 집 밖으로 가져나온 건 이날이 처음이라고 했다. [사진=윤병찬 기자]

“금세 빵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부스스한 채로 전날 만들어 둔 빵을 씹으면 ‘아 오늘도 빵을 만들어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빵 만들기에 흠뻑 빠진 그는 결국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로 했다. 지난해 숙명여대에 개설된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의 6개월 제빵과정을 거쳤다. 프랑스인 셰프의 가르침을 받으며, 유럽식 빵에 눈을 떴다.


“철저히 실습 중심의 과정이었어요. 아침부터 오후까지 내내 서서 수업을 듣다보니 다리는 퉁퉁 부었죠. 그래도 즐거웠어요. 각자 알아서 반죽하고 굽는 게 아니라, 큼지막한 반죽을 함께 만들고 그걸 조금씩 떼어서 모양을 내고 큰 오븐에 함께 굽거든요. 동기들과 팀으로 움직이며 배우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김경란 아나운서는 옷 소매를 걷어 팔꿈치를 보여줬다. 불그스름한 흉터가 보였다. “과정 초반에 제가 오븐을 담당한 적이 있거든요. 마음만 앞서다가 뜨거운 오븐에 데었죠.”


#빵을 사람 다루듯

그는 인터뷰 자리에 네 가지 빵을 가져왔다. ▷흑맥주 사워도우 ▷아마란스 브로트 ▷리코타 통밀 사워도우 ▷세몰리나 50% 사워도우. 집에서 미리 구운 것인데 투박한 생김새가 달콤함이라곤 하나도 없어보였다.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선 만나기 힘든 비주얼.


하지만 그런 인상은 금세 날아갔다. 김 아나운서가 칼로 썰어 건네준 빵 맛을 보고 나서다. 물 대신 기네스 맥주를 넣었다는 ‘흑맥주 사워도우’에선 흑맥주 특유의 풍미가 은은하게 풍겼다. 아마란스를 불려서 반죽에 첨가한 ‘아마란스 브로트’는 중간 중간 박힌 아마란스 알갱이를 씹는 재미가 있었다. 무뚝뚝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모든 빵이 촉촉함과 쫄깃함을 품고 있었다. 

‘아마란스 브로트’ 향을 맡는 김경란 아나운서. 브로트는 독일식 ‘벽돌빵’을 말한다. [사진=윤병찬 기자]

‘아마란스 브로트’ 향을 맡는 김경란 아나운서. 브로트는 독일식 ‘벽돌빵’을 말한다. [사진=윤병찬 기자]

“되게 정직한 빵들이에요. 이스트나 첨가물은 하나도 넣지 않았고요. 물과 밀, 소금, 천연 발효종이 기본이에요. 거기에 아마란스나 아마씨, 치아씨 같은 슈퍼푸드를 넣어 변화를 줄 뿐이죠. 1~2시간이면 뚝딱 만드는 게 아녜요. 아마란스, 치아씨 같은 것들은 일단 4시간 이상 불려야 하고 반죽도 저온에서 반나절씩 숙성해 둬야 하니까요.”


김 아나운서는 이날 집에서 가져온 반죽을 오븐에 굽는 모습도 보여줬다. 반죽을 집 밖으로 가져나온 건 처음이라 했다. “그런데 반죽이 지쳤는지 힘이 없어요. 제대로 부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하기도 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틈틈이 오븐 속 반죽을 살폈다. “얘가 안간힘을 쓰네요. 나름 꿋꿋하게 살아남고 있어요”라고 했다. 

김 아나운서의 빵들은 겉보기엔 투박한 인상을 주지만 속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김 아나운서의 빵들은 겉보기엔 투박한 인상을 주지만 속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반죽은 35분간 오븐의 열기를 버텨내고 보기 좋게 부풀었다. “다행히 부침개가 안 되고 빵이 됐어요. 다 죽어가던 애가 저렇게 버틴다는 게 신기해요.” 대견하다는 듯 한참이나 빵을 들여다봤다.


#방송과 다른 민감함

KBS에서 매일 생방을 뛰던 그는, 2012년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방송활동은 계속 이어갔지만 카메라 앞에 서는 시간은 전보다 크게 줄었다. 빈 시간은 아프리카 남수단 봉사활동을 펼치거나 강연을 하고, 빵을 만들며 채웠다.

지난해 숙대 르 꼬르동 블루에서 제빵 과정을 듣는 김경란 아나운서. [사진=김경란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지난해 숙대 르 꼬르동 블루에서 제빵 과정을 듣는 김경란 아나운서. [사진=김경란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20~30대에 치열하게 아나운서 생활 하면서 초를 다투는 시간적 민감함이 저에게 생겼어요. 그런데 빵을 만들면서 다른 차원의 민감함이 생기더라고요. ‘너가 이제 지쳤구나’, ‘너는 아직 마음을 덜 열었구나’ 이렇게 빵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생긴 민감함이죠. 한가하다고 노심초사할 게 아니라 지금은 내 인생의 또 다른 일부분이라 생각하고 주어진 상황을 누리고 있어요.”


방송인으로서 김경란은 지금 숨을 고르고 있다. 요즘은 ‘로푸드 디저트’에 마음을 쏟는다. 한국디톡스푸드협회에서 로푸드 디저트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로푸드는 식물성 식재료를 45℃ 이하 저온에서 조리한 음식을 말한다. 덕분에 빵 사진으로 빼곡하던 그의 인스타그램엔 조금씩 디저트 사진이 보인다. 

김 아나운서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사진 대부분은 빵이다. [사진=김경란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김 아나운서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사진 대부분은 빵이다. [사진=김경란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올해 계획을 물었다. 그는 “주변에서 빵집을 내라고 하는데, 아직 계획은 없어요”라고 하며 웃었다. “올해는 강연도 틈틈이 이어가고 제가 만드는 빵과 어울리는 음식도 연구하고 싶어요. 방송이요? 저랑 잘 맞는 방송이 있으면 다시 하겠죠.”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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