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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꺾으면 맛 최고"…1㎏ 13만원 '산에서 나는 소고기'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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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명당은 나만 아는 장소, 우리 가족만 아는 장소, 타인에게 알려주는 장소가 다 따로 있어.”


지난 19일 오전 10시 해발 약 500m 한라산지. 차도에서 남쪽으로 100m쯤 걸어 들어가자 드넓은 초지가 나왔다. 이곳에서 허모(78·제주시)씨는 연신 허리를 굽혀 무언가를 주워 담았다. 그가 허리에 둘러맨 힙색(복대 가방)은 살이 튼실하게 오른 제주 고사리로 꽉 차 있었다. 허씨는 “오늘은 아들 집 근처에 온 김에, 가족과 함께 먹을 고사리를 따는 중”이라며 “우리 동네에는 나만 아는 고사리 명당이 있는데, 이곳은 처음 온 곳이라 고사리가 더 많이 살 것으로 보이는 깊은 풀숲으로 들어가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사리 장마' 때 꺾어야 맛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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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서 고사리를 꺾던 문모(61·제주시)씨는 “이맘때 봄비를 맞으며 자라는 고사리가 가장 연하고 맛이 좋다”며 “고사리 채취는 ‘꺾는다’고 표현하는데 손으로 꺾을 때마다 ‘똑’하는 경쾌한 소리가 나고, 묘한 손맛이 있어 이맘때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최근 제주 산간의 벌판과 오름(작은 화산체) 등지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다. 제주 사람들은 4~5월 잦아지는 봄비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를 정도다. 이 기간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비가 내린다. 꺾여진 고사리는 비가 내린 뒤 다시 자라난다. 적게는 3~4번, 많게는 8~9번까지 새순이 돋아난다.



봄만 되면 길 잃는 어른 부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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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인기의 부작용도 있다. 봄만 되면 “숲에서 길을 잃었다”는 신고가 증가해서다. 한해 길 잃음 사고 절반이 4~5월에 몰릴 정도다. 채취 명당에 목을 매다 길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고사리 사랑 때문에 이맘때 제주 소방당국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제주에서 발생한 길 잃음 안전사고는 모두 288건이다. 이 중 49%(142건)가 봄철인 4~5월에 집중됐다. 142건 중 107건이 고사리 채취 중 일어난 사고로 분석됐다. 실제 지난 13일 낮 12시쯤에도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의 한 수풀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던 80대 여성과 딸 등 가족 3명이 길을 잃었다. 이들은 출동한 구급대에 발견, 47분 만에 보호자에게 인계됐다.



고사리 채취객 차량 화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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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꺾기 때문에 화재도 발생했다. 지난 19일 오후 1시쯤 한 고사리 채취객이 서귀포시 성산읍 소재 숲속에 세워둔 차에서 불이 났다. 소방 당국은 과열된 배기판에 마른 잡풀이 접촉해 불이 난 것으로 추정했다. 자칫 대형 산불로 번질 뻔했지만 소방대원들의 빠른 대처로 불이 커지지는 않았다. 제주소방 관계자는 “고사리 채취하러 갈 때는 최소 2인 이상이 다녀야 하고 물, 보조용 배터리, 자신의 위치를 알릴 ‘호각’ 등 비상용품을 반드시 휴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관광객, 고사리 축제서 안전하게 '손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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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길 잃을 우려 없이 고사리 꺾는 ‘손맛’을 볼 기회도 있다. 오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국가태풍센터 서쪽 일대에서 ‘제27회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가 열린다. 봄날의 기운을 만끽하며 꺽으멍, 걸으멍, 쉬멍, 고사리를 꺾는 축제다. 고사리가 어디에 나고 어떻게 채취하는지, 어떤 음식을 만드는지 체험할 수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은 이번 축제에서 기부받은 고사리를 판매해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놓을 예정이다.



산에서 나는 소고기…㎏에 13만원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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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사리는 크고 굵으면서도 연하고 부드러워 품질 좋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조선 시대에 임금에게 진상됐다.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맛이 좋고 영양이 높아 건조한 상품은 최근 소매가로 1㎏당 13만 원이 넘는다. 2만 원대인 수입산에 비해 6배 이상 비싸다. 고사리를 말리면 무게와 크기가 10~20배 줄어들기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는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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