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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내고 책방으로…나는 책 향기 맡으며 잔다


서울·수도권 북스테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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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 요란한 세상이다. 고요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숨어 들어 원 없이 책이나 읽고 싶다. 평소에도 안 읽는 책, 꼭 어디를 가야만 읽히냐고 삐딱하게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국민 10명 중 4명이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시대(2017년 문체부 독서실태조사), 푹 쉬면서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는 건 반가운 일이다. 서점을 겸한 게스트하우스가 전국 각지에 들어서고 있고 특급호텔도 새롭게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북스테이(책+숙박), 북캉스(책+휴가) 같은 말이 유행하는 것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다. 독서와 여행은 닮았다. 강상중 도쿄대 교수가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 “책을 읽으면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바깥을 향해 발을 내딛게 된다”고 쓴 것처럼 말이다. 직접 찾아가본 개성 있는 북스테이 4곳을 소개한다.



사랑방 같은 숲속 책방 - 원주 ‘터득골북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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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나무집에서 책 읽기, 책장으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잠들기…. 터득골북샵은 으레 북스테이하면 떠올리는 판타지를 모두 실현해 줄 만한 공간이다. 위치부터 남다르다. 강원도 원주 명봉산(597m) 중턱에 얌전히 틀어 앉은 단층집이다. 건물 동서남북으로 큰 창을 내, 사계절 풍경과 산 내음이 시시각각 안으로 든다. 아침이면 햇빛이 방구석 끄트머리까지 점령해온다. 영화 ‘기생충’ 속 부잣집 가구를 만든 박종선 작가가 직접 짓고, 가구를 댄 집이란다.


원래는 살림집이었다. 출판인‧동화작가로 활동하는 나무선(58), 이효담(55) 부부가 10년 넘게 산 집을 커피 내는 책방으로 꾸몄고 2016년부터 손님을 받았다. 이른바 가정식 북카페다. 지금은 찬장에 부엌세간 대신 책이 꽂혀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터라, 고향 집을 찾은 듯 친근하다. 책장마다 정감 어린 글귀가 붙어 있다. 이를테면 동화책 코너엔 ‘그림책 독자는 0살에서 100살까지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얌전한 책방은 아니다. 수시로 인문학 강좌와 독서 모임, 건축 교실을 연다. 야외 음악회도 종종 열린다. 책방 뒤 언덕에 바위를 쌓아 만든 그림 같은 야외 객석이 있다.


투숙객은 하루 딱 한 팀만 받는다. 주인 부부도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는 자리를 피한다. 직접 만든 치아바타 샌드위치와 커피를 조식으로 내준다. 일행이 없다면 홀로 책방을 독차지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책방 안쪽에 객실이 있지만, 어디에 눕든 자유다. CCTV는 없다. 도난 사고는 여태 한 건도 없었단다.



강화도가 좋아서 - 인천 ‘책방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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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가 들어앉은 강화도 정족산(222m) 북쪽 들머리에 책방 겸 게스트하우스 ‘책방시점’이 있다. 돌김, 부추, 우엉. 애칭으로 통하는 독서광 30대 친구 셋이 의기투합해 꾸린 공간이다.


책방을 열게 된 과정이 흥미롭다. 돌김과 부추가 연애 시절 강화나들길을 걷다가 강화도에 홀딱 반했다. 2015년 결혼한 뒤 인천 시내에 살던 돌김과 부추는 마음에 드는 강화도 땅을 보고 덜컥 사버렸다. 물론 막대한 빚을 끼고. 그리고 재미난 일을 도모하다가 지난해 4월 북스테이를 열었다. 시점이란 이름은 부추가 지었다. 관점, 때, 시작점 등을 뜻하는 중의적 단어여서 좋았고, 이 공간이 새로운 인생의 기점이라고 생각했다. 돌김 안병일(37)씨는 “서점만으론 생존이 어려울 것 같아 숙소를 같이 하기로 했다”며 “지금 수익 대부분은 숙소에서 나오지만 그 비율을 줄여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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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김은 신문사 편집기자로 일했다. 그래서 책 진열도 신문 편집하듯 한다. 입구에는 베스트셀러나 가벼운 에세이를 배치했지만 가장 공들인 공간은 주방 왼편 서가다. 매달 세부 주제를 정해 책을 진열한다. 이달의 작가, 이달의 독립출판사 코너도 있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의외로 시집이다. 함민복 시인의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듭니다』. 시인이 강화도에 살아서는 아니다. 돌김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어서 많이 권했단다.


객실은 3개다. 투숙객은 새 책도 가져다 읽을 수 있다. 깨끗이 보기만 하면 된다. 초기엔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는데 지금은 블로그와 전화로만 예약을 받는다. 돌김은 “손님과 미리 통화하며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 좋다”고 말했다.



작가의 서재 구경 - 용인 ‘생각을담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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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일수록 주인의 취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생각을담는집’의 안주인 임후남(57)씨는 출판사 대표이자, 시집과 여행서, 음악 교육서 등을 쓴 작가다. 젊은 시절엔 잡지사 기자로 일했단다. 평생 책과 글을 다룬 글쟁이다.


“언젠가 시골에서, 책 파는 커피집을 하리라”던 막연한 꿈은 이태 전 현실이 됐다. 칠봉산(400m)과 용담저수지 사이 솔숲에 있는 미끈한 4층 집에 마음을 뺏겨, 길었던 서울살이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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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에게 임씨는 거침없이 말을 건다. 손님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주기 위해서다. 신간 역시 미리 읽고 검증한 것만 놓아두기에 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단골이 많다.


객실은 절집처럼 고요하다. 침대와 책상이 전부다. 너른 거실은 독서 토론하기 좋은 장소로, 발코니 너머로 솔숲이 내려다보인다.



어른을 위한 케렌시아 - 서울 ‘더글라스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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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힐 호텔 위쪽, 아차산 자락에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숨어 있다. 1964년에 문 연 워커힐 호텔의 첫 건물 ‘더글라스 하우스’다. 한국전쟁의 영웅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을 기리는 뜻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금은 ‘그랜드 워커힐’, ‘비스타 워커힐’의 명성에 가려졌지만 은근히 마니아가 많다. 20~30대 커플, 여자끼리 온 투숙객이 대다수다.


2018년 4월 개보수를 마친 더글라스 하우스는 완전히 달라졌다. 호텔이 내건 슬로건은 ‘나만의 숲속 케렌시아(안식처란 뜻의 스페인어)’다. ‘노 키즈’ 호텔을 표방하며 13세 미만 어린이 출입을 금지했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골격은 유지하되 분위기는 싹 바꿨다. 아늑한 느낌이 들도록 원목으로 인테리어를 했고 초록 식물 그림을 곳곳에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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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은 65개에서 52개로 줄이고 공용공간을 늘렸다. 가장 눈에 띄는 게 1층에 자리한 ‘라이브러리’다. 장서가 많은 편은 아니다. 책 900권을 주제별로 진열했다. 큐레이션과 이달의 추천 도서는 독립서점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가 맡았다. 음악에도 공을 들였다. 도쿄 츠타야(蔦屋) 서점의 음악 담당인 오이카와 료코(及川亮子)가 고른 음악을 틀어준다. 객실로 책을 가져갈 수 없지만 24시간 개방한다. 라이브러리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 문화살롱을 연다. 2월 23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를 초청한다.


더글라스 하우스에는 식당이나 카페가 없다. 대신 라운지와 공용 주방이 있다. 여기서 조식, 간식을 먹고, 저녁엔 주류와 간단한 안주를 즐긴다. 헬스장, 수영장은 그랜드 워커힐에 있는 걸 이용하면 된다. 모두 숙박비에 포함돼 있다. 더글라스 하우스에서 가장 붐비는 공간은 라운지다. 라이브러리는 한산하다.


최승표·백종현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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