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서 커피 대신 쌍화차…아재입맛 가고 할매입맛 떴다
빙과 업계, 커피 전문점 구수한 맛에 빠지다
‘이것이 요즘 느낌’…전통을 ‘힙’하다 여겨
팬데믹 시대, 건강 챙기려는 심리도 더해져
쑥라떼‧흑임자 아이스크림·쌍화차….
달콤한 맛을 선호하는 ‘초딩 입맛’에서 시원 칼칼한 음식을 찾는 ‘아재 입맛’으로 대세가 바뀌더니 요즘은 구수한 ‘할매 입맛’이 인기다. 주로 쑥‧검은콩‧흑임자 등 시골 할머니 댁에서 맛볼 것 같은 전통 식재료를 활용한 제과‧제빙 제품들이다. 서양식 커피 음료가 주축이었던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도 이런 구수한 재료를 활용한 음료를 낸다. 재미있는 것은 전통 재료가 익숙한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젊은 층도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할매 입맛과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출생)를 합쳐 ‘할메니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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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 맛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빙그레 비비빅이 3년 연속 할매입맛을 저격한 신제품을 내놔 눈길을 끈다. 2018년에는 인절미맛, 2019년에는 흑임자맛을 내더니 지난달 26일에는 쑥맛 비비빅을 내놨다. ‘비비빅 더 프라임 쑥’이라는 이름의 쑥맛 비비빅은 출시 직후 친숙한 재료와 맛으로 화제가 됐다. ‘얼려 놓은 쑥라떼’ ‘쑥떡이 콕콕 박혀있는 친숙한 맛’이라는 평가다. 비비빅뿐만이 아니다. 제빙 업계에서 흑임자·옥수수·쌀·쑥 등 전통 식재료는 이제 대세가 됐다. 해태제과의 ‘쌍쌍바 미숫가루’, 빙그레의 ‘흑임자 투게더’ 등 익숙한 제품의 변주부터 이마트24의 ‘흑임자이천쌀콘’, CU의 ‘삼육두유콘’ ‘쑥떡쑥떡바’ 등 신제품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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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프랜차이즈 업계도 할매 입맛이 대세다. 커피 전문점 ‘투썸플레이스’는 지난봄에는 쑥라떼와 흑임자카페라떼를, 이번 가을에는 현미팥라떼‧프라페를 선보였다. 투썸플레이스 관계자는 “옛 감성과 트렌디한 로컬 식재료의 만남을 염두에 둔 기획”이라고 설명했다. 반응도 좋다. 봄 음료 2종은 출시 이후 현재까지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쑥라테의 경우 지금까지 약 33만잔의 판매고를 올렸다.
커피 전문점 ‘이디야’는 그 옛날 다방의 인기 메뉴인 쌍화탕을 들고 나왔다. 지난 10월 20일 ‘대쌍화시대’라는 이름으로 쌍화차·대추차·생강차로 구성된 전통차 3종을 출시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쌍화탕을 필두로 한 전통차 음료 기획이 소비자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 가맹점이 많은 이디야는 가맹점주들의 요청으로 메뉴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전통차 역시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쌍화차나 대추차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달받고 시즌 음료로 냈다는 설명이다. 상품을 내고 보니 어르신들도 많이 찾지만 의외로 2030의 소비도 적지 않아 출시 한 달 만에 판매 수량 30만잔을 돌파했다. 이디야 관계자는 “이디야 멤버스 앱에서 주문 연령대와 매출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번 전통차 신메뉴를 주문한 2030의 비율이 생각보다 높은 편”이라며 “흔히 볼 수 없는 메뉴로 젊은 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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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점 ‘탐앤탐스’도 쌍화차, 홍시 쌍화차, 사과 생강차로 구성된 ‘추울 때 생각나는 쌍화, 탐의보감’ 음료 3종을 선보였다. 계란 노른자 대신 홍시를 띄우고, 아몬드와 호두 등 새로운 식재료를 더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눈길을 끈다.
전통 식재료의 현대적 재해석은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0월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배스킨라빈스’가 문을 열고 선보인 단독 메뉴에서다. 단호박 식혜 위에 유과를 올린 ‘단호박 식혜 블렌디드’, 십전대보차에 배를 갈아 넣은 ‘십전대보 블렌디드’, 흑임자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넣은 ‘흑임자 아포가토’ 등 음료 메뉴부터 인절미떡을 넣은 와플에 아이스크림을 올린 ‘와와떡’ 등 디저트 메뉴도 있다. 와와떡은 해당 매장에서 판매 TOP3에 들 만큼 인기가 높다. 배스킨라빈스 관계자는 “한때 마라·흑당처럼 얼얼한 매운맛이나 아찔한 단맛에 열광했던 소비자들의 입맛이 최근에는 심심하고 정겨운 전통의 맛으로 바뀌었다”며 “이런 변화에 맞춰 한국 전통 재료를 활용한 제품을 출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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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입맛을 가진 밀레니얼의 등장은 입맛이나 식품 트렌드의 변화도 있지만, 더 큰 맥락에선 소비문화 전반에 부는 복고 열풍, 즉 ‘뉴트로(New+retro‧복고를 새롭게 즐기다)’ 트렌드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오래된 옛것에 대한 호감, 또 새롭게 등장한 옛것을 신선하게 바라보는 젊은 층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이디야 대쌍화시대 메뉴 출시를 알리는 포스터에는 ‘이것이 요즘 느낌!’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한복을 즐겨 입고 국악 밴드의 음악이 핸드폰 광고에 등장하는 시대다. 커피 전문점에서 카라멜 마끼아또가 아니라 쌍화탕을 마셔야 ‘힙’해 보인다.
여기에 코로나 19로 인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팬데믹 시대, 군것질거리에서도 조금이나마 ‘건강한 것’을 찾으려는 심리다. 젊은 층도 예외는 아니다. 소비문화 트렌드를 진단하는 책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는 ‘오하운’이라는 키워드로 요즘 MZ세대를 설명한다. 오늘 하루 운동이라는 뜻으로 젊은 세대들이 운동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저축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트렌드 전문가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건강을 저축하는 MZ세대들에게 건강한 한국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기본적 호감이 생겨났고, 실제로 맛본 후 맛있는 제품에 대해 입소문이 나는 식으로 퍼져나갔다”며 “기존 외국 음식 기반의 슈퍼푸드 열풍과 또 다른 느낌으로 한국 전통 식재료를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도 즐기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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