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 탱탱 겨울 굴, 안주 30개 다찌 술상…침이 고인다
통영 굴 1~2월 지금이 제철
온갖 해산물 오르는 다찌집
추우면 시락국, 해장엔 우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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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오끼 - 경남 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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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굴의 고향이다. 이맘때 통영의 해안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다 풍경이 점점이 떠 있는 부표와 어선이다. 뭍에선 보이지 않지만, 부표의 줄마다 덕지덕지 굴이 매달려 있다. 전국 굴의 70% 이상이 통영 앞바다에서 나는데, 지금이 제철이다.
통영 음식은 하나같이 굴을 닮았다. 딱딱하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속은 보드랍고 향긋하다. 억척스러운 삶의 흔적이 음식마다 배어 있다. 애초 충무김밥과 시락국은 새벽 일 나서는 뱃사람과 시장 상인을 위해 태어난 음식이었다. 통영이 자랑하는 술 문화 ‘다찌’에서도 항구 사람 특유의 활기와 정이 묻어난다. 통영에서 맛본 모든 것이 거칠고 투박했다. 되레 맛은 뭉클하고 진했다.
통영의 겨울 지배하는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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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도 꿀 향이 배어있다’는 통영 사람의 농담은 알면 알수록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 통영에선 굴을 ‘꿀’이라 부른다. 10월부터 5월까지 채취하는데, 1~2월 굴이 최상급이다. 혹독한 추위에 대비해 영양분을 잔뜩 머금는 시기다. 갯벌에 살며 물에 잠겼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는 서해 굴과 달리, 통영 굴은 이른바 수하식(垂下式) 굴이다. 평생 물속에서 플랑크톤 따위의 영양분을 섭취한다. 통영 굴은 서해 굴에 비해 알이 굵고 성장 속도도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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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림동의 한 박신장(굴 껍데기를 벗기는 작업장)을 찾았다. 새벽 바다에서 건져 올린 수백㎏의 각굴이 아지매들 손에서 거침없이 해체되고 있었다. 3~5초면 탱글탱글한 우윳빛 속살이 드러났다. 하루 약 12시간의 단순 노동. 보통 한 명이 하루 약 50㎏의 알굴(깐 굴)을 생산한단다. 생산량만큼 돈을 받아가는 ‘돈내기’ 방식인 걸 아는지라, 말 한마디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손질한 굴이 위판장 경매를 거쳐 전국으로 유통된다.
당연히 이맘때 통영에는 굴 요리가 흔하다. 생으로 먹고, 밥으로 먹고, 무쳐 먹고, 전으로도 부쳐 먹고, 온갖 요리에 굴이 들어간다. 굴 전문점도 흔하다. 통영 굴 수협에서 추천한 집은 통영세관 옆 ‘통영미가’. 굴 요리 코스(2인 5만원)를 주문했다. 굴을 담뿍 넣은 미역국과 굴밥에 생굴·굴무침·굴전·굴탕수육 등이 딸려 나왔다. 묵은 백김치에 싸 먹은 생굴이 유독 향긋했다.
가장 화려한 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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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는 ‘다찌’라는 독특한 술 문화가 있다. 술만 주문하면 알아서 안주가 깔리는 술집의 존재를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게다. 얼핏 전주의 ‘막걸리집’과도 닮았다.
‘서서 마신다’는 뜻의 일본어 ‘다치노미(立飮)’에서 유래했다지만, 지금의 ‘다찌집’ 문화를 만든 건 통영 사람이다. 뱃일 마친 어부를 상대하던 통영 술집의 남다른 영업 전략이 술 문화로 자리 잡은 게다. 술을 시킬 때마다 새 안주가 딸려 나왔으니, 술꾼 입장에선 천국이었을 터. 호기롭게 “한 병 더”를 외칠 때마다 술상은 더 화려해졌다.
통영의 다찌집은 이제 술꾼보다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다. 술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엔 술 단위로 주문을 받았지만, 이젠 마산의 ‘통술집’처럼 인원 수에 맞춘 한 상 차림으로 나오는 집이 더 많다. 술보다 안주가 더 궁금한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운영방식이 바뀌었다. 덕분에 가격이 껑충 뛰었다. 안주 포함 소주 3병에 3만원꼴 하던 기본상이, 이제는 9만원(2~3인)꼴이다. 안주의 가짓수와 양이 확실히 늘었지만, 가격 부담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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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찌집이 여전히 매력적인 건, 통영의 제철 해산물을 두루 맛볼 수 있어서다. 강구안 통영활어시장 주변으로 다찌집이 널려 있다. 무전동 ‘통영다찌’의 스페셜 4인상(16만원)에는 전복·장어·굴·볼락·초밥·홍어삼합·산낙지 등 온갖 해물이 딸려 나왔다. 술 4병에 안주가 30개였다. 자리가 모자라 옆 테이블에 음식을 올린 다음에야 사진을 찍었다.
통영의 소울푸드
‘국물이 끓어 넘쳐도 모르는 시락국 집 눈먼 솥이 왁자하였다/ 시락국을 훌훌 떠먹는 오목한 입들이 왁자하였다’
-안도현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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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안 인근 서호시장 골목에서 가장 이름난 음식은 시락국이다. 거창한 음식은 아니다. ‘시락’은 시래기를 가리키는 통영 사투리. 시락국은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 시래기국이다.
서호시장은 통영에서 가장 먼저 하루가 시작되는 곳이다. 새벽 시장에 나선 상인의 아침을 책임지는 음식이 시락국이다. 시장통에 시락국을 내는 집이 네댓 개 있는데 모두 오전 4~5시면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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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초입의 ‘원조시락국’이 가장 오래된 집으로, 60년 역사를 헤아린다. 메뉴는 그때나 지금이나 시락국(6000원) 하나다. 안주인 장재순(67)씨는 “장어 뼈와 대가리로 육수를 내고, 시래기를 넣고 푹 끓인다. 별거 없다”고 말하는데, 국물 맛이 여간 깊은 게 아니었다. 추울수록 위력이 강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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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하루를 여는 음식이 시락국이라면 ‘우짜’는 하루를 마감하는 음식이다. 우동과 짜장을 한 데 섞어 우짜다. 1980년대 항남동 골목길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개발한 메뉴가 해장 음식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통영 명물로 자리 잡았단다. 처음엔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지만, 입맛 당기는 마력이 있다. 35년 내력의 ‘항남우짜’에서는 한 그릇에 4500원을 받는다. 해장하려는 손님을 위해 요즘도 새벽 4시까지 문을 연다.
충무김밥의 추억
팔도 어디에나 널린 게 김밥집이지만, 김밥거리는 통영에만 있다. 강구안과 중앙시장 사이 통영해안로가 충무김밥거리인데, ‘원조’ ‘할매’ ‘3대’ 등의 문구를 내건 김밥집 17개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김밥과 반찬을 따로 내는 충무김밥은 81년 5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국풍81’ 행사 때 널리 알려졌다. 강구안에서 밥장사를 하던 어두리 할머니가 행사에서 통영식 김밥을 선보인 뒤 인기가 급부상했다. 당시 통영의 지명이 충무였기에 자연히 ‘충무김밥’으로 세상에 각인됐다.
충무김밥의 역사는 사실 더 뿌리 깊다. 40년대부터 부산~여수를 오가는 승객을 상대로 통영 할매들이 뱃머리에서 팔던 음식이다. 처음엔 김밥 안에 속을 넣어 말았는데 밥이 빨리 상해 버려 김밥 따로 반찬 따로 팔기 시작했단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매콤한 양념의 주꾸미(또는 오징어) 무침과, 무섞박지가 김밥의 짝으로 자리 잡았다. 삶은 계란과 사이다가 기차 여행의 필수였듯, 바다로 나설 땐 충무김밥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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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김밥은 김밥 8개와 오징어무침·무섞박지·시락국(또는 배춧국)이 기본 구성이다. 충무김밥거리에선 1인분에 죄 5500원을 받는다. 가격도, 구성도 비슷하지만 유독 ‘뚱보할매김밥집’에 사람이 많이 몰린다. 충무김밥을 세상에 알린 어두리 할머니가 이 집 창업주다.
꿀빵에는 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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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을 대표하는 간식은 누가 뭐래도 꿀빵이다. 팥소가 가득 찬 밀가루 빵을 기름에 튀긴 뒤에, 물엿을 입힌 간식 거리다. 꿀빵이지만 ‘꿀’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강구안 앞은 한 집 걸러 김밥집 아니면 꿀빵집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요즘은 맛 연구도 활발하다. 팥앙금만 넣는 것이 전통 방식이지만, 요즘은 고구마·치즈·딸기·호박 등 첨가물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항남동의 ‘오미사꿀빵’이 통영식 꿀빵의 원조로 통한다. 63년 길가에 탁자 두 개를 놓고 빵을 팔았던 게 시작이다. 당연히 간판도 없었다. 한참 뒤 단골이 부르던 대로 ‘오미사꿀빵’이 정식 이름이 됐단다. “빵집 옆에 ‘오미사’라는 세탁소가 있어서 모두들 그렇게 불렀다”고 정숙남(60) 대표가 회상했다.
오미사꿀빵은 다른 집 꿀빵에 비해 더 바삭하고 고소한 편이다. “일일이 손으로 반죽하고, 두 번 기름에 튀기는 게 단순하지만 중요한 비법”이라고 했다. 오미사꿀빵은 ‘당일 생산 전량 소비’가 원칙이다. 오전 8시 빵을 만들기 시작해, 보통 오후 4시면 빵이 동난다. 주말엔 좀 더 서둘러야 꿀빵을 맛볼 수 있다. 10개들이 1팩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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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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