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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소금 잘라 만든 불판? 한국도 이미 비슷한 조리법 있죠

이용재의 세심한 맛

히말라야 분홍 소금 덩어리

손잡이 달린 불판으로 제작

굽기만으로 간 베이도록 해

소금 깔고 새우 굽는 것과 비슷

히말라야 소금 잘라 만든 불판? 한국

그림 1

‘축하합니다. 당신은 역사의 한 덩이를 구매하셨습니다.’

글로벌 가구업체 이케아에서 3만원 가량을 할인(정가 6만9,900원)하는 철제 캐비닛 몇 점을 사다가 조립해 오랜 고민이었던 수납 문제를 일부 해결했다. 책장에 두서 없이 올려 놓은 온갖 물건을 정리하다가 오랜만에 마크 쿨란스키의 대표작 ‘소금’이 눈에 들어왔다. ‘미식 예찬’, ‘대구’ 등 촘촘한 음식 문화사 저작 가운데서도 대표작인 ‘소금’의 여정은 그가 카르도나 (에스파냐 북동부 카날루냐 자치주) 소금 광산에서 15달러에 사온 분홍색 암염 덩어리로 시작한다. 창가에 놓고 종종 닦아주다가 친구들이 놀러 오면 소금이라고 소개하는데, 다들 확인을 위해 핥아본다는 일화를 읽다가 최근 유튜브에서 본 암염 불판 생각이 났다. 히말라야 분홍 소금 덩어리를 직육면체로 가공해 재료를 굽는 동시에 간도 해준다는 불판이었다. 가로 30㎝, 세로 20㎝에 두께 4㎝의 받침 겸 손잡이가 딸린 불판이 아마존에서 3만원 대. 당장 주문했다.

히말라야 소금 잘라 만든 불판? 한국

히말라야 분홍 소금으로 만들어진 암염은 요리를 얹어 먹거나, 구워 먹을 때 요긴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소금으로 만든 불판

초를 좀 치자면 히말라야 분홍 소금이라는 명칭은 일종의 ‘과장 광고’이다. 정확하게는 파키스탄의 펀잡 지방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종종 ‘쥐라기 바다소금’이라고도 홍보되지만 정확하게는 페름기와 백악기, 즉 1억~2억년 전에 해저가 육지로 둘러싸이면서 수분이 증발하고 남은 소금이다. 하와이의 검은 소금 등, 지역 및 색깔이 이름에 들어간 소금이 일반 천일염이나 정제염보다 더 우월한 양 소개되곤 하는데 유사과학이다. 소금의 색깔을 책임지는 불순물 혹은 광물이 미량인지라 영양과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소금이 아예 쓸모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씹으면 아삭함과 함께 퍼지는 짠맛, 색깔로 인한 장식적 기능만으로도 한두 가지쯤 백화점 식품 코너 등에서 사두었다가 상황에 맞춰 쓰는 재미는 확실히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또 소금을? 나는 이미 책 (‘한식의 품격’)에서 소금에 지면을 충분히 할애했다. ‘소금 장수 남자가 결혼을 승낙 받기 위해 예비 장인을 만나러 간다’고 어린 시절 즐겁게 읽었던 책의 이야기 한 자락으로 운을 띄웠다. 그리고는 천일염이니 자염이니, 고혈압의 원인이니 하는 주변 담론은 많지만 실제로는 소금을 잘 쓰는 법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는, 소금 장수가 장인에게 자신의 직업 세계를 호소하기 위해 내놓은 음식처럼 ‘싱거운’ 현실을 지적했다. 곰곰이 살펴 보면, 장류 바탕의 양념 위주로 음식에 맛을 들이는 한식에서는 소금이 독립적으로 또는 주도적으로 음식의 간을 맡는 경우가 의외로 드물다. 그렇게 책에서 음식과 맛에 핵심인 소금에 대해 살펴 보았다면, 이번에는 재미로 쓸 수 있는 소금을 소개한다. 일종의 ‘외전’인 셈이다.

히말라야 소금 잘라 만든 불판? 한국

태평양에 있는 미국의 최남단 주 하와이에서는 검은 색상의 소금이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암염 불판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역사의 한 덩이를 구매했다’는 축하의 편지와 함께 레시피 책이 딸려 왔는데, 관자부터 새우, 스테이크를 넘어 피자 등 그릴이나 팬에 구워 먹을 수는 것의 모든 요리법을 암염판으로 대체하는 것은 물론 요리에 미묘한 간까지 들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식 직화구이의 불판 대신으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산에서 취사가 가능했던 시절(물론 금지되어 마땅하다)에 대리석판으로 구워 먹던 삼겹살 생각이 났다. 일단 일상에서 얇게 저며 굽는 소고기 부위인 차돌박이부터 시험해 보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차돌박이는 얇은지라 간을 하지 않고 구워 양념장에 찍어 먹는 경우가 많은데, 암염 불판에서 자동으로 배는 간이 고기에 적절하게 짭짤했다.

히말라야 소금 잘라 만든 불판? 한국

소금 불판은 각종 과일이나 채소를 올리기에도 적합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뜨거운 음식도 OK, 차가운 음식도 OK

차돌박이가 암염 불판 시험에 합격했다면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유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유행인 ‘냉삼’, 즉 냉동삼겹살을 비롯해 웬만한 한국식 직화구이 고기는 물론 버섯, 양파 등 곁들이 채소까지 소화할 수 있다. 뜨거운 음식만큼이나 차가운 음식에도 쓸모가 있다. 냉동고에 한 시간 정도 두면 아이스크림 등 원래 차게 먹는 디저트의 냉기를 유지하면서 ‘단짠’의 조화를 즐길 수 있는데, 그렇다면 생선회 등도 무리 없이 얹어 낼 수 있다. 온도만 적절히 맞춰주면 다 먹을 때까지 신선함을 잃지 않을뿐더러 다시 한 번, 소금간도 살짝 들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또한 불판 자체가 소금인지라 유지 및 관리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소금은 미생물 번식을 억제하는 식재료이니 변질 등의 우려가 없으며 한번 쓴 뒤 딸려 온 솔과 물로 가볍게 닦아 24시간이상 말리는 수준에서 다시 쓸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암염 불판의 최대 장점이라면, 조리 도구로서 수명이 다 하는 시점에서 평생 쓸 소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굽고 닦아 두께가 현저하게 줄어들거나 급격한 온도 변화로 쪼개지기라도 한다면 그때부터는 강판으로 가볍게 갈아 음식의 간을 맞춘다. 3㎏짜리 소금 덩어리이니 평생 쓰고도 남아 대를 물려줄 수 있을 만큼의 양이다. 다만 단점도 없지는 않다. 오븐이나 브로일러 같은 조리 도구로 예열하면 깨질 우려가 있으며, 200℃를 넘기는 강한 화력의 바비큐 그릴 등의 강한 화력에 예열해 쓰는 제품인지라 가정의 가스레인지에서는 달구는 시간이 좀 많이 걸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약불에서 중불, 센불까지 적어도 3단계에 걸쳐 각각 15분~20분씩 서서히 예열해야 하는데, 결국 조리 준비에만 한 시간이 걸리는 셈이니 급한 끼니에는 쓰기 어렵다. 어설프게 달구면 조리 시간이 길어져 짠맛이 필요 이상으로 배어 음식의 맛을 망칠 수 있다.

히말라야 소금 잘라 만든 불판? 한국

새우는 소금을 활용해 구워 먹으면 효율적으로 간을 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소금 100% 활용법

히말라야에서 1억년 전에 생성된 소금을 잘라 만든 불판이라니, 얼핏 엄청난 것 같지만 우리는 이미 비슷한 조리법을 쓰고 있다. 새우의 철이라는 가을만 되면 등장하는 소금구이 말이다. 다만 보완이 필요하다. 냄비에 굵은 바다소금을 깔고 새우를 올리는 단계까지는 좋은데 일단 새우 자체가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뚜껑마저 덮고 굽는다. 새우에 간을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소금이 구이 즉 조리용 켜로서 역할을 맡기를 원하는지 조금 모호하다. 전자라면 굽는 가운데, 또는 굽고 나서 더 고운 소금으로 효율적으로 간할 수 있으니 후자라고 이해한다면 적절한 조정이 필요하다. 일단 냄비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굵은 소금을 넉넉히 깔고 중불에 충분히 달군다. 소금의 수분이 빠져 살짝 불투명해지고 알갱이들이 서로 달라붙어 하나의 켜를 이루면 새우를 드문드문 올린다. 뚜껑은 덮지 않고 굽는다. 새우가 온몸에 홍조를 띠기 시작하면 뒤집어 불투명함이 사라질 때까지만 구워 내린다. 접시에 올려 잠시 식히는 동안 남은 열로 끝까지 익는다.


이런 수준으로 소금의 역량을 시험하고도 성에 차지 않는다면 한 차원 더 높은 조리법에 도전해볼 수도 있다. 소금에게 바닥판을 넘어 껍데기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새우소금구이에 쓰듯 소금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바닷물에 잠긴 모래와 비슷한 질감을 이루도록 물에 반죽하면 좀 더 잘 뭉친다. 아니면 계란 흰자를 거품기로 휘저어 올려 만드는 머랭에 소금을 더해 반죽하면 한층 더 촘촘한 껍데기를 만들 수 있다. 재료에 덧씌워 가열하면 굳어 단단한 껍데기로 승화하는 원리로, 우럭을 필두로 가자미, 농어 등 흰살 생선의 구이에 종이로 싸는 오븐 구이(en papillote)와 더불어 쓰이는 조리법이자 보호책으로 많이 쓰인다.


요리책을 뒤져 소금과 물, 혹은 흰자의 비율 등을 제안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어쨌든 생선을 덮을 정도로 소금을 듬뿍 쓰면 제 역할을 맡는다. 오븐을 200℃로 예열하고 팬의 바닥에 유산지를 깐 뒤 내장만 발라낸 생선을 통째로 올린다. 뱃속에는 입맛 따라 레몬이나 양파, 로즈마리나 타임 같은 허브를 채워 넣는다. 아니면 쑥갓 같은 한식의 채소나 고수도 좋다. 머랭을 쓴다면 계란 흰자 한 두어 개 분을 거품기로 휘저어 부드러운 비누 거품과 비슷해질 때까지 올린 뒤 소금을 넉넉히 부어 반죽을 만든다. 소금 탓에 짠맛이 너무 깃들지 않도록 생선 위에도 유산지를 한 겹 깐 뒤 소금 반죽을 올린다. 실리콘 스패출라나 손으로 생선 전체를 고르게 덮은 뒤 오븐에 굽는다. 생선 500g마다 15분, 내부 온도가 57℃까지 올라가도록 굽는다. 껍데기 덕분에 웬만해서는 생선이 촉촉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오븐에서 꺼낸 뒤 5분 식혔다가 숟가락이나 국자로 가볍게 두들겨 껍데기를 깨는 재미부터 즐긴 뒤 접시에 담는다. 등과 배를 따라 포크를 살짝 찔러 훑은 뒤 숟가락으로 들면 살만 손쉽게 발라서 먹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과 정반대 상태인 액체 소금을 소개한다. 물론 바닷물을 퍼다가 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설탕을 물에 끓여 녹인 시럽과 흡사하게 약간 걸쭉한 액체 소금이 상품으로 존재한다. 향수처럼 분무기에 담겨 있어 음식에 가볍게 뿌려줄 수 있다. 알갱이가 씹히는 특유의 아삭함 없이 음식에 짠맛의 액센트를 더할 수 있으니 ‘세심한 맛’의 맨 첫 칼럼 소금(본보 8월 18일 게재)편에서 잠깐 언급한, 맬든처럼 입자가 큰 바다소금과 대척점에 있다. 서양에서 들어왔으니 스테이크 같은 음식에 뿌리라고 만들었겠지만 국물이 대체로 자작한 한식에도 쓸모 있다. 알갱이라면 잘 녹지 않을 수도 있는 나물류의 반찬에 최종적인 간을 맞추는 데도 좋고 반죽에 간을 하지 않아 밋밋한 평양냉면의, 국물 위로 드러나는 면에 가볍게 짠맛을 더하는 데도 좋다.

히말라야 소금 잘라 만든 불판? 한국

손가락을 모아서 그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인 ‘자밤’으로 소금을 집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꼬집’과 ‘자밤’

지난해 출간된 ’이탈리아 요리 바이블 실버스푼’의 번역은 1,500쪽이라는 분량 만큼이나 부담이 큰 프로젝트였다. 4개월 동안 격주마다 정해진 분량을 번역해 납품하는 빡빡한 일정도 만만치 않았지만, 무엇보다 ‘pinch’라는 소금의 단위가 의외로 큰 골칫거리였다. 영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 ‘꼬집’이라 번역하는 경향이 일종의 순우리말이라는 명분과 맞물려 퍼졌지만 나는 계속 쓰기를 거부했었다. 경음(ㄲ)의 어감도 썩 좋지 않을뿐더러 소금은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집어 올려 쓴다. 살을 꼬집는 것처럼 힘을 주어 집어 올리지 않는다는 말이니, 듣거나 볼 때마다 내가 꼬집히는 기분이라 소금 ‘약간’이라고 옮기는 등 꼬집의 사용을 피한 것이다. 하지만 책의 두께만큼이나 존재하는 실버스푼의 ‘pinch’는 그렇게 옮길 수가 없었다.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가운데 담당 편집자가 구세주처럼 ‘자밤’이라는 단어를 들고 나타났다. ‘나물이나 양념 따위를 손가락을 모아서 그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라는 것이었다. ‘잡+암’에서 ‘자밤’이 되었으니 순우리말인데다가 ‘꼬집’보다 어감도 좋으니 어찌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편집자 덕분에 나는 큰 시름을 덜 수 있었고, 이후 ‘자밤’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어감도 좋은 순 우리말이 있으니 이제 소금을 그만 꼬집자. 아프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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