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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갯장어, 한여름 보양식 ‘절정의 맛’

박미향의 요즘 뭐 먹어 전남 장흥 ‘먹거리 천국’

물 맑은 득량만 인근 서식

6~8월 산란기 ‘살이 통통’

된장물회·황칠백숙도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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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다지회마을’의 갯장어 샤부샤부와 회. 시큼한 김치, 신선한 양파와 같이 먹어도 맛깔나다.

여행자의 필수품 중 하나는 지도다. 전남 장흥 여행에 나선 이들은 지도에서 재밌는 이름을 발견한다. 3개 읍, 7개 면으로 구성된 장흥군에는 부산면, 용산면, 안양면이 있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우스갯소리로 “전라도 부산으로 여행가자”고 하는 말은 틀린 게 아니다.


인구가 고작 3만5301명(2023년 7월 기준)인 남도의 소도시 장흥. 이 지역에는 별난 지명 말고도 이야깃거리가 많다. 지난 6일 폐막한 ‘정남진장흥물축제’가 대표적이다. 올해로 16회인 이 축제는 매년 새로운 서사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개막행사인 살수대첩 퍼레이드에 1만명 이상이 몰리며 역대급 인기를 끌었다. 매년 수익금 일부를 물 부족 국가를 돕기 위해 유니세프에 기탁했던 장흥군은 올해 수익금 일부를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했다. 산사태 수해를 입은 경북 봉화군에도 전달했다. 전희석 장흥군청 관광진흥팀 팀장은 “봉화군의 ‘봉화은어축제’는 축제 기간이 우리와 같다. 이번에 취소된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훈훈한 미담은 여행지를 돋보이게 하고 호감을 높인다. 하지만 기실 장흥 여행의 진짜 백미는 먹거리다. 이맘때 장흥에 가면 여다지해변, 노력도, 회진면 일대, 읍내 식당가, 그리고 ‘정남진 장흥토요시장’에는 고소한 갯장어 향이 넘쳐난다. 여름 한 철만 먹을 수 있는 갯장어 요리는 장흥을 대표하는 먹거리다. 폭염에 기력이 쇠하고 축축 늘어질 때 장어 한그릇이면 힘이 솟는다. 된장 물회, 장흥삼합, 황칠 백숙도 빼놓을 수 없는 장흥 보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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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갯장어 한점과 묵은김치.

지난달 13일 장흥군 안양면에 있는 식당 ‘여다지회마을’에 근사한 갯장어 한 상이 차려졌다. 갯장어는 명함 크기로 썰려 가지런히 접시에 누워 있었다. 희고 고운 누이의 손바닥 같았다. 육수가 끓기 시작했다. 식탁이 분주해졌다. 여행객들이 앞다퉈 갯장어를 담갔다. 납작했던 갯장어가 5초 만에 변신했다. 제 몸을 돌돌 말아 동그란 모양으로 만들었다. 새하얀 눈뭉치 같았다. 입안에 들어가니 눈처럼 사르르 녹았다. 약재 향이 미세하게 코를 건드렸다. 권재윤(46) 주인장 겸 요리사는 “갯장어 뼈로 육수를 낸다. 생강, 마늘, 양파 등도 들어가지만, 손님상에 나가기 직전 녹각, 대추 등 약재를 넣고 뜨거운 물을 더 붓는다”고 말했다. 도톰하고 길게 잘린 채 엉켜있는 갯장어 회는 씹을수록 고소하다. 깨소금도 뿌려져 있었다. 극강의 고소함을 추구하는 것일까. 고소한 회에 고소한 깨소금이라니! 주인장은 두 가지 방법으로 곁들여 먹으란다. 양파나 신 김치. 한 입 베어 먹은 양파는 사과만큼 달았다. 보들보들한 장어와 사각사각 씹히는 양파의 조화는 달곰한 미식 향연의 진수를 보여줬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의 단편집 제목처럼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광주에서 조리 기술을 연마한 권씨는 10년 전 고향 장흥에 돌아왔다. “무조건 열심히 해보자”란 각오로 ‘활어 회 코스’ 식당을 열었다. 운이 따랐다. 개업 초창기 한국방송(KBS) 프로그램 ‘1박2일’에 소개돼 유명해졌다. 갯장어와 그는 인연이 깊다. “2001년 처음 횟집에 들어갔을 때 뜬 회가 갯장어다. 갯장어로 요리 인생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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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갯장어. 박미향 기자

갯장어, 뱀장어, 붕장어, 곰장어, 꼼장어, 먹장어 등 불리는 이름도 여럿인 장어. 장어는 크게 민물장어와 바닷장어로 나뉜다. 뱀장어는 민물장어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기수역에서 잡히는 뱀장어가 특히 맛이 좋다. 산란을 앞두고 있어서다. 갯장어·붕장어·먹장어는 바닷장어다. 붕장어는 부산의 대표 보양식 재료다. 먹장어는 부산에서 곰장어·꼼장어로 불린다. 하모(갯장어), 아나고(붕장어)는 일본말이다.


큰 건 2m나 되는 갯장어는 물이 맑고 깨끗한 지역에서만 서식한다고 알려졌다. 겨울잠을 자기에 여름철에만 잡힌다. 한국에서는 청정지역인 전남 보성군 득량만 인근의 장흥, 고흥과 제주 등 남해 서부권 근해에 서식한다. 지환성 국립수산과학원 장어 박사는 “일본·중국 등 동아시아에 서식하는 갯장어는 대량 생산이 안 되는 어종인데, 1970~80년대만 해도 1년에 6000t 잡히던 것이 2000년대 들어 1000t 정도로 줄었다”고 아쉬워하며 말했다. 이어 “산란기가 6~8월이다. 이때 살이 오르고 영양분이 많아 맛이 좋다”고 덧붙였다.


갯장어는 야행성이기에, 어부들은 주로 저녁나절 출항해 밤을 새우며 잡는다. 35년 경력의 뱃사람 김충모(64) 선장도 요즘 매일 오후 5시께 출항해 다음 날 새벽 3시쯤 돌아온다. 20여분 배를 몰아 도착한 바다에 주낙 3000개를 던진다. 그러고 나면 다시 그 주낙을 걷어 들이는 데만 6시간 걸린다.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땀 흘려 고생해도 보람이 있으면 기쁘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 선장은 요즘 걱정이 크다고 했다. “잘 잡혀요. 하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때문에, 아직 방류도 안 됐는데, 벌써 단가가 터무니없이 내려가요. 다 죽게 생겼어요.” 그의 고뇌가 갯장어 한점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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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열무김치, 각종 채소와 흰살생선으로 버무린 된장 물회.

뜨거운 음식으로 속을 달랬으니, 찬 음식이 절로 생각난다. 시원한 물에 얼음 띄우고 각종 채소와 생선 등을 넣는 된장 물회는 별미다. 본래 물회는 어부가 고된 노동을 마친 뒤 배에 남은 생선과 밥, 맹물을 비벼 먹은 음식이다. 일꾼의 숭고한 한 끼다. 지역마다 그 맛은 조금씩 달랐다. 경상도는 고추장이, 제주는 제피가루와 빙초산이 양념이었다. 전라도 사람들은 된장을 풀었다. 물회 식당의 원조는 회진면에 있는 ‘우리횟집’이다. 1991년 우진횟집의 주인 안재만씨가 처음으로 팔았다. 이후 인기가 많아지자, ‘싱싱회마을’이나 회진면 일대 식당 등 여러 곳에서 팔기 시작했다. 11년 전 문 연 ‘신들뫼바다’도 그중 하나다. 시큼한 열무김치와 양파 등이 된장, 흰살생선과 어우러져 맛깔나다. 주인 김동례(67)씨는 “소스도 과일로 만들고 뭐든 직접 정성껏 만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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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삼합 재료.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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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삼합 재료. 박미향 기자

황칠나무 잎과 줄기 등에서 추출한 진액을 활용해 만드는 황칠백숙도 보양식이다. 장흥읍에 있는 ‘황칠나라’ 등에서 맛볼 수 있다. 한우, 표고버섯, 키조개가 한데 어우러진 장흥삼합은 2005년 민관 합동으로 개발한 음식이다. 장흥에서 키우는 소는 이곳 인구보다 많다. 올해 기준 5만두가 넘었다. 표고버섯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김경제 버섯산업연구원 버섯 박사는 “톳밥 갈아 만든 배지(식물 증식 위해 고안된 영양원)에서 기르지 않는다. 나무 원목에 구멍을 내고 종균 넣어 재배하는데 기간이 배지보다 4~5배 더 걸린다”며 “자연에 근접한 방식이 질 좋은 버섯 생산의 이유”라고 말한다.


장흥/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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