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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만들어도 쉽지 않은 맛…식당마다 천차만별, 마파두부

[ESC]

한겨레

서울 금천구 ‘카오룽’의 마파두부.

소위 ‘냉장고 털이’로 만만한 요리로는 무엇이 있을까? 한식 밥상에서는 애매하게 남은 여러 반찬을 모아 고추장에 참기름 넣어 쓱쓱 비벼 먹는 비빔밥이 ‘냉털식’의 대표 격이며 일본은 카레가 갖은 자투리 채소들을 살리는 구원투수 역할을 한다. 중식에서 이에 못지않게 손쉽게 응용되는 음식이 바로 마파두부다. 이 음식들은 모든 재료를 아우르며 핵심적인 맛을 내는 소스의 역할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마파두부는 고추·콩·소금으로 발효해 만든 매콤한 콩발효장인 두반장을 사용하는데, 이는 메줏가루·고춧가루가 들어가는 우리 고추장과 엇비슷한 공통점도 가진다. 순창 고추장처럼 두반장의 본고장은 중국 쓰촨(사천) 지역 고산지 피센을 꼽는다. 이곳에서는 집집마다 개성을 가진 수제 두반장을 맛볼 수 있기에 두반장 역시 피센 출신들의 솔(soul) 소스가 된 듯하다.


예전에 가정용 요리 수업에서 마파두부 강의를 하면서 내심 걱정했다. 두부, 두반장, 파, 녹말물 등 몇 가지 재료만 있으면 뚝딱 완성되는 초간단 요리를 강의 주제로 선정했나 하는 생각에서다. ‘굳이 강의로 배우지 않아도 요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때의 걱정은 마파두부라는 음식의 깊이와 진면목을 나 또한 제대로 몰랐기 때문임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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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보보식당’의 마파두부.

다양한 마파두부를 맛보면 맛볼수록 이는 결코 쉬운 음식이 아니며 그 세계가 꽤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국내에 중식 향신료가 대중화되지 않던 시절엔 시판용 두반장 하나만 넣어도 마파두부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식의 향신료와 얼얼한 매운맛에 전 국민이 눈을 뜨게 됐다. 2010년 중반부터 마라탕·마라샹궈 등 마라 음식의 대중적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식 매운맛이 아닌 입안이 아리면서 ‘화하게’ 매운, 중식에서만 느껴지는 독특한 맛과 향에 점차 익숙해진 덕이다. 그렇게 매운 중국 음식은 갈수록 더 다채로워지고 현지화 강도가 높아지게 됐다. 그러다 보니 늘 먹어왔던 외식용 마파두부 또한 고객의 입맛에 맞춰져 맛의 스타일이 변해가고 있다.


특히, 초피나무 열매인 화자오 향신료의 참맛에 많은 이들이 매료되었다. 이는 중국이나 한국 모두 고추가 유입되기 전에 매운맛의 역할을 해왔던 오래된 향신료이다. 조선 시대 궁중이나 사대부 음식이 나오는 문헌에서 ‘천초’(川椒)라고 쓰여있는 것과 같다. 쓰촨 지역에서 마마 자국이 있는 여주인으로 인해 ‘곰보할매두부집’이라고 불리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마파두부’는 이제 동서양을 막론하고 즐겨 먹는 범용 중국 음식이 되었다. 한국식 중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할 때 필수적으로 거론되면서 마파두부는 자장면 못지않은 국민 메뉴 범주를 넘나들고 있다. 일본의 경우 중식당 마파두부는 우리의 자장면처럼 일상 음식으로 깊숙이 안착되어 있다. 맵지만 둥그런 단맛도 함께 가지고 있어 국내에서도 ‘중화풍 일식’이라는 장르로 명명하여 판매하는 곳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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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홍콩참치만두’의 마파두부.

세월과 함께 달라진 소비자 입맛에 따라 소스 스타일의 변화를 겪은지라 마파두부는 먹어보기 전엔 그 집의 스타일을 예측하기 힘들 만큼 가게에 따라 소스의 맛과 매운맛 강도도 다채롭다. 매콤달콤 옛날식을 따르기도 하고 청양고추로 한국식 매운맛을 내기도 한다. 트렌드에 따라 마라 맛을 강조하기도 하고 불맛을 가미하기도, 일본식 마파두부 스타일을 내기도 한다. 다양한 마파두부의 맛집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얼얼함이 있으면서도 지독하게 맵지 않아 ‘맵찔이’도 도전할 수 있으며 두부 감촉은 부드러우며 한 그릇에 2만원을 넘지 않는, 식사에 가까운 마파두부를 추천해 본다.


카오룽


구룡반도를 뜻하는 상호를 내걸고 하는 홍콩 식당.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아담하고 깔끔한 중식당으로 어떤 음식을 주문해도 정갈하고 맛의 균형이 잡혀있다. 마파두부는 연두부로 만들어 보드랍고 이국적인 향도 적절하게 내기에 고급스러운 요리를 먹는 기분이 된다.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 291 2층 215호/02-805-9090/마파두부 1만2000원

보보식당


광주에서 상경한 중식당으로 성업 중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마파두부를 보는 순간 군침이 돈다. 화자오가 치아 사이에 사각사각 미세하게 씹히는 것도 기분 좋으며 중간 정도의 매운맛이다. 고추기름 아이스크림 디저트도 흥미롭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174길 30 로빈명품관 1층 103호/0507-1346-7436/마파두부(식사형) 1만5000원, 마파두부(요리형) 1만8000원

홍콩참치만두


참치 또는 삼치가 들어간 만두로 알려진 식당. 짜장이 섞인 떡볶이처럼 마파두부 빛깔이 빨간 톤이 아니다. 후추 맛이 강하고 생강 향이 물씬 나는 터프한 스타일. 젓가락으로 집어먹기 적당한 두부이기에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서울 동작구 동작대로33길 16/010-2189-9199/마파두부볶음 1만3000원(공기밥 2000원 별도)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 ‘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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