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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닭은 튀김보다 건강한 구이가 제맛 [ESC]

한겨레

‘서울간촌닭’의 닭고기구이.

오래전 치킨 스테이크 메뉴 개발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적합한 닭 원물을 찾는 게 가장 어려웠다. 시중에서 구한 생닭 원물은 20~30마리 중 하나꼴로 닭 비린내가 났다. 올리브오일과 마늘만 넣어 재운 뒤 굽는 심플한 치킨 스테이크를 지향했기에 닭의 신선도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고작 메뉴 하나 개발인데도, 기어이 닭 농가를 찾아 나섰던 이유다. 대중적인 식재료이건만 의외로 유통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닭을 조각내 튀김 반죽을 묻혀 기름에 튀긴 음식인 ‘치킨’(닭튀김)은 명실상부 국민음식 반열에 올랐다. 최근 20년 새 국내 1인당 닭 소비량은 2배 넘게 증가했다. 한국인 한명이 1년간 먹는 닭이 약 26마리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맥주의 동반자인 치킨은 야구장이나 서울 한강 일대를 찾는 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기도 하다. 심지어 여름철 복날에도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이다.


닭튀김은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흔한 요리지만 ‘케이(K) 푸드’ 전성시대에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인들의 유별난 치킨 사랑과 다채로운 메뉴가 세계에 알려지면서, ‘코리안 치킨’이 세계 닭요리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에 오른 ‘치맥’(치킨+맥주)은 한국인의 식문화를 잘 나타내는 단어로 통한다 한다. 치킨집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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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간촌닭’의 닭고기구이.

2017년 음식배달 앱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기업 ‘우아한형제들’이 ‘치믈리에(치킨+소믈리에) 자격시험’도 열었다. 당시 500여명이 응시해 화제가 됐다. 눈을 가린 상태에서 튀김옷의 두께와 양념 맛만으로 브랜드 이름을 맞히는 문제가 출제됐다. 이는 치킨 시장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면과 높은 미식 수준을 드러내는 방증이었다. 튀긴 닭은 높은 칼로리 때문에 현대인들에겐 종종 불편한 존재로 여겨진다. 여기에 섬세한 치킨 소비자의 취향도 맞춰야 한다. 치킨 외식기업이 버터밀크, 기름 등 다양한 침지 재료를 찾고 갖가지 향미 조미료를 사용하는 이유다. 그 결과 원물 닭 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삭함과 입에 착착 붙는 감칠맛만 남았다. 이렇듯 치킨은 입에선 당기나 몸에는 미안한 딜레마에 빠지게 했다.


외식 분야에서는 치킨 말고도 여러 시도를 통해 다양성이 더해진 닭 요리가 많다. 10여년 전부터 전라도식 닭구이의 응용 버전인 ‘닭숯불구이’ 전문점들이 생겨났다. 건강한 방식으로 닭 요리를 즐기려는 소비자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원물 가금류의 제맛을 즐기는 법으로 튀김보다는 ‘직화구이’가 제격임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원물에 집중하는 닭구이 전문점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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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닭구이 호연재’에서 파는 메뉴.

서울간촌닭


문 연 지 1년도 안 된 닭구이 맛집이다. ‘숯불토종생닭구이’라고 적힌 안내가 있지만 언뜻 봐서는 특별한 식당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테이블에 나온 토종닭 숯불구이를 보면 신선한 원물임을 실감한다. 닭 비린내 전혀 없는 제대로 된 닭 살코기 맛을 즐길 수 있다. 캠핑을 좋아하던 주인은 좋은 식재료를 찾아다니다 식당까지 열었다. 직접 닭 발골도 한다. 닭 육회도 판다. 사전 예약이 필수다. 한국토종닭협회의 한닭 인증점이기도 하다. 협회는 토종닭만을 취급·판매하는 우수 식당에 대해 인증을 부여하고 있다.

서울 광진구 천호대로102길 8 1층/0507-1353-8063/토종닭 숯불구이 1만5천원, 닭 육회 2만5천원.

숯불닭구이 호연재


상호부터 범상치 않은 닭구이집. 조선시대 여성 문인이자 대전을 대표하는 시인 김호연재(1681~1722) 이름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조선시대 농서 겸 요리서인 ‘산가요록’에 나온 닭 요리 포계(泡鷄)를 연구하고 응용한 닭 양념을 낸다. 일반적인 닭갈비 모양과 다르게 살이 두툼하다. 폭신한 닭 살코기의 구운 맛을 즐기게 한다.

대전 유성구 온천북로33번길 35-5 1층 104호/0507-1372-4212/마늘갈비살 1만4천원, 반근 화계살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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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만뜨락’에서 파는 닭고기 요리.

고흥만뜨락


오리와 닭 요리 특화 맛집. 뼈째 자른 닭 토막을 초벌구이 해 내준다. 육계에 비해 성장 기간이 긴 토종닭이라 닭다리 등이 일반 닭에 견줘 크다. 먹기 편한 뼈 없는 닭 요리에 익숙하거나 진한 양념 맛에 길든 사람들은 다소 낯설 수도 있다. 신선한 닭, 과하지 않은 담백함, 숯불의 풍미, 닭 본연의 육즙을 즐기고 싶다면 가볼 만한 곳이다.

전남 고흥군 고흥읍 고흥군청로 33 메디컬빌딩201/(061)832-3052/토종닭숯불구이 6만5천원

글·사진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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