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 매크로바이오틱
채소와 곡물을 함께 한 매크로바이오틱 /flickr |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건강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됐고, 친환경과 비건이 유행하면서 건강식으로 끼니를 챙기는 일이 많아지고 건강에 좋은 여러 식단을 직접 찾고 있다.
매크로바이오틱 식단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장수식'의 하나로, 동양의 자연 사상과 음양 원리가 바탕인 식생활이다. 그리스어로 ‘커다란’ 또는 ‘오랜’이라는 뜻의 ‘매크로(macro)’와 ‘생명의’란 뜻의 ‘바이오틱(biotic)’이 조합된 단어로, 유기농 곡류와 채식을 중심으로 식사할 것을 권장한다.
유기농 음식이 생산 농법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매크로바이오틱은 재료 선택은 물론 조리법·활용법까지도 자연 친화적일 때 음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느 건강식들이 그렇듯 매크로바이오틱의 기본도 기본은 육식을 자제하고 유기농 곡식과 채소를 중심으로 먹는다.
자연친화적으로 건강을 지키는 법
채소 위주의 식단을 지향하는 매크로바이오틱 /flickr |
해외에서는 자연식 식이요법이란 뜻으로 '매크로바이오틱'이란 단어를 쓰는데, 처음 일본에서 시작해 오랜 시간에 걸쳐 미국과 유럽 등으로 퍼졌다. 일본의 사쿠라자와 유키카즈(영어 이름은 조지 오사와)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으며 1927년 '식양회'에서 유래했다. 음양의 균형을 맞추는 이 개념을 만든 유키카즈는 메이지 유신 이후 들어온 서구의 식생활로 인해 여러 질병에 걸리는 사람들을 보며 전통적인 식생활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19세기 중반, 일본의 어떤 한 의사가 서양 의학에 크게 의존했던 자신의 진료 방법에 매크로바이오틱을 도입한다. 군대에서 질병에 걸린 환자들이 건강마저 계속 나빠지자 그는 정제되지 않은 신선한 제철 음식으로 기반으로 식단을 짜고, 인공 재료나 유제품 등은 식단에서 제외했다. 메뉴에는 통곡물, 지역에서 재배된 제철 농산물, 견과류와 씨앗, 생선 등이 주를 이뤘다. 이 의사가 죽은 이후 매크로바이오틱은 잠시 잊혀졌다가, 결핵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던 교육자 유키카즈가 이 식단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시도하게 된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 결과는 놀라웠고 유키카즈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유키카즈는 그의 아내와 함께 이 식단의 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 개념은 일본에서 유럽으로, 전세계로 확대된다. 매크로바이오틱은 유키카즈의 제자였던 미치오 쿠시가 일본에서 스승과 함께 연구하며 유키카즈의 철학을 대중화시켰고 미국에서는 호평을 받은 식단이라 불렸다.
미치오 쿠시 /flickr |
'매크로바이오틱'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히포크라테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리스의 의학자이자 '의사의 아버지'라 불렸던 히포크라테스는 당시 사람들이 사는 환경과 먹거리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을 두고 마크로비오스(Macrobios)'라 불렀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에서도 제철 향토 음식, 채식을 지향하고 규칙적인 운동과 수면을 취하며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사람들은 질병에 노출될 확률이 적었다고 한다. 또 프로이센의 닥터 후펠란드는 1796년 그의 저서 'Art of Prolonging Life'에서 매크로바이오틱을 언급하기도 했다.
매크로바이오틱은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는 생활 방식이다. 비단 식단뿐만이 아닌 꾸준한 운동 등의 자기 관리도 포함하며, 천연 유기농 식단에 중점을 두고 화학 물질이나 인공 조미료 등의 제거를 지지한다.
다만 매크로바이오틱 식단이 어떤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미국암학회는 매크로바이오틱에 과학적 증거가 없어 암을 예방하는 데 이 식단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식단을 따라 건강을 지키길 원한다.
이 식단은 대부분 채식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동물성 지방을 제한한다. 심장병이 있거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들에게는 이로운 식단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어쨌든 건강에는 도움이 되는 요소가 있다. 매크로바이오틱은 몸무게를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식으로 몸 속 균형을 맞춰 장기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규칙적으로 음식을 섭취하고, 음식을 천천히 씹으며, 활동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정신을 갖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 말한다.
브로콜리 요리 /flickr |
매크로바이오틱은 기본적으로 음양 원리에 기본을 두고 있으며 네 가지를 주요 골자로 삼는다. 식품을 씨앗, 뿌리, 줄기, 잎, 열매, 껍질을 모두 먹는 일물전체, 사람의 몸은 음과 양의 균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동양사상인 음양조화, 태어나고 자란 땅과 그 곳의 계절에 맞게 수확된 채소, 과일, 곡식 등을 먹는 신토불이와 도심이 아닌 자연 환경에서 살아가는 자연생활 등이다.
식단 구성에서 통곡물은 약 50% 정도의 비율을 차지하며, 신선하고 지역에서 직접 공급하는 잎이 많은 채소들은 약 30%를 차지한다. 나머지 20%는 콩, 두부, 해조류 등으로 이루어진다. 채소들은 찌거나, 삶거나, 구울 수 있고 되도록이면 지역 제철 음식을 권장한다. 신선한 해산물과 생선에서 섭취하는 단백질도 중요하지만 통곡물과 채소와는 달리 매일 먹는 것은 아니다. 이 식단의 단백질은 거의 콩에서 얻는다고.
매크로바이오틱 식단을 따르는 사람들은 가공 식품, 유제품, 생선 이외의 고기는 먹지 않으며 계란, 설탕, 꿀, 커피, 홍차, 술도 금지하는 음식에 포함된다. 물론 사람이기에 이 모든 것을 다 끊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만큼 이 식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정해진 재료로 적절한 식단을 꾸미기 위해 노력한다.
매크로바이오틱은 유기농 식단이라 비건 식단과도 많이 비교가 되는데, 많은 부분에서 두 식단은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가끔 생선과 해산물을 매크로바이오틱에서 볼 수 있는 것에 비해 비건 식단은 어떤 동물성 제품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비건과 매크로바이오틱 모두 유제품, 고기, 계란 등을 피하지만 대개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동물로 만들어진 가죽조차 쓰지 않는 반면 매크로바이오틱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가죽 제품을 구매하거나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
생면 파스타 /flickr |
매크로바이오틱은 전형적인 동물성 식단에서 벗어나 동물성 식품을 금지하는 대신 자신들만의 가이드라인을 정해 최대한 균형을 맞추려는 것을 의의로 한다. 예를 들어 파스타를 파는 곳에 갔을 때 먹을 것이 없다면 마늘과 올리브 오일이 풍부한 파스타와 데친 브로콜리가 들어 있는 샐러드를 주문하는 것이다.
초기 버전의 매크로바이오틱은 익힌 통곡물, 제한된 음료만을 소비하는 아주 극단적인 방식이었다. 그래서 요즘의 전문가들은 이 제한적인 식단을 권장하지 않으며 개인의 나이와 성별, 신체 활동 수준 등에 따른 맞춤 식단을 권한다. 적절한 계획이나 연구 없이 무작정 따라하는 매크로바이오틱은 영양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임산부나 어린 아이들에게도 충분한 단백질이나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할 수 있어 적절한 식단은 아니다. 매크로바이오틱을 따른다는 것은 단백질, 비타민D, 칼슘, 마그네슘 등의 다른 비타민B의 결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모든 동물성 단백질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타민B12가 부족할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매크로바이오틱은 저지방과 섬유질이 높은 식단이라 콜레스테롤 감소, 심장병 예방, 면역 체계 강화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정해진 재료 내에 균형 있는 식단을 짜는 것은 가능하다. 매번 먹던 고기 같은 동물성 식품에서 한번 벗어나 보자는 도전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매크로바이오틱이 장기적인 계획까지는 아니어도 한번 시도는 해 볼만하다. 신체적 건강뿐만이 아닌 정신적 건강도 다스릴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단지 매일 먹었던 식단에서 몇 가지가 빠지는 것이며 곡물, 콩, 과일 등과 따뜻한 수프로도 한 끼를 때울 수 있다. 이 식단은 음식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음식을 추가하는 것이다. 몸에 좋은 음식을 식단에 넣고, 대신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뺀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끼 든든한 끼니가 될 수 있는 매크로바이오틱 /flickr |
곡물이라면 현미나 보리, 오트밀이나 발효되지 않은 샤워도우 통밀빵도 괜찮다. 콩은 병아리콩, 강낭콩, 검은콩 등이 좋으며 채소는 무, 양배추, 브로콜리, 양파, 당근 등 평범한 채소들을 선택하면 된다. 설탕 대신 조청, 꿀, 메이플 시럽 등의 감미료를 사용하며 육수는 된장으로 낸 국물을 선호한다. 화학조미료나 가쓰오부시는 사용하지 않고 주로 다시마나 표고 버섯을 이용하여 국물을 낸다. 유전자변형 없는 콩으로 만든 된장이나 두부, 템페를 식단에 넣는다. 매크로바이오틱은 재료뿐만이 아닌 조리 방법도 다양한데, 하나의 조리 기술이 아니라 익히는 방법도 살짝 익히는 것에서 최대한 잘 익힌 것까지 조리법이 다르다고 한다.
이들은 전자렌지를 쓰지 않으며 콩을 익힐 때 고압의 증기를 이용한 압력 조리법을 쓴다고. 곡물은 삶았을 때 소화도 잘 되고 부담없이 조리할 수 있어 여름에 콩을 많이 끓여 먹는다고 하며, 수분을 많이 공급하고 채소를 몽글몽글하게 만들기 위해 증기로 찌기도 한다. 따뜻한 음식은 몸에 많은 에너지를 공급하고 오랫동안 액체로 뭉근하게 끓이는 스튜는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가끔은 끓이고 찌는 것 말고 샐러드를 날것으로 먹는 것도 좋다고.
현미밥과 국, 채소 반찬을 곁들인 매크로바이오틱 /flickr |
코로나19로 인해 친환경이 대두되며 매크로바이오틱도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매크로바이오틱의 주요 요소 중 하나인 '일물전체'는 어떤 음식이든 껍질이나 뿌리·씨까지 버리는 부분 없이 모두 먹는다는 뜻이다. 식품을 통째로 먹어야 식품 고유의 에너지를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통째로 먹는다는 것은 음식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고 음식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다만 융통성 있게, 자신에게 맞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민수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채식을 선호한다면 선택적인 매크로바이오틱 실천은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전체 입장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영양 설계에 있어 매크로바이오틱 원리를 선별적으로 활용하는 게 좋다”고 전했다.
요즘은 매크로바이오틱 방식으로 요리하는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속속들이 생기고 있으며, 2019년에는 한국마크로비오틱협회가 출범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에 좋은 식사법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따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음식 전체를 섭취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채소 뿌리에는 세균이 많아 만성질환을 오래 겪은 사람은 면역력이 약해 세균 감염 위험 또한 높다고 한다. 매크로바이오틱에 식이섬유가 많다는 것은 칼슘이나 철분 흡수를 방해한다는 얘기도 되며, 골다공증이나 빈혈을 앓고 있는 사람에겐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건강하게, 똑똑하게 사용해야 하는 매크로바이오틱 /flickr |
매크로바이오틱 식단을 따르는 사람들은 식단과 생활의 조화를 꿈꾼다. 균형 잡힌 식단, 과식하지 않기 등 먹는 것에 중점을 두면서도 적절한 운동까지 더해 생활과 음식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유도한다. 이들은 건강한 몸과 평안한 마음을 목표로 하며 자극적인 식품이나 동물성 제품이 질병과 공격성 등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해 피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장수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매크로바이오틱은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다. 매일 버렸던 파뿌리를 오늘은 버리지 않고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매크로바이오틱을 실천하는 것이 된다.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