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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부터 있었던 단단한 식재료, 가쓰오부시

세계에서 가장 ‘최고’로 손꼽히는 기록이 모이는 기네스북. 그 책에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식재료’로 등재된 것을 보았다. 그런데 평소 우리가 먹는 모양을 생각하면, 이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가쓰오부시를 뿌린 오코노미야키 / pixabay

가쓰오부시를 뿌린 오코노미야키 / pixabay

가다랑어포라고 부르기도 하는 ‘가쓰오부시’는 불면 날아갈 것 같이 종잇장 같은 얇은 비주얼을 가진 식재료다. 그런 가쓰오부시가 단단한 돌이라는 화강암보다 더 단단해서 기네스북에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쓰오부시는 낯설지 않다. 오코노미야키나 타코야키 등 일본 음식이 대중화되면서 먹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뜨거운 음식 위에 올리면 춤을 추듯 움직이며 사그라드는 재미도 있지만, 그 미묘한 향과 감칠맛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훈제로 말린 생선 살

가쓰오부시는 고등엇과의 생선인 가다랑어의 머리, 지느러미, 복부지방, 내장을 손질하고 남은 살 부분을 찌고, 참나무, 너도밤나무 등을 이용해 훈제로 말려, 곰팡이를 피운 식재료다. 우리가 먹을 때는 바스러질 듯이 얇은 껍질 같은 형태로 가공되어 있지만, 원재료는 나무를 다듬은 단단한 조각처럼 생겼다.

가쓰오부시 가공 전의 형태 / flickr (Toshiyuki IMAI)

가쓰오부시 가공 전의 형태 / flickr (Toshiyuki IMAI)

가쓰오부시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개월 정도다. 생선 살만 다듬고 나서 1시간 정도 찐 다음에 뼈를 발라내고, 그다음 한 달 넘게 훈제를 한다. 5~6시간 연기 속에 두었다가, 하루 정도 방치한다.


이렇게 15번 정도 반복과정을 거친다. 그 후에는 약 2주간 방치하면서 곰팡이를 이용해 말린다. 그렇게 되면 수분이 20% 미만으로 남게 되어 딱딱하게 굳는다.

​​​​​​​훈제과정을 거치는 생선 / flickr (Aan Kasman)

훈제과정을 거치는 생선 / flickr (Aan Kasman)

여러 종류의 가쓰오부시 / flickr (Sophie)

여러 종류의 가쓰오부시 / flickr (Sophie)

어떤 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는데, 단순히 훈제 후에 건조한 것은 아라부시라고 부르며, 아라부시에 곰팡이를 피워서 5~6번 햇볕에 말린 것을 ‘혼카레부시’라고 한다.


최고급 혼카레부시는 이 과정을 2년 이상 반복하는데, 두드리면 철과 비슷한 소리가 나면서 겉은 베이지색, 속은 루비와 비슷한 색을 띤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가쓰오부시 원재료의 단단함은 암석 중 단단하다는 화강암을 압도한다. 모스 경도 기준으로 볼 때 화강암은 6~7 정도이지만, 가쓰오부시는 7~8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식재료’로 등재되었다.

가쓰오부시로 칼 만드는 영상 / 유튜브 영상 캡처(https://youtu.be/Put2ZUgYph0)

가쓰오부시로 칼 만드는 영상 / 유튜브 영상 캡처(https://youtu.be/Put2ZUgYph0)

완성된 칼로 종이 자르기, 캔 찌르기 / 유튜브 영상 캡처(https://youtu.be/Put2ZUgYph0)

완성된 칼로 종이 자르기, 캔 찌르기 / 유튜브 영상 캡처(https://youtu.be/Put2ZUgYph0)

SNS 상에는 가쓰오부시로 못을 박거나, 칼 모양으로 다듬어 종이를 자르는 등 단단함을 실험하는 사진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다양한 재료로 칼 만드는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 ‘kiwami japan’도 가쓰오부시를 갈아서 칼로 만들기도 했다. 가쓰오부시를 전용 대패에 갈아 다듬기만 했을 뿐인데, 종이가 잘리고 음료수 캔에 단번에 구멍이 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쓰오부시 케즈리키 / 위키미디어 (Sakurai Midori)

가쓰오부시 케즈리키 / 위키미디어 (Sakurai Midori)

단단한 가쓰오부시를 먹는 방법은 케즈리키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생김새는 대패와 비슷한데, 가쓰오부시를 갈면 톱밥처럼 얇게 말려 나온다. 시중에는 이미 얇게 가공된 가쓰오부시가 판매되니 가공품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기원전 1만여 년 전부터 먹었다

가쓰오부시는 단단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역사가 오래된 식재료이기도 하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4,000~13,000년부터 기원전 1,000~300년까지를 가리키는 일본 조몬시대부터 그 유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조몬시대는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와 비슷한 시기라고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과는 그 형태가 다르지만, 보통의 건어물처럼 건조하는 방법으로 먹은 것으로 보인다.

1930년경 일본 남양청 트럭섬에서 거래된 가다랑어 모습 / 위키미디어

1930년경 일본 남양청 트럭섬에서 거래된 가다랑어 모습 / 위키미디어

7세기 전반 일본의 불교문화가 발달했던 아스카 시대에는 부역령에 따라 말린 가다랑어가 헌납품으로 지정되기도 했으며, 지금과 비슷한 가쓰오부시는 봉건제가 발전한 무로마치 시대에 나타났다고 한다.


1489년 ‘시조류정서’라는 책에서는 손질된 가다랑어를 뜻하는 문자가 발견되었고, 1513년 와사시마 영주 가문의 공물에 관한 책에서는 ‘가쓰오부시’라는 단어가 언급되어 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가쓰오부시를 만드는 훈제법이 전수되는 등 다양한 건조기술이 발달했다. 1883년 메이지 시대에 열린 ‘수산 박람회’에서는 가다랑어 품평회가 개최되기도 했으며, 다이쇼 시대에는 가다랑어를 잡는 어업과 가공업을 분리해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현재는 가고시마 마쿠라자키 지역에서 생산되는 가쓰오부시가 가장 최고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을 정도이며, 2016년에는 ‘제20회 전국 가쓰오부시 제품 경연대회’에서 1위를 수상했다고 한다.

참치로 만드는 ‘몰디브 피쉬’

일본의 가쓰오부시와 비슷한 식재료가 또 있다. 몰디브에서 전통 낚시로 생산하는 참치로 만드는 ‘몰디브 피쉬’다. 몰디브의 주요 수출품이기도 한 몰디브 피쉬는 스리랑카 요리에서 풍미를 더하는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말린 몰디브 피쉬 / 위키미디어 (Xavier Romero-Frias)

말린 몰디브 피쉬 / 위키미디어 (Xavier Romero-Frias)

참치 어업은 주로 밤에 진행된다. 어부는 대나무 장대를 이용해 2~3시간 동안 약 600~1,000 마리 정도를 잡는데, 잡은 참치는 내장, 껍질, 머리, 뼈 등을 제거한 후 4등분 한다. 이 덩어리를 ‘개미’라고 부른다.


손질한 생선은 삶기, 훈제, 건조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되며, 가쓰오부시와 비슷한 형태가 된다. 가쓰오부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 단단함은 가쓰오부시 못지않다.


14세기 중세 이슬람 여행가인 이븐 바투타가 쓴 ‘여행기’ 등 기록을 보면, 몰디브 피쉬가 일본의 가쓰오부시보다 더 앞선 식재료라는 기록이 있다.


​​​​​​​중세시대, 일본 오키나와현에 있던 류큐 왕국이 중계 무역을 했는데, 그때 몰디브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확실치 않지만, 몰디브 피쉬와 가쓰오부시가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식재료라는 점에서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조선 시대 진귀한 식재료, 어란

우리나라에도 가쓰오부시처럼 생선알을 말려서 먹는 ‘어란’이라는 음식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숭어나 민어의 알을 간장, 소금 등에 절여 햇볕에 말린 것을 말한다.

영암 어란 / 위키미디어 (EBS)

어란 / 위키미디어 (EBS)

어란 만들기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는 8대째 전통을 이어오는 어란 장인이 나와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란 만드는 과정 /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020. 7. 11 방송) 캡처

어란 만드는 과정 /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020. 7. 11 방송) 캡처

얇게 자른 어란 / 위키미디어 (EBS)

얇게 자른 어란 / 위키미디어 (EBS)

직접 잡은 숭어에서 알을 손질해, 간장과 청주에 하루 정도 절인다. 절인 숭어알은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고, 햇볕에 말리면서 참기름을 200번 넘게 발라주어야 한다. 약 40일 정도 지나면, 색이 진해지면서 단단한 어란이 된다. 완성된 어란은 별도의 조리 없이 얇게 썰어 밥반찬이나 술안주로 먹는다.


방송 당시 어란을 먹어본 배우 김영철 씨는 “입 안에 향이 계속 남는다. 단맛이 느껴진다. 귀한 음식이다”라고 평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시대에는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며, 매년 4월에는 진상품으로 올렸다는 기록도 남아있다고 한다. 임금님이 먹을 정도이니 귀한 음식인 셈이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만큼, 어란 명인도 있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수산 식품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제조·가공 및 조리 분야 등에 20년 이상 종사한 사람, 그 방법을 보존하고 실현하는 사람을 ‘대한민국 수산식품명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수산식품명인 제1호 영남 어란 김광자 명인 / 한국수산회 홈페이지 캡처(www.korfish.or.kr)

대한민국 수산식품명인 제1호 숭어 어란 김광자 명인 / 한국수산회 홈페이지 캡처(www.korfish.or.kr)

명인 1호로 지정된 이가 바로 숭어 어란을 70여 년 넘게 만들어온 김광자 명인이다. 한국수산회에 등록된 명인 정보에 따르면, 1999년 지정된 김광자 명인은 조선 시대부터 어란을 만들던 장인 집안으로 시집을 와서 어란 만드는 일을 배웠다고 한다. 알 하나에 200~500번의 손길을 거치기 때문에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라고.


어란은 지금도 약 180~200g 정도에 40~50만 원, 약 1kg 정도의 고급 어란은 100만 원도 넘을 정도로 고가의 식품이다. 오랜 시간과 정성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음식이 아닌가 싶다.

flickr (Edsel Little)

flickr (Edsel Little)

가쓰오부시는 뜨거운 음식 위에 뿌리면 금방 사라지지만, 음식의 향과 맛을 더해주는 중요한 조미료다. 흔하게 뿌려 먹는 것이라 쉽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과정을 알게 된다면 쉽게 먹을 수 없을 것이다. 몰랐다면, 그 얇은 것이 원래는 단단한 생선이었다는 것에도 놀라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오랜 시간과 정성을 거치면 풍미가 좋고 단단한 식재료가 된다는 사실도 말이다.


​[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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