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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들기름’ 한식부터 디저트까지… 무궁무진한 그 얼굴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최강록 셰프 /넷플릭스 코리아(@Netflix Korea 넷플릭스 코리아)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지난 9월 넷플릭스를 통해 첫 공개된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이 종영 후에도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유명 셰프 ‘백수저’와 재야의 고수 ‘흑수저’로 나뉜 다수의 출연진들이 등장해 화제가 됐는데 그 중 백수저 최강록의 들기름 요리와 어록이 주목받고 있다.


백수저와 흑수저의 요리 대결에서 흑수저 참가자 승우아빠와 겨루게 된 최강록 셰프는 무와 들기름을 이용한 조림 요리인 ‘무 스테이크’를 내놨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나야, 들기름’이라는 어록을 남기며 들기름 요리에 대한 궁금증과 흥미를 높였다.


SNS 등 온라인에서는 들기름을 주재료로 활용한 최강록의 무 스테이크의 맛이 궁금하다는 의견이 쏟아졌는데 그렇다면 들기름은 언제부터 먹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다양한 요리에 쓰이게 됐을까.

들깨에서 얻은 기름… 요리 재료 등 활용도 높아

들기름은 식물성 기름으로 들깨를 짜 얻는다. 이를 다른 말로 법유라고도 하며 쓸모에 따라 볶지 않거나, 볶아낸 다음 짠다. 볶지 않고 짠 들기름은 주로 등잔이나 물건을 겯는데(기름에 담그거나 발라 흠뻑 묻히는데) 사용했으며, 다른 기름과 비교해 단단해 빨리 굳고 윤이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때론 옻칠 대용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를 유칠이라 말한다.


우리가 요리에 사용하는 들기름은 들깨를 볶은 다음 짜낸 기름이다. 혈관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오메가 3가 풍부한 건강한 기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만 쉽게 산패한다는 특징이 있어 다소 저장성이 떨어져 보관할 때 유의해야 한다.

들깨를 통해 얻는 들기름 /크라우드픽

고소한 맛과 향이 강한 만큼 요리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빠질 수 없는 재료로 사용되어 왔으며 오래된 문헌에서도 이 들기름에 대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전통지식포탈에 의하면 조선 후기의 실학자 홍만선이 농업 기술 및 생활지침에 대해 저술한 책 <산림경제>(1715)에서 들기름 조리법 및 가공기술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들기름의 원문명은 임자유(荏子油)로 표기되어 있으며, 내용에 따르면 “반드시 돗자리에 펼치고 낮에는 햇볕에 쪼이고 저녁에는 이슬을 맞게 하여 6~7일 지난 다음 기름을 짠다. 이렇게 짠 기름은 맑고, 많은 양이 나오는 데 등불로 사용해도 현기증이 없다. 1년 묵은 들깨는 물에 하루 담근 후 걸러 내 말려서 기름을 짠다. 2년 묵은 들깨는 2일 담그고 3년 묵은 들깨는 3일 담근다. 모든 들깨는 추운 날에 기름을 짜면 아주 적게 나와 안 좋다”라고 기록되었다고 한다.1)

산림경제초. 산림경제에서 필요한 부분을 가려 뽑아 필사한 책 /국립중앙박물관

이외에도 서영보, 심상규 등이 쓴 <만기요람>(1808),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 등 여러 고서에 이 들기름이 등장하며, 우리나라 근대 대표적 요리책 중 하나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용기, 1936)에도 들기름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들기름, 조선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들기름과 함께 또 다른 식물성 기름인 참기름을 요리에 사용해 왔다. 참기름은 참깨를 사용해 만든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들기름과는 다른 식재료다. 원재료는 물론 원산지와 역사에서도 조금씩 차이를 가지는데, 참기름은 참깨가 재배되기 시작한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널리 사용됐으며 이후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가며 다양한 용도로 활용됐다고 전해진다.


이와 달리 들기름을 만드는 들깨의 주요 원산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이다. 독특한 점은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들깨가 나더라도 이를 우리나라처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기름 보다 들기름은 더 전통적인 성격을 가진 식재료라고 볼 수 있다.

들깨의 주요 원산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로 알려진다 /픽사베이

식품저널에서 보도한 이명희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가 쓴 칼럼 ‘들기름, 기억력과 학습능력 높인다’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칼럼에 따르면 “들깨와 들깻잎은 우리나라 사람들만 먹는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들깨를 이용한 음식문화는 우리나라만 발달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 들깨 재배통계가 잡히는 것도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라고 한다.


최근 들어 들기름이 건강식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며 일본과 중국 등에서도 이를 섭취하거나 요리에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과거는 다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들깨보다는 그의 아종인 차조기(시소)를 주로 먹었고 자연스럽게 들기름 생산이 많지 않았다. 또 중국의 경우 역사 속에서 오랜 시간 들깨를 재배하며 들기름을 약용 혹은 요리에 소량 사용했다고는 하나 대두유, 채자유, 참기름 등 다른 주요 기름에 비교해 많이 쓰지는 않았다고 한다.


참기름보다는 비교적 역사가 짧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들기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이를 언제 처음 먹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들기름 사용에 관한 기록이 조선시대 문헌에 다수 남아있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이 시기에 들기름이 널리 사용됐을 것이라 추정할 뿐이다.

조선시대 문헌에서 들기름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들기름 /윤미지 기자

국립생물자원관이 발간한 <해제로 보는 조선시대 생물자원1>에 따르면 세종실록지리지 충정도, 황해도, 강원도에 대한 수록 내용 중 들기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또 이외에도 1429년(세종 11) 정부에서 편찬한 농업서 <농사직설>에도 참깨 재배법을 기록하며 들깨에 대해 ‘유마’로 표기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서부터 다양한 요리로 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들기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내용에서는 “들기름은 나물을 볶을 때 넣거나, 김을 구울 때 발라서 구우면 매우 맛이 좋다. 또 들기름은 음식에 뿐만 아니라 조선종이를 겯는 데나 등잔을 밝히는 데에도 쓴다. 등잔에 사용되는 들기름은 볶지 않고 날것을 그대로 짜야 한다. 이와 같이 들깨는 종자를 즐겨 이용할 뿐 아니라 어린 잎에 양념을 발라 쪄서 먹거나 풀칠하여 부각으로도 많이 먹는다”라고 한다.2)


이는 농화학자이자 식품영양학자 이성우 교수가 쓴 <고려이전 한국식생활사연구>(향문사, 1978)를 참고한 내용이다. 해당 내용을 살펴보면 들기름은 주로 나물 요리나 김을 구울 때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을 구울 때도 사용되는 들기름 /크라우드픽

이외에도 고문헌에 기록된 레시피들을 살펴보면 들기름이 얼마나 다양하게 요리에 쓰였는지 알 수 있다. 나물을 무칠 때 들기름을 사용한 것은 물론이며 고기 등의 구이 요리를 할 때도 이를 발라 굽기도 했다. 또 전통 약과를 만들 때도 들기름이 쓰였다.

나물을 무칠 때 들기름으로 맛을 내기도 했다, 사진은 다양한 나물 무침과 밥 /픽사베이

전이나 고기, 생선을 구울 때도 들기름이 사용됐다, 사진은 다양한 종류의 전 /크라우드픽

또 들기름을 짠 후 남은 깻묵을 활용한 요리도 있다. 바로 깻묵된장이라는 음식이다. 당진 지역의 토속 음식으로 들깨 깻묵과 된장을 넣어 끓인 찌개다. 직접 먹어본 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고소하면서도 묵은 김치가 들어가 있어 은은한 새콤함이 입 안에 돈다고 한다.


깻묵은 기름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를 말한다. 들기름을 짜내고 남은 깻묵에는 미처 짜내지 못한 들기름이 남게 되는데 이를 찌개에 넣어 먹으면서 깻묵된장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됐던 깻묵된장 /TV조선(@TVCHOSUN - TV조선)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이와 비슷한 요리를 한 조리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용기, 1936)에도 “들기름은 첫 번에 짠 깻묵을 토장찌개에 넣는 것이 좋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3)


이처럼 들기름의 풍미를 더한 다양한 요리들이 예로부터 존재해오며 현대에도 다양한 레시피에 쓰이고 있다. 현대에는 들기름의 발연점이 낮아 고온에 조리할 시 기름의 산패로 인해 맛과 향이 변할 수 있어, 나물 등을 재료로 한 무침 요리나 잡채, 비빔밥, 비빔국수, 샐러드에 곁들이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백종원의 요리비책'에서 들기름 두부 부침의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다 /백종원(@백종원 PAIK JONG WON)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또는 들기름의 발연점을 낮추는 방법으로 식용유를 섞어 두부, 애호박, 계란 등을 부칠 때 사용하기도 하며, 국을 끓일 때 주재료를 들기름에 가볍게 코팅하듯 볶아내 고소하고 깊은 풍미를 더하는 방법으로도 사용된다.

아이스크림에 들기름을?... 독창적 레시피도 등장

들기름은 전통적 레시피 외에도 현대에 와서 더 많이 사랑받는 재료다.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참기름과 비슷하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이 두 재료는 차이를 가진다. 참기름은 고소한 향이 진하면서 은은하게 달달한 감칠맛을 가지고 있고 들기름은 고소한 맛이 더 진하면서 특유의 독특한 향을 느낄 수 있다.

고소한 맛과 특유의 향을 가진 들기름 /윤미지 기자

들기름이 가진 독특한 풍미 덕에 최근에는 참기름 보다 이를 더 선호하는 젊은 세대도 늘고 있다. 들기름을 주재료로 사용한 요리 중 가장 대표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레시피는 ‘들기름 막국수’다.

들기름 막국수 /lazy fri13th,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2.0>, via Wikimedia Commons

들기름 막국수의 인기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 막국수 맛집이 SNS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면서다. 들기름 막국수를 만드는 레시피를 소개하는 유튜브나 블로그 콘텐츠도 늘어났으며 이후 이를 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 간편식도 여러 식품 브랜드에서 출시됐다.


들기름 막국수는 사실 강원도 지역에서 오래 먹어온 유서 깊은 레시피다. SNS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던 막국수 집 역시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한 막국수 집에서 기술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요리라고 하기엔 다소 단순하지만 최근에는 요리연구가이자 외식사업가인 백종원이 공개한 들기름으로 부친 계란 프라이도 유행했다. 국간장과 들기름을 넣어 계란을 부치는 간단한 레시피지만 밥 반찬 혹은 안주로 잘 어울린다. 직접 먹어본 이들에 의하면 일반 계란 프라이보다 훨씬 풍미가 깊고 감칠맛이 느껴진다는 평이다.

들기름 계란 프라이 레시피를 소개하는 백종원 /백종원(@백종원 PAIK JONG WON)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더 독특한 레시피는 아이스크림에 들기름을 뿌려 먹는 방법이다.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에 올리브유와 후추를 뿌려 먹는 레시피를 변형한 것으로, 처음에는 유명 오마카세나 레스토랑 디저트 메뉴로 등장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각종 블로그나 유튜브을 통해 바닐라맛 아이스크림 위에 들기름을 뿌려 먹는 레시피가 인기를 끌었다.

들기름, 맛내기용 기름에서 주재료로

맛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곁들여 먹는 들기름은 현재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며 여러가지 요리의 포인트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에는 최강록 셰프가 흑백요리사 대결에서 선보인 들기름 무 스테이크의 맛이 궁금해 직접 만들어 먹어보는 이도 있을 정도다.


들기름에 대해 향신료 정도의 역할을 기대해왔다면 이번 기회에 또 다른 관점으로 이 재료를 다뤄보는 것은 어떨까. 들기름을 주재료로 한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미식의 세계를 접하게 될 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들기름. (2013). [Data set]. 

2) 들기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깨소금 만드는 법. (2013). [Data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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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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