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화려한 비주얼과 함께 더 노골적이고 강해지는 음식의 언어

[푸드 NOW]

음식-와인 평론가들의 관능적 표현… 숏폼 영상 늘며 음식 비주얼 중요

셰프는 고유의 맛에 더 집중해야

감탄사 남발 아닌 진정한 리뷰해야


요즘 젠지(Generation Z·1990년대 중반∼2020년대 초반 출생자)들은 비주얼이 뛰어나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섹시 푸드’라고 표현한다. 윤기가 흐르는 두툼한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 모차렐라 치즈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피자, 초콜릿 드리즐 아이스크림 등 시각적인 만족을 주는 음식에 주로 사용되는데 유튜브 채널 워크맨에서 워크돌로 활약 중인 엔믹스 멤버 해원이 처음 말하며 유행하기 시작했다. 음식에 ‘섹시하다’는 관능적인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도 있지만 사실 이런 표현은 음식과 와인을 리뷰하는 해외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써오던 표현이기도 하다.


미국 애리조나대 언어학 교수인 에이드리엔 레러는 1975년부터 2000년 사이에 와인 리뷰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연구했다. 그는 1980년대 와인 리뷰어들이 와인을 표현할 때는 살집이 많은(Fleshy), 근육질적인(Muscular), 억센 체격(Big-boned), 어깨가 넓은(Broad-shouldered) 같은 단어를 쓰며 신체를 은유로 활용하는 빈도가 많아졌다는 걸 확인했다.


로버트 파커 같은 영향력 있는 와인 평론가들도 와인이 주는 쾌감을 감각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섹시(Sexy), 관능적인(Sensual), 풍만한(Glamorous) 같은 표현을 썼고 일반인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과실향이 풍부하다’ ‘타닌이 강하다’ ‘달콤하다’ 같은 표현만으로는 와인이 주는 감동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주 정교한 파인다이닝 요리나 디저트를 표현할 때도 관능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음식의 언어(The Language of Food)’를 집필한 댄 주라프스키 스탠퍼드대 언어학 교수는 100만 건의 리뷰에서 정교한 요리나 디저트를 묘사하는 데 가장 흔하게 쓰인 감각적인 단어로 ‘풍부한, 촉촉한, 따뜻한, 달콤한, 조밀한, 뜨거운, 크림 같은, 바삭거리는, 보송보송한, 벨벳처럼 진한’ 등을 꼽으며 감각적인 쾌락주의와 쾌감에 결부된 단어나 어구가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표현은 최근 인스타그램과 틱톡이라는 플랫폼이 대중화되면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 요리나 칵테일을 만드는 셰프, 파티시에, 바텐더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원래 사진과 짧은 글로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하나의 일기장이자 기록물이었지만 이제는 크리에이터나 레스토랑과 바, 카페, 호텔 등 브랜드의 명함이 되어 더 전문화되고 시선을 사로잡는 다양한 콘텐츠의 장이 되었다. 특히 1분 이내의 숏폼 영상 소비가 늘어나면서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네이버 클립 등의 영상이 대세가 되고 있어 사진보다 더 생생하고, 다이내믹한 콘텐츠가 많아지고 있다.


동아일보

숏폼 콘텐츠가 주력으로 자리 잡으며 식음료 브랜드는 음식의 비주얼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울한우’는 아치형 뼈대 위에 생갈빗살을 올리고 식용 금가루를 뿌려 주목을 받고 있고(위쪽 사진) ‘우모크’는 셰프가 나무 꼬챙이에 고기와 야채를 꽂아 불이 용솟음치는 화로에 구워 내는 원시구이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아래쪽 사진). 김유경 푸드디렉터 제공

이러한 콘텐츠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사례로 두 곳의 업장을 소개한다. 서울 여의도와 마포에서 ‘투뿔’ 한우 전문점을 운영하는 ‘소울한우’는 바이킹의 투구를 연상시키는 아치형 뼈대 위에 생갈빗살을 올리고 식용 금가루를 뿌려 마치 하늘에서 금이 떨어지는 듯한 황홀함을 선사한다. 서울 압구정로데오에 있는 한우 오마카세 ‘우모크’는 ㄷ자 테이블을 중심으로 셰프가 직접 나무 꼬챙이에 고기와 야채를 꽂아 불이 용솟음치는 화로에 구워 내는 원시구이를 선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요즘 소비자들이 원하는 화려한 콘텐츠를 주방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휴대전화 화면으로 보는 장면이지만 시선을 강탈하는 비주얼로 해당 장면을 촬영한 영상은 재공유되고 수많은 댓글이 달리며 맛집으로 자리 잡는다. 이것이 숏폼 콘텐츠가 주력으로 자리 잡으며 변화된 식음료 비즈니스의 새로운 알고리즘이다. 이러한 알고리즘에 올라타기 위해 많은 업주들이나 식음료 브랜드는 음식의 비주얼을 살리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간혹 화려한 영상을 보고 찾아갔지만 막상 맛을 보면 실망하는 경우도 더러 있어서 소비자들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음식을 표현하는 언어도 더 노골적이고 감각적인 단어들로 바뀌어 가고 있다. 내용은 없고, 감탄사만 남발하는 리뷰도 함께 양산되고 있어서 어느 정도의 제동 장치도 필요해 보인다.


식음료 업장들은 음식의 비주얼과 인터랙티브한 콘텐츠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식재료를 충분히 이해하고 고유의 맛을 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를 소개하는 리뷰어들도 진정성 있게 음식을 들여다본 후 깊이 있는 콘텐츠를 창출하길 바란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