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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사는 세상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아니면 관리 가능한 질병일까. 저속노화 열풍부터 세포 리프로그래밍 연구까지, 과학이 그리는 ‘늙지 않는 시대’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모든 이가 늙는다는 운명론은 옛말이다. 노화를 역행하고, 젊음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인류의 상식을 뒤엎었다.

ⓒ shutterstock

젊음을 향한 갈망과 노화에 대한 공포. 은퇴한 50세 전직 스타가 신비로운 신약으로 젊음을 되찾는다. 영화 <서브스턴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그로테스크하게 풀어낸다. 물론 이야기는 영화적 허구다. 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더 이상 공상 과학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노화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속노화, 시대의 화두가 되다

‘저속노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었다. MZ세대부터 중장년층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더 이상 오래 사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그리고 무엇보다 ‘젊게 늙는 것’에 관심을 쏟는다.


유튜브나 블로그 등 온라인 미디어에는 ‘저속노화 루틴’, ‘저속노화 식단’ 같은 자기 관리 콘텐츠가 봇물을 이룬다. 그 흐름에따라 사람들의 소비 습관도 변화한다. 흰쌀밥 대신 잡곡밥을,일반 식용유 대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을 고르는 건 이제특별한 선택이 아니다. 간헐적 단식, 저당 간식, 항산화 식품은건강 마니아층을 넘어 모든 이의 일상이 되었다.


이 흐름은 식품과 건강기능식품 산업에도 뚜렷한 변화를 불러왔다. 기존의 보충제 중심 시장에서 벗어나 항산화 작용과 노화 방지를 내세운 고기능성 제품이 주목받고 식물성 원료, 장내미생물 기반 솔루션, 유전자 분석을 활용한 맞춤형 제품군이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했다.


주목할 점은 이 모든 변화의 바탕에 노화에 대한 인식 전환이자리한다는 사실이다. 노화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다. 관리할 수 있다. 늦출 수 있다. 어쩌면 되돌릴 수도 있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다.

병이 된 노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유전학자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2019년 출간한 저서 <노화의 종말(Lifespan)>를 통해 노화를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 아닌 과학으로 개입 가능하고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정의한다.


이 주장은 단순한 철학의 도발이 아니다. 싱클레어는 노화의 분자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세계적 유전체학자다. 그는 수십 년간 NAD+ 대사, 시르투인 단백질, 염색질 안정성 등 세포 수준의 노화 과정을 규명하는 데 앞장섰다. 이론만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복용 중인 보충제 목록과 생물학적 나이 측정 결과를 공개했다. 그는 자신의 생물학적 나이가 실제보다 10년 이상 젊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과학계와 대중 사이에 논쟁과 회의, 기대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는 노화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싱클레어를 비롯한 새로운 세대 과학자는 묻는다. 왜 우리는 늙어야 하는가? 그리고 정말 그래야만 하는가?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의 강연. 그의 뒤에 ‘만약 노화가 질병이고, 그 질병이 치료 가능하다면?’ 이라 써 있다.&nbsp;ⓒ davidsinclairphd<p>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의 강연. 그의 뒤에 ‘만약 노화가 질병이고, 그 질병이 치료 가능하다면?’ 이라 써 있다. ⓒ davidsinclairphd 늙어야만 한다는 생물학적 법칙은 없다. –<노화의 종말> 중

노화는 ‘CD에 난 흠집’

싱클레어에 따르면, 노화는 세포가 자신의 기능을 점차 잃어가는 과정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세포 속 DNA를 음악이 담긴 CD에 비유한다. 처음엔 완벽하게 작동하던 CD도 시간이 지나며 표면에 흠집이 생긴다. 재생 장치가 정보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음악이 흐트러진다. 곡은 그대로 존재한다. 하지만 연주가 더 이상 원래처럼 들리지 않는다.


DNA 염기서열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전자발현을 조절하는 후성유전학 표지(EpigeneticMarkers)가 손상되면, 세포는 본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싱클레어는 이 현상을 ‘후성유전학 정보의 상실(Epigenetic Information Loss)’이라 부른다. 


이를 바탕으로 ‘노화의 정보 이론(InformationTheory of Aging)’을 제시했다. 핵심은 간단하다.돌연변이나 텔로미어 단축보다 세포가 자신의 정체성과 기능에 대한 ‘정보’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점점 흐려진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실험을 통해 일정 부분 입증되었다. 싱클레어 연구팀은 젊은 생쥐의 DNA에 인위로 손상을 가했다. 염기서열은 그대로인 상태였다. 그런데 생쥐는 급속한 노화 징후를 보였다. 털이 희어지고, 장기기능이 저하됐다. 조직 내에는 노화 관련 세포가 다수 발견되었다. 후성유전학 정보만 교란해도 노화가 유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 것이다. 노화가 단순한 세포 마모나 유전자 손상 축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세포 내 정보 시스템의 붕괴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간을 되돌린 실험실의 기적

그렇다면 노화를 되돌릴 방법은 무엇일까? 싱클레어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해법으로 ‘세포 리프로그래밍(Cellular Reprogramming)’을 제시한다. 컴퓨터를 초기화하듯, 세포의 생물학 시계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기술이다.


기술의 핵심은 ‘야마나카 인자(Yamanaka Factors)’다. 2006년, 교토대학교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성체세포를 줄기세포 상태로 되돌리는 네 가지 전사인자를 발견했다. Oct4, Sox2, Klf4, c-Myc. 피부세포를 초기 배아 단계처럼 ‘리셋’할 수 있었다. 이 발견은 생물학계에 충격을 안겼다. 야마나카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기술에는 치명적 한계가 있었다. 네 인자를 모두 사용하면 세포가 과도하게 젊어진다. 암세포처럼 변형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싱클레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위험한 인자인 c-Myc를 제거했다. 


나머지 세 인자(Oct4, Sox2, Klf4)만 짧은 시간 동안 작동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세포를 완전히 초기화하지 않고, 일부분만 되감는 방식이다. 이른바 ‘부분 리프로그래밍(Partial Reprogramming)’이다.


2020년, 싱클레어 연구팀은 이 실험의 성과를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노화로 시력을 잃은 쥐에 세 유전자를 주입했다.  손상된 시신경세포가 재생되며 시력이 회복되는 것을 관찰했다. 단순히 노화를 ‘지연’시킨 것이 아니다. 


이미 늙은 세포가 젊은 상태로 ‘되돌아간’ 첫 번째 사례로 평가된다. 더 놀라운 점은 이렇게 회춘한 세포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경세포는 여전히 신경세포로, 망막세포는 망막세포로 기능했다. 즉 세포가 줄기세포로 초기화되지 않았다. 본래 역할은 유지한 채 생물학 시계만 되감긴 셈이다.


이 실험은 노화를 되돌릴 수 있는 생물학 가능성을 실험을 통해 처음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조절 가능한 생물학 과정일 수 있다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준 것이다. 물론 이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가천대학교 길병원 가정의학과 서희선 교수는 “아직은 동물실험 단계다. 설계도만 있다고 집이 저절로 지어지지 않듯, 유전자를 주입한다고 해서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라며 “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만큼 실제 치료로 이어지기까지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라고 전했다.

세계 각국의 연구진이 세포의 생물학 시계를

되감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늙는다는 것’의 의미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실험실을 넘어 임상으로

노화를 조절 가능한 생물학 표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이제 실험실을 넘어 임상과 산업계로 확장된다. 세계 주요 제약사와 바이오테크 기업, 학계 연구기관들이 관련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당뇨병 치료제 메트포르민(Metformin)을 활용한 TAME 임상시험(Targeting Aging with Metformin)이 대표적인 시도 가운데 하나다. 미국 내 65세 이상 성인 약 3000명을 대상으로 설계한 이 연구는, 메트포르민이 노화와 관련한 만성질환의 발병을 지연시킬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특정 질환이 아닌 ‘노화 자체’를 임상 관찰 지표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주목을 받는다.


2022년 공식 출범한 바이오테크 기업 알토스랩스도 학계와 업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설립 직후 약 30억 달러의 초기 투자금을 유치했다.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자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토스랩스는 세포 리프로그래밍 기술을 통해 손상된 세포기능을 복구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이를 기반으로 질병과 노화로부터 회복 가능한 생물학 시스템을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이사회와 자문단에는 야마나카 교수를 비롯해 후성유전학 및 세포 재생분야의 전 세계 석학이 포진해 있다.

이 외에도 캘리코,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 유니티바이오테크놀로지 등 다양한 기업이 활발히 활동한다. 노화 세포 제거, 텔로미어 연장, NAD+ 수치복원 등 노화 생물학의 여러 경로를 표적으로 삼는다. 수백만에서 수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움직인다.

고정된 삶의 방식 재구성할 수도

노화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세계 곳곳의 연구소와 기업이 세포의 생물학 시계를 되감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하지만 그들의 시행착오로 ‘늙는다는 것’의 정의는 점차 달라질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 병원에서 생물학 나이를 진단받고 맞춤형 노화 개입 치료를 권유받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을 수도 있다. 교육, 노동, 은퇴, 노년이라는 익숙한 삶의 구조도 점차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될 가능성이 있다. 


노화가 언젠가 질병처럼 정복될지, 아니면 인간 존재의 불가피한 일부로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과학은 노화라는 오래된 퍼즐을 조금씩 풀어간다. 그 끝에는 우리가 아직 상상하지 못한 삶의 형태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진경(하이닥 건강의학기자) denmagazine@mcircle.biz

정지환 에디터 stop@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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