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대표 된 ‘Gukbap’… 외국인 관광객 줄 서 먹고 인증샷
K드라마·영화 인기에
한식 대표 된 ‘Gukbap’
지난 2일 점심시간 서울 홍대 앞 국밥집. 대기 손님들 중 한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아 보인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지난 2일 점심 시간 서울 홍대 앞 어울림마당로에 있는 한 국밥집. 가게 앞은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손님들로 북적댔다. 금발의 서양인 커플, 히잡을 쓴 동남아 여성들, 캐리어를 손에 쥐고 중국어로 대화하는 남성들 등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한국인 손님 못지않게 많았다.
30여 분 기다려 매장에 들어서자 중국어·영어·프랑스어 등 외국어가 한국말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테이블에 설치된 키오스크(무인 주문기)는 한글·영어·일본어·중국어 등 4개 언어로 메뉴를 소개했다. 중국어의 경우 중국 본토에서 쓰는 간체자(簡體字)뿐 아니라 대만·홍콩 등지에서 사용하는 번체자(繁體字)로도 적혀 있었다.
국밥을 내온 종업원은 “점심과 저녁 사이 한적한 시간대에는 외국인 손님이 더 많다”고 했다. 인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20대 한국인 여성은 “이 국밥집뿐 아니라 주변 김치찌개집도 늘 외국인이 절반 이상”이라며 “국밥이 뭐 대단한 음식이라고 앞에 놓고 인증 사진을 찍는지 참 신기하다”고 했다.
서올 홍대입구역 인근 한 국밥집 테이블에 설치된 키오스크.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모든 메뉴를 소개하고 주문할 수 있다. /김성윤 기자 |
국밥(gukbap)이 새로운 한식 대표 주자로 급부상했다. 특히 20~30대 젊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먹고 싶어하는 한식 메뉴가 김치·불고기·삼계탕에서 국밥으로 바뀌었다. 지난 5일 BC카드는 최근 3년(2022~2024년)간 음식별 외국인 결제 건수가 많은 음식을 발표했다. 국밥은 2022년 순위권 밖이었다가 올해 7위로 톱10에 처음 진입했다. 1위는 치킨, 2위는 중식, 3위는 간장게장.
한식 대표 선수는 한류 콘텐츠 바람을 타고 교체되는 중이다. BC카드는 “K드라마, K영화 등으로 다양한 음식이 전 세계에 노출되면서 외국인이 선호하는 한식 순위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MZ세대 외국인들은 ‘나의 아저씨’ ‘스카이캐슬’ ‘우리들의 블루스’ ‘황해’ ‘우아한 세계’ ‘범죄와의 전쟁’ 등 한국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과 K팝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먹는 곰탕을 먹어 보고 싶어 한다. 인도네시아 관광객을 상대하는 여행 가이드 김모(52)씨는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안 먹는 관광객은 돼지국밥이나 순대국밥 대신 설렁탕이나 갈비탕을 찾는다”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은 돼지국밥의 메카 부산 등 국밥이 유명한 지역에도 찾아간다. BC카드 분석 결과에 따르면, 고속버스·철도·렌터카 등 국내 교통수단을 이용한 외국인이 해당 음식을 파는 지역 내 식당 업종에서 결제한 금액 및 건수가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은 외국인보다 50% 높게 나타났다. 홍대입구역 인근 한 돼지국밥집 앞에서 만난 싱가포르 여성은 “뉴진스 멤버들이 부산을 여행하며 돼지국밥 먹는 걸 보고 꼭 먹어 보고 싶었다”며 “일정이 짧아 부산에 갈 순 없지만 서울에서라도 맛볼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국밥 인증샷. 가운데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출연한 영국 배우 사이먼 페그. /인스타그램 |
밥을 국물에 말아 먹는 건 유럽·미국 등 서구권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식문화. 하지만 국밥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고기 국물은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익숙한 국물 음식 즉 ‘수프’다. 쌀밥은 동양 식문화에 대한 이해도와 호감도가 높아지면서 차츰 거부감이 줄고 있다. 독일에서 왔다는 30대 커플은 “설렁탕 국물은 콘소메(프랑스식 맑은 고기 수프)와 비슷했고, 밥을 더하니 탄수화물(쌀 전분)이 섞이면서 국물이 더 진해지고 단맛이 더해져 한결 맛있었다”며 음식 평론가 뺨치는 시식 소감을 들려줬다.
국밥은 유럽과 미국 현지에서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돼지국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돼지곰탕’을 개발한 ‘옥동식’은 2022년 미국 뉴욕에 진출해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뉴욕 최고의 요리 8선’에 옥동식의 돼지곰탕을 선정하면서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이라고 상찬했다.
음식 작가 박정배씨는 “한국인이 매일 먹는 곰탕이 한식 대표 메뉴가 됐다는 건, 세계적으로 한식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깊어졌다는 증거”라고 했다. “사실 불고기·갈비 등 이른바 ‘K바비큐’나 삼계탕, 잡채는 한국인이 특별한 날이나 외식 때 먹는 별식이죠. 김치는 주식이 아닌 반찬이란 한계가 있고, 치킨은 한식 대표로 내세우기는 아쉬운 부분이 있고요. 곰탕은 한국인의 일상식이자 ‘찐 한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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