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넓은 냄비에 짓는 스페인식 솥밥… 눌어붙은 누룽지까지 긁어먹었네
정동현의 pick
파에야 편 : 서울 창성동 '레에스티우'
서울 청와대 앞 스페인 음식점 '레에스티우'의 파에야.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볶음밥이 아니다. 훠이 훠이 냄비를 휘저으면 불경한 짓이 된다. 절대 쌀을 젓지 않고 그대로 육수에 졸여 만드는 '파에야(paella)'는 본래 파에야를 만드는 넓고 납작한 냄비 이름이었다. 돌솥밥과 비슷한 경우다. 18세기 철 주물업이 번성하며 철 냄비를 대량으로 만들며 시작된 (그러니까 대중적으로 보급된) 이 요리는 미국의 햄버거, 이탈리아의 스파게티처럼 스페인의 국민 요리이자 관광 상품이다. 그러나 쌀로 만들었다고 해서 중국의 볶음밥이나 이탈리아 리소토와도 같지 않다. 오히려 얇은 냄비에 만드는 솥밥이라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 음식은 터키, 러시아 음식처럼 '세계 요리' 카테고리에 뭉뚱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산티아고 순례길로 대표되는 스페인 여행 붐과 함께 이제 스페인 안 가본 사람이 드물고 파에야 안 먹어본 사람이 없는 지경이 됐다. 그 여파로 서울에서도 스페인 음식점 찾기가 어렵지 않다. 서울 연남동 골목 3층에 자리한 '파라디그마'는 파에야를 찾는다면 먼저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다. 젊은 요리사가 작은 주방에 서서 불을 다루는 이곳의 메뉴는 파에야를 중심으로 한 학익진과 비슷하다. 스페인 전채 요리인 '타파스'를 곁들여 파에야를 시키고 향이 뚜렷한 스페인 와인을 더하면 대서양의 싱그러운 바람이 느껴지는 저녁 시간이 완성된다. 누구나 시키는 새우 요리 '감바스 알 아히요'도 좋지만 양송이에 소고기와 시금치를 채우고 크림소스로 마무리한 '양송이구이'를 빼놓지 말자. 소고기 구울 때 같이 철판에 올리는 정도로 먹었던 양송이의 또 다른 육질을 느낄 수 있다. '오징어 먹물 파에야'는 바다에서 비롯된 감칠맛과 염도가 손짓하듯 와인을 부른다.
자리를 옮겨 북촌으로 가면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에 우아하게 내려앉은 식당 '떼레노'가 있다. 미쉐린 레스토랑 가이드에서 별 하나를 받은 이곳은 코스 메뉴 한 가지만 내놓는다. 푸아그라를 써서 속을 만들고 초콜릿으로 감싼 전채 요리는 사과 형상을 하고 있지만 입에 넣으면 극으로 치달은 지방의 무게감과 초콜릿의 단맛이 충돌하듯 만나 이내 또 다른 맛으로 변했다. 소 정강이뼈를 숯에 익혀 한우로 만든 '타르타르 스테이크(서양식 육회)'와 함께 낸 요리는 소의 뜨거운 뼛속과 익히지 않은 생살의 맛이 번뜩이는 대조를 이뤘다. 뒤이어 나오는 이 집의 쌀 요리는 정통 방식으로 냄비에 나오는 파에야는 아니고 일종의 오마주에 가까웠다.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일종의 누룽지 '소카라트(socarrat)'가 없다는 걸 빼면 파에야에서 기대하는 바로 그 맛이라 좋았다. 제주산 딱새우의 단맛, 무르지 않게 쌀의 탱탱한 장력이 살아 있는 익힘, 혀에 코팅되듯 달라붙는 오징어 먹물 소스는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만큼 깔끔하고 흠이 없었다.
북촌에서 조금 서쪽으로 이동해 청와대 앞으로 가면 얼마 전 문을 연 '레에스티우'가 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에서 쓰는 카탈루냐어(語)로 '여름'을 뜻하는 이곳은 스페인에서 온 요리사가 주방을 지킨다. 저온에 익힌 문어를 센 불에 다시 구운 문어요리는 대서양과 지중해를 접해 해산물 요리가 발달한 스페인 음식의 저력이 숨어 있었다. 35년 묵은 간장으로 맛을 낸 스테이크에서는 한국에서 몇 년간 한식을 배운 덕에 한국어가 유창한 요리사의 지난 역사가 느껴졌다. 그리고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한 파에야가 있었다. 그날 테이블에 올라온 것은 화고 버섯을 비롯한 버섯 네 종류, 오리고기, 오리고기가 있는 곳에 늘 따라 나오는 오렌지, 소나무 향기가 나는 허브 로즈마리가 올라간 파에야 '파토 콘 세타스(pato con setas)'였다. 가장 비싼 허브라는 사프론의 붉은 듯한 오렌지빛, 강하지 않지만 존재감 있는 매운맛, 오리고기의 굵은 맛이 냄비 안에서 춤추듯 어우러졌다. 투명하고 붉은 와인이 음식을 뒤이었다. 냄비 바닥에 눌어 붙은 소카라트를 주걱으로 긁어 먹었다. 저 멀리 고국이 걱정된다는 말이 들렸다. 그들을 위로하며 바스락거리는 밥알을 씹었다. 우리는 쌀을 먹는 사람이었다. 언어가, 눈동자 색이 다르더라도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정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