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의 역사 속으로
opinion
<신들의 열매, 초콜릿>을 읽고 초콜릿의 기원을 살펴보다
초콜릿, 가장 친근하고 어렸을 적부터 많이 먹었던 간식이다. 그동안 초콜릿의 달콤함만 느낄 줄 알았지 초콜릿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유래가 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떤 능력이 있어서 신들의 열매라고 불리는지 제목부터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은 초콜릿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칼 폰 린네 [출처 : 구글] |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유럽의 침략자들이 카카오나무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신대륙의 원주민들은 1천 년 이 넘도록 계속 불러온 이름이 아닌 침략자들이 붙인 새로운 이름과 정의에 적응해야 했다. 스웨덴의 과학자 칼 폰 린네가 이 식물에 속명과 종명을 붙였다. 바로 ‘테오브로마 카카오’ 이다. 테오브로마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신들의 음식’이라는 뜻이다. 어떤 신을 염두 해 두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카카오나무는 재배하는데도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북위 20도와 남위 20도 사이에서만 열매를 맺고 1년 내내 수분공급이 필수적이다.
이런 초콜릿의 성분에 알칼로이드와 테오브로민이 있다. 이를 소비하는 즐거움은 처음으로 유럽인이 알게 되었다. 테오브로민은 많은 식물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알칼로이드와 마찬가지로 약하게 중추 신경계를 자극한다고 한다. 그런데 초콜릿의 가장 놀라웠던 점은 흔히 생각하는 딱딱한 고체가 아니라 마시는 음료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스페인어-마야어 사전을 보면 초콜릿이 “뜨거운 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과거 라캉돈 마야족은 카카오를 재배해 보통 음료 그리고 신들에게 바치기 위한 음료 두 가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과테말라에 사는 현대 마야족도 카카오로 음료를 만드는 법을 가지고 있고, 마야기 도기나, 한 작가가 기술한 책에서도 음료로 사용되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액체의 초콜릿에서 가공 처리된 초콜릿을 최초로 만들어낸 사람들은 멕시코 남부 저지의 삼림 지대에 살았던 올멕족이었다.
카카오 나무의 모습 [출처 : 구글] |
또 흥미로운 사실은 초콜릿과 아즈텍족과 얽힌 이야기도 있다. 아즈텍족들은 금욕적인 성향이 아주 강해 술을 마시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고, 술 취한 사람들은 사형에 처했다. 사람들은 이전부터 옥틀리 라는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를 마셨는데 이보다 초콜릿이 문화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음료로 환영을 받게 되었다. 또 이뿐만 아니라 카카오 종자가 화폐로 사용되기도 했고, 카카오의 개수를 단위로 거래했던 시절에는 아즈텍 통치자의 창고엔 카카오가 가득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렇게 초콜릿의 위치와 인식이 좋았던 아즈텍에서는 어떻게 초콜릿을 먹었는지도 궁금해졌다. 아즈텍인들은 초콜릿 음료를 차갑게 마셨다. 또한 옥수수나 다른 종자를 섞어 먹기도 했고, 거품을 중요하게 여겨 꼭 거품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단순히 초콜릿 음료로만 마시는 줄 알았는데 다양한 첨가물을 넣어 먹는다는 점도 놀라웠다. 고추를 넣어 마시기도 하고, 벌꿀이나 꽃 등 다양한 것들과 함께 먹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초콜릿의 용도가 이렇게나 다양했다니! 생각보다 굉장히 먼 예전부터 이 가치를 알고 사용해왔고, 여러 방식으로 음료를 섭취하고 있었다. 또 이 초콜릿은 특정인들 즉 특권층만을 위한 음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지위나 연령에 전혀 상관없이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 과거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이후 아스텍족의 수도가 함락되고 초콜릿은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변용되었다. 또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초콜릿”이라는 단어도 이때부터 사용하게 되었다. 의학적으로도 이용되곤 했는데, 체력을 키우고 사람들을 쾌활하고 강하게 만든다는 믿음이 있었다.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 더 유용한 역할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스페인으로 시작해 유럽 각국에 초콜릿은 퍼지게 되고 바로크 시대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귀족들의 음료로 이용되었다. 이전의 신성했던 카카오의 의미는 변질되고 맛이나 영양분, 흥분제와 같은 성질만 주목해 성행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초콜릿이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어 변형되어졌다. 각기 다른 잔에 넣어 팔기도 하고, 기호에 맞춰 온도를 조절하며, 향료를 사용해 여러 가지 맛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프랑스에선 초콜릿의 영양에 대해 혼란이 있었다. 왕궁 주위에서는 초콜릿이 의학적으로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의문이 돌았고, 의사가 초콜릿은 신의 영양식이라고 발표한 후 논란은 종결되었다.
초콜릿 잔을 든 여인 - 장 에티엔 리오타르(Jean-Etienne Liotard ), 1743 |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커피나 홍차가 초콜릿 음료를 대체하게 되었고, 이탈리아 에서는 성직자들이 초콜릿을 주로 마시곤 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초콜릿은 산업혁명을 통해 대중들이 즐겨먹을 수 있는 싼 음식이 되었다. 그리고 마시는 것이 아닌 먹는 형태의 고체 초콜릿의 발명이 이루어 졌고 대규모 제조업자들에 의해 우리가 지금 접하는 막대 모양의 초콜릿이 된 것이다.
초콜릿이라는 음식 하나에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와 역사가 담겨있었다. 긴 역사를 함께 한 만큼 초콜릿의 가치는 수없이 변동되었고, 형태나 먹는 방법 등도 변화해왔다. 많은 논쟁이 있었던 이유는 초콜릿이 주목 받을 만하고 매력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많은 과거의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초콜릿을 실험하고 평가한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가 초콜릿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끊임없는 의심과 호기심은 초콜릿의 발전을 도왔던 것 같다.
현대 초콜릿의 모습 [출처 : 구글] |
시대별로 초콜릿에 강한 중독성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는데, 맛과 효능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초콜릿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맛일까 상상하며 읽었는데, 정말 궁금하고 신비롭다. 지금보다 훨씬 풍부하고 깊은 맛 그리고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음식일 것 같다. 향도 훨씬 짙고 음미하기 좋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초콜릿에 고추를 넣어먹는 방법이 가장 놀라우면서도 한번 맛보고 싶었다.
초콜릿에 관한 요리법이나 맛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초콜릿의 역사에 대해 쭉 다루고 있었다. 이렇게 긴 역사를 함께 해왔을 줄 생각도 못했다. 초콜릿과 관련된 고대 아메리카와 유럽의 역사를 더불어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흘러온 역사 만큼 초콜릿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 말은 곧, 초콜릿은 온 시대에 걸쳐 사랑받고, 관심 받았던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진정한 초콜릿의 세계를 알았고, 앞으로 초콜릿을 더 좋아할 것만 같다.
고지희 에디터 dr0336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