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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난 당신이 필요해요

안녕하세요, 종현 팬입니다.

내 몸에 남겨진 살트임들이 내 성장통의 일부였던 것처럼, 나와 이 세계의 성장에 대한 믿음을 갖고 통증을 견디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나아갈 것이다.

 

그 통증이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어 주기에, 나는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었던 "살트임"에 감사한다. 언제나 그렇듯, 난 당신이 필요해요.


종현 《 The 1st Mini Album 'BASE'》 앨범 커버 수록 글

시린 공기가 코끝에 쨍하니 스칠 때, 꽁꽁 여민 옷가지 안쪽으로 잔뜩 건조해진 나의 살갗이 느껴질 때. 그리고 어쩌면 도처에 널린 모든 생명들이 가진 건 가냘픈 껍데기뿐이라고 느껴질 때. 그럴 때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겨울의 긴 터널 어디쯤을 홀로 걷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내 나의 연약한 감정의 껍데기 사이를 비집고 꾹꾹 눌러 담았던 것들이 어김없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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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

종현.


그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가수이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어느 날 저녁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음악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소녀시대부터 빅뱅까지. 당시 2010년대 국내 가요 시장을 주름잡았던 아이돌 열풍에,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나의 또래 친구들은 매주 음악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샤이니는 신인 그룹답게 똘망똘망한 눈빛과 왠지 모르게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3학년에 불과했는데, '누난 너무 예쁘다'고 노래하는 샤이니에게 한눈에 꽂히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입덕해버린 나는 그날 이후로 그들의 활동을 열심히 좇았고, 어느덧 자칭이자 타칭으로 샤이니의 '빠순이'가 되어있었다.


멤버들의 얼굴이 새겨진 배지와 사진들을 수집했고, 당시 팬덤 문화 중 인기였던 팬픽이나 상황 문답 같은 것들을 읽으며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무려 삼백 개의 곡이나 삽입되는 (당시에는 꽤 혁명적이었다) 아이리버 MP3에 음악을 넣어놓고 어디에서든지 듣고 다녔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 우습지만, 당시 네이버 카페를 통해 개설된 '샤이니 안티 카페'에 몰래 가입해 결론이 나지도 않을 싸움에 굳이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팬덤 문화 중 하나였던 빅뱅이나 비스트 팬덤과의 친목 형성도 열심히 참여했다.


그렇게 나의 초등학생 시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보냈던 매우 바쁜 팬 활동으로 가득했다.


몸이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어느덧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편을 택하곤 했다. 당시 나는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건 고등학생답지 않은 철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부끄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를 '빠순이'로 보고, 재단하고, 프레임을 씌워버릴 것이 두려웠다.


더욱이, 나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밤 10시에 귀가하는 삶이 반복돼야 쏟아지는 학업량을 그나마 소화할 수 있었던 대한민국 고등학생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할 여유는 없었다.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 점점 사치가 되어버렸다.


나는 좁은 독서실, 더 좁은 책상에 엎드려 잠깐 동안 음악을 듣거나 방송 영상을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당시 들었던 최애곡 추천 2. 종현 - 우주가 있어 (Orbit)

ⓒ=유튜브채널 JONGHYUN-Topic

그리고 한 가지 더. 느지막이 집에 도착해 겨우 샤워하고 침대에 지친 몸을 누일 때. 문득 미래에 대한 막막한 두려움과 고민이 물밀 듯이 밀려올 때면, 핸드폰을 꺼내 매일 밤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진행하는 〈푸른 밤 종현입니다〉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흘러나오는 종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많이 울고 웃었고, 음악이 너무 좋을 땐 나중에 또 들으려 제목을 기록해두기도, 오프닝이나 클로징 멘트가 마음을 울릴 땐 다이어리 구석에 남몰래 적어 간직하기도 했다. 단지 목소리만을 통해서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을 전달하는 라디오에는 거대한 힘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 매력에 빠져들어 그렇게 매일 밤을 잠드는지도 모르게 잠들었다.


그 무렵 나는 생각했다. 나중에, 그러니까 고작 몇 년 뒤에, 대학에 가게 되면, 가고 싶었던 콘서트랑 팬사인회를 열심히 다니기로. 그때는 정말 마음껏 좋아하기로.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당시 들었던 최애곡 추천 3. 종현 - 따뜻한 겨울 (Our Season)

ⓒ=유튜브채널 JONGHYUN-Topic

작은 화면 속에 비친 모습이, 매일 밤 흘러나오던 목소리가, 얼마나 나에게 큰 존재였고 위로였는지 깨닫게 된 건 떠나간 이후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그의 행복한 모습만을 상상했던 것 같다. 완벽한 사람이길 바랐던 것이다. 나는 팬이라고 자부했음에도, 온전한 팬이었는지. 어쩌면 나는 그동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했던 건 아닌지. 정답을 알 수 없는 자책이 밀려왔다.


수없이 현실을 부정하고, 원망하기도 했다. 그가 남기고 떠나간 물음표들이 마치 갈고리처럼 나를 통째로 헤집어놓았다. 그렇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한없이 무너져내리는 겨울밤들을 보냈다. 예상보다 더 아픔은 컸고 슬픔은 길었다. 단 한 번의 말도 섞지 않았던, 그리고 나의 존재 자체도 몰랐던 이었지만, 어쩌면 그건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


부재를 인정하고 온전히 그리워한다는 건 나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에, 그의 음악을 다시 찾아 들을 수 있게 된 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오늘의 나는 남겨진 말들을, 음악들을, 글들을 찬찬히 곱씹어 보며 그날의 종현을 온 마음을 다해 그리워하고 있다.


마치 오늘처럼, 추운 계절의 긴 터널을 홀로 걷고 있는 것만 같을 때, 유난히 달이 밝을 때.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이제서야 나는, 보고 싶다고, 많이 그립다고. 덕분에 많이 위로받았다고 괜스레 소리 내어 중얼거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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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

"삶이란 건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죠. 우리도 그 과정 속에 있고 그로써 성장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당장은 참 아쉽고 섭섭하고 눈물 나고 그러겠지만, 우린 꼭 다시 만날 거예요. 아마도 너와 난 꼭 그때가 아니었더라도 분명 만났을 거야, 그때가 어서 오길 바라고요. 그땐 지금의 감정보다 훨씬 더 큰 반가움으로 서로를 맞이하겠죠."


2017-04-03 MBC 라디오 FM4U 〈푸른 밤 종현입니다〉

마지막 방송 클로징 멘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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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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