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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뚝배기보다 장맛'의 의미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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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되는 된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장(醬)은 한국인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음식의 맛인 간을 결정하는 기본 조미료다. 전통적으로 조미료 하면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을 통틀어 일컫는다.


콩을 재료로 발효시켜 만드는 간장은 첫째 소화 효소를 자극해 소화 과정을 돕고 음식의 분해와 흡수를 원활하게 한다.


간장에는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가 풍부하게 함유돼 세포의 산화 손상을 방지하고 노화 과정을 늦출 수 있다. 간장 속의 유기산과 천연 항균 물질은 병원균의 증식을 억제해 야채의 독을 해독하고 감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된장은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이 풍부하다. 특히 비타민 B군과 철분이 많이 들어 있어 된장에 포함된 프로바이오틱스는 장내 유익균을 증가시켜 장 건강을 개선하고, 면역력을 강화한다.


된장 속의 아이소플라본과 사포닌 등의 성분은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된장 속의 불포화 지방산과 레시틴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간장과 된장은 건강에 많은 도움을 주는 조미료다. 24년 12월 3일 유네스코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장 담그기'는 콩을 주재료로 메주를 만든 뒤, 발효시켜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전통적인 과정을 말한다. 특히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이라는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지난해에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우리의 독창적 문화다.

◇ 메주콩 담그기의 추억

필자의 어릴 적 기억 속 깊이 자리 잡은 것은 음력 10월 무렵 마을을 감싸던 메주의 진한 향기였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메주콩을 준비하는 일부터 정성스럽게 시작하셨다. 먼저 콩을 키에 담아 벌레 먹은 콩과 돌을 일일이 걸러내신 뒤, 깨끗이 씻으셨다. 그 후 커다란 함지박에 물을 가득 채워 콩을 담그셨다. 콩 껍질과 불순물을 조리로 여러 번 가려내고 다시 한번 깨끗이 헹구셨다.


물기를 뺀 콩을 소쿠리에 받쳐 놓으신 뒤,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아들아, 물은 콩의 세 배 정도 부어야 하고, 12시간 이상 충분히 불려야 한단다."


그렇게 콩은 하룻밤 동안 물속에서 불어났다. 다음 날 아침, 식사가 끝난 후 어머니는 불린 콩을 물과 함께 가마솥에 붓고 장작불을 피우셨다.


처음에는 강한 불길로 끓이시다가, 물이 펄펄 끓어오르면 불을 낮춰 7∼8시간 동안 은근하게 삶으셨다. 이 과정에서도 어머니는 삶의 지혜를 들려주셨다.


"솥뚜껑을 열면 안 된다. 물이 끓어 넘쳐도 그냥 둬야 한다."


어머니는 냄새와 감각만으로도 콩이 얼마나 익었는지 아셨다. 가마솥을 열어 콩이 붉은빛을 띠기 시작하면, 드디어 잘 익었다는 신호였다.


한 줌을 손에 쥐어 내게 건네시면, 따뜻한 콩에서는 구수한 향과 함께 깊은 감칠맛이 퍼졌다.


삶은 콩이 한 김 식으면, 어머니는 그것을 나무절구에 넣고 절굿공이로 정성스레 찧어 으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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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먹거리, 콩 이야기 콩은 힘(力)이다.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옛날부터 쌀, 보리 등과 영양의 조화를 이루어 왔다. 사진은 콩으로 만든 된장과 청국장이 발효되는 모습. 사진/이진욱 기자

이렇게 으깬 콩을 방으로 옮기고, 삼베 보자기를 깐 되박에 담아 발로 단단히 밟아 눌렀다. 삼베를 벗기자, 네모난 사각형의 메주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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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에 매달린 메주 연합뉴스 자료사진

메주는 방 안의 따뜻한 아랫목에 짚을 깔고 올려두어, 꾸덕꾸덕하게 마를 때까지 사흘간 건조했다.


아버지는 이 메주를 짚으로 열십자로 묶고, 다시 꼬아 단단한 끈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안방 시렁에 걸어 두고 약 두 달간 띄웠다.


띄우는 동안에는 열흘에 한 번씩 볕이 좋은 날을 골라 처마 밑에 매달아 통풍시켰다. 겨우내 방 안은 메주가 띄워지는 독특한 냄새로 가득 찼다.


이윽고 메주가 잘 뜨면, 반으로 잘라 깨끗한 우물물에 씻어 볕에 말렸다. 마침내 장을 담글 날이 다가왔다.


어머니는 말날이나 소 날을 골라 물을 끓이고, 여기에 소금을 녹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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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암을 이기는 한국인의 음식 발효과정 중 생기는 제니스테인은 제니스틴보다도 암예방 효과가 훨씬 크기 때문에 콩은 그대로 먹는 것보다는 발효해서 먹는 것이 암 예방에 더욱 좋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적당한 농도를 맞추기 위해 계란을 띄웠다. 계란이 물 위에서 반쯤 뜨면, 비로소 알맞은 농도였다. 이 소금물을 식혀 항아리에 붓고, 준비된 메주를 조심스레 담았다.


그 위에는 숯과 말린 고추를 올리고, 단단히 뚜껑을 덮은 후 새끼줄을 단단히 둘러매셨다. 이후 볕이 좋은 날이면 항아리 뚜껑을 열어 공기를 쐬어 주시고, 깨끗이 닦는 과정을 반복하셨다.


그렇게 2달 정도 지나면, 메주는 된장과 간장으로 갈라졌다. 된장은 새로운 항아리에 옮겨 담겨 숙성을 시작했고, 간장은 체에 걸러 가마솥에 부어 정성껏 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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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년 넘은 씨간장독 (구례=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 고택을 지키고 있는 9대 종부 이길순(83·여)씨가 230년 이상 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씨간장독을 살피고 있다. 2017.1.13 areum@yna.co.kr (끝)

식힌 후 다시 항아리에 옮겨 붓고 묵은 씨간장을 한 되 넣으면 그제야 간장도 숙성의 시간을 맞이했다.


이렇게 한겨울 내내 어머니의 손길이 스며든 장은 우리 집 밥상의 근원이 됐다. 장은 이처럼 양념이 아니라,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 그리고 세월이 만들어낸 깊은 맛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맡았던 그 향기와 정성스러운 손길은, 지금도 내 가슴 한편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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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장(醬) 맛 보세요" (보은=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350년된 덧간장(씨간장)을 보존해 화제를 모았던 충북 보은군 장안면 하개리 보성 선씨 영흥공파 21대 종부 김정옥(사진 오른쪽)씨가 관광객들에게 대추를 고아 담근 된장과 고추장을 맛보여주고 있다. 2007.10.3 bgipark@yna.co.kr

◇ 전략이 필요한 장 담그기

손자병법 '행군의 장'을 전통 장(醬) 만들기 과정과 비교해보면 환경을 파악하고, 신중하게 준비해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통 장은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세심한 관리로 완성되는 보약 같은 존재다. 마찬가지로, 손자가 강조하는 군대의 이동과 진영 배치는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신중한 계획과 전략이 필요하다.


지형 선택에서 손자는 군대를 배치할 때 "높은 곳과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차지하라"고 했다. 군대가 유리한 환경을 차지하면 전투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커진다.


메주 띄우는 환경 선택도 장맛의 근본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전통 장을 만들려면 통풍이 잘되고 적당한 습도와 온도가 유지되는 공간이 필수적이다.


만약 지형(환경)을 잘못 선택하면 장이 상하거나 좋은 발효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장맛이 깊어지려면 햇볕, 바람, 습도 조절이 중요하듯, 군대도 적절한 위치를 차지해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


적의 상태를 판단하는 데 손자는 "적의 상태를 신중히 분석해야 함정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장 발효 상태와 비교하면 장맛이 깊어지려면 발효 상태를 자주 살펴야 한다.


거품이 많거나 냄새가 심하면 발효가 잘못된 것이다. 색이 너무 짙어지면 과숙(過熟)된 것이고, 냄새가 부자연스러우면 부패한 것이다. 즉, 장의 상태를 잘 살펴야 좋은 맛이 난다.


또한 손자는 "군대 이동은 신중해야 하며, 성급하게 움직이면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장의 숙성 과정과 비교하면 된장과 간장은 오랜 시간 숙성해야 깊은 맛이 난다.


너무 빨리 장을 뜨면 깊은 맛이 부족해진다. 또, 너무 오래 방치하면 발효가 지나쳐서 맛이 변할 수도 있다. 군대도 너무 빠르게 움직이면 피로해지고, 너무 오래 주저하면 기회를 놓친다.


그러므로 좋은 장맛은 적절한 숙성 시간에서 나오고, 좋은 전술은 신중한 판단에서 나온다. 결론은 손자병법과 장의 효능을 비교하면 전통 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는 천연 보약이다.


손자가 전장에서 강조한 것처럼, 군대의 사기는 병사들의 건강 상태에 달려 있고, 좋은 음식이 결국 승리를 만든다는 점에서 장의 효능과 맞닿아 있다.

◇ 음식전문서에 나온 장맛의 참뜻

예부터 한국인에게 간장과 된장 등 장류는 한 집안의 1년 동안의 식생활을 책임져 줄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만일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진기하고 맛있는 반찬일지라도 능히 잘 소화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라며 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나온다.


또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장(醬)은 장(將)이니, 음식의 독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장수가 포악한 사람을 평정하는 것과 같다"며 장의 효능을 언급했다. 이밖에도 박해통고(博海通攷)에서는 장을 '각종 맛을 내는 장군'에 비유했다.


이처럼 우리 조상은 장에 대해서 매우 진심이었다. 집에 장맛이 안 좋으면 아무리 좋은 고기반찬이 있어도 상을 차리기 어렵다고 봤다. 시골에서도 각종 맛있는 장만 있으면 반찬 걱정을 덜 수 있으니 가장된 자는 반드시 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장을 귀하게 여겼던 까닭에 매년 길일을 택해 정성껏 장을 담았다. 매일 같이 장독을 닦고 장독대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는 등 장의 보관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장을 담그는 날도 일반적으로는 정월 말날(午日)을 가장 좋은 날이라고 봤다.


장을 담글 때 택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장 담그는 물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규합총서에서는 "장 담그는 물은 특별히 좋은 물을 써야만 장맛이 좋다"고 했다.


간장과 된장은 'K-Food'의 근간이다. 감칠맛과 풍미를 제공하고 인체의 장 건강과 면역력을 강화하고 천연 조미료로 건강한 식단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유튜브에서 보면 간장과 된장을 응용한 서양 음식을 다룬 콘텐츠가 넘친다. 이제 간장과 된장은 세계의 모든 다양한 요리에 응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여기에 건강에 도움이 되고 맛까지 동시에 잡는 점은 '화룡점정'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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