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을 가질 자유
드디어 찾아온 자유롭고 풍족한 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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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나에겐 그저 온전히 ‘나’로 존재하기 위한 500분(약8시간)의 시간과 나만의 방이 필요하다. 오로지 충분한 수면을 위하여!
결혼, 그리고 출산과 함께 ‘충분한 수면’을 잃어버린 지도 벌써 3년여 시간이 흘렀다. 고질적인 코골이를 가진 남편과의 신혼생활은 꽤나 힘든 적응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20년 넘게 고요한 내 방에서 온전한 수면을 취했던 내 삶에 ‘코골이 남편’의 등장은 엄청난 위협이었다. 그보다 먼저 잠들지 않으면, 뜬눈으로 그의 코 사운드를 들으며 잠을 청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멀찍이 자면 달라질까 싶어 그의 발을 향해 머리를 두고 자기도 했었다. 밀착력과 방음이 좋다는 귀마개를 동원해 가며 그렇게 힘든 적응을 펼쳤었다.
그러다 한계가 온 순간은 바로 임신 기간. 갑자기 달라지는 몸과 호르몬의 불균형과 심리적 불안 등등은 더 이상 그의 코 사운드를 버텨낼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신랑과 ‘각방’ 선언을 했고, 잠시 고민을 하던 그였지만 각방 합의와 함께 베개 하나와 이불 하나 들고 옆 방에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찾아온 자유롭고 풍족한 수면의 자유!
그러나 부부가 ‘각방’을 쓴다는 것을 함부로 얘기하기엔 조심스러운 게 우리네 정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충분히 만족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지만 누군가 보기엔 문제가 있는 부부, 혹은 부부라면 마땅히 견뎌내는 노력을 하지 않는 부부처럼 비칠지도. 그 옛날, 한 방에서 온 가족이 우르르 지내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 중한가 하는 어른들도 있지 않을까? 개인의 행복과 만족도가 부부와 가족의 행복이라고 주장하며 각방을 고수 중이지만, 가끔은 ‘각방살이가 정말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 요즘이다.
이런 고민이 생겨나던 중 마침 만나게 된 책 『각방 예찬』. 특히 ‘코골이 환자와 자리 많이 차지하는 사람’ 챕터가 눈에 확 들어왔다. 비단 코골이뿐 아니라 사소한 습관으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는 사연들이 가득하다. 악몽을 꾸던 배우자가 공격하는 사례, 아침형 인간이 저녁형 배우자와 살면서 겪는 고단함 등. 이들에게 주어지 ‘각방 쓰기’ 솔루션은 삶의 질을 바꾸어 놓는 신의 한 수였다.
사실 자는 동안에 배우자가 꼭 필요하지 않다. (물론 ‘그 사람 없이는 잠이 안 와요!’ 라는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말이다) 부부만의 원칙을 잘 만든다면, 각방 쓰기는 어쩌면 떨어져 있어 더 서로를 신경 쓰고 애틋한 사이를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그 사람으로부터 수면을 방해받지 않았으니 깨자마자 기분 나빠할 필요도 없고, 아침마다 반가우니 이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졸혼’이 고령화 시대 이슈로 자리잡고 있는 요즘, 각방 쓰기는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한 방향이 아닐까 한다. 복잡한 세상,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 우리에게 ‘수면’은 곧 ‘휴식’이고 ‘자유’다. 멀어지는 게 아닌, 더 가까워지기 위한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는 생각으로, 두려움 없이 자기만의 방을 가질 것을 권한다.
글 | 유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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