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버섯과 사랑에 빠진 사나이 - 송이의 품격
가을은 산촌의 진객, 버섯철!
버섯의 일미는 향미, 솔 향 가득한 송이를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 느낌이다. 그 순간 바로 송이와 사랑에 빠진다.
참나무 원목에서 표고버섯이 자라고 있다. |
버섯의 일미는 향미다. 제 아무리 맛있게 요리해낸 버섯요리라고 해도 향미가 빠지면 버섯을 먹어야 할 커다란 이유가 빠진 것과 같다. 그래서 버섯을 만지는 요리사들은 향미를 살려내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더한다.
9월과 10월 초는 산촌의 진객 버섯 철이다. 가을비에 체온이 내려간 날 송천리 떡마을 뒷산에서 채취한 송이를 즉석에서 맛을 봤다. 그윽한 솔 향에 고생해서 산을 올라온 수고도 잠시 잊고 만다. 이 맛에 레스토랑보다 산지를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송이버섯 |
버섯 향에 취하니 문득 수년전 강원도 양양에서 송이밭을 만났던 환희가 떠오른다. 그때의 이야기다. 주문진에서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양양으로 향할 때 38선교에서 바라본 동해바다의 하늘이란. 구름사이로 비치는 광명에 넋이 나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너무나도 아름답고 웅장했다. 차를 조금 더 몰아 양양에 다다랐다. 사방으로 펼쳐진 소나무 숲을 보니 여기가 송이의 주산지 양양이구나, 실감이 들었다.
양양의 산은 보기보다 높다. 해발 1,000m는 기본이다. 얼마 오르지 않아 싸리버섯이 눈에 띈다. 같은 싸리버섯이라고 해도 노란싸리는 독이 있다고 하니 주의해야 한다. 흰색에 가까운 회색을 띈 싸리버섯만 식용할 수 있다. 산은 급격한 경사가 졌다. 오르기 힘들지만 송이를 따겠다는 일념으로 위로 쉼 없이 올랐다.
깊은 산속에 혼자라는 생각에 노파심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러다 멧돼지라도 만나면 어떡하나. 운무가 눈앞에서 안개처럼 내 몸을 감싼다. 얼마나 올랐을까.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정상이 가까워져 온다. 소나무보다 참나무들이 더 눈에 띈다. 참나무 아래에서는 송이보단 능이를 찾아야 한다. 송이가 토종 소나무인 적송 30~40년생 아래 있다면 능이는 활엽수림 특히 참나무 아래에서 나기 때문이다. 역시 예상대로 조그마한 능이 한 송이가 눈에 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정상을 발아래 두었다. 정상 위에 서니 삼각형의 꼭대기에 서 있는 듯 평지는 폭 1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오르자마자 내리막길인 셈이다. 저 멀리 실 같은 강이 흐르고 결실을 앞둔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잠시 바람에 땀을 훔치고 송이를 찾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송이를 만났다. 송이 3개가 솔잎 사이로 갓을 내밀고 있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솔잎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은 송이를 밟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생애 처음으로 자연 상태의 송이를 본 순간이다. 감동적이다. 조금 떼서 앞니로 깨물어 보니 입안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송이와 사랑에 빠졌다.
저 멀리서 물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계곡의 물이 송이를 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데다 잘 자라고 있는 적송, 물과 운무에 신령스런 기운까지 감돌았다. 이 모든 것들이 송이가 나는 데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다시 또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다.
미식의 원천은 제철 식재료에 있다. 따라서 현재 제철인 버섯을 미식쇼에서 놓칠 리 만무하다. 표고버섯은 돼지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다. 표고버섯이 돼지고기의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기 때문이다. 주로 돼지고기와 함께 볶음을 하거나 김치찌개를 끓이는데 사용되지만 미식쇼에서는 색다른 표고요리를 선보였다. 몇 년 전 밴쿠버의 한 레스토랑에서 맛본 것을 나름대로 재현한 것이다. 다진 돼지고기에 갖은 양념을 해서 기둥을 자른 표고갓에 적당량을 붙여 팬에 구운 다음 다시 쪘다. 이것을 접시에 담고 가다랑이포 우린 국물을 붓고 무즙을 올려서 냈다. 반응이 좋다.
“표고에다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미치도록 맛있네요.”
송이버섯 소고기전골 |
송이는 소고기와 함께 전골로 냈다. 달큰한 소고기에 은은하게 밴 송이 향이 요리의 품격을 높여준다. 송이구이는 일반적으로 고기와 함께 굽는다. 하지만 육식을 멀리하고 자연의 맛 그대로를 즐기는 산사의 스님들은 송이를 소금만 살짝 뿌려서 호박잎에 싸서 구워먹기도 한다. 숯불 속에 묻어 둔 호박잎을 꺼내서 벌리면 먼저 송이향에 정신을 홀린다. 물기를 머금은 송이를 씹으면 버섯이되 고기 같은 식감과 풍부한 솔향이 가을의 진객임을 증명한다. 송이 향을 온전하게 즐기는 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방식이 또 있을까 싶다.
송이버섯과 소고기 |
마지막으로 닭 육수에 송이버섯을 넣어서 참석자들에게 냈다. 송이 향을 그윽하게 느끼고 싶다면 숟가락보다는 그릇을 들고 마시는 게 낫다.
갈수록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다. 성장 조건이 까다로운 버섯은 그나마 덜 오염된 식품이다. 영향도 우수하니 건강을 돌본다면 버섯에 대해 눈을 돌려야겠다. 그렇다고 다 같은 버섯은 아니다. 요즘은 저작미를 즐기는 식성 탓에 버섯갓을 작게 하고 기둥을 키운 기형적인 버섯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버섯의 영양은 기둥보다 갓에 주로 있다. 지금 당신이 사 먹고 있는 개량종 버섯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일이다.
송이버섯 호박잎구이
1. 송이버섯을 다듬어 물로 씻은 다음 손으로 찢는다.
2. 호박잎을 물에 씻어 물기를 제거한다.
3. 호박잎에 송이를 올려놓고 소금을 뿌려서 감싼다. 호박잎 2~3장으로 더 감싸서 석쇠에 올려 굽는다.
4. 겉잎이 까맣게 타면 중불이나 약불로 뜸을 들인다.
5. 호박잎을 걷어내고 황홀한 향을 맡으며 버섯을 먹는다.
※ 표고버섯이나 그 밖의 버섯으로 응용해도 된다.
글 | 김용철
김용철 저,사진 | 엠비씨씨앤아이
예약 대기자 1000여 명, 맛객 미식쇼! 이 생경한 이름의 쇼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지 궁금증이 일 것이다. '맛객 미식쇼'는 한 달에 두 세 번, 맛객 김용철이 제철 자연에서 찾은 재료들로 소소하지만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다. 『맛객 미식쇼』에는 그의 요리 철학과 미식 담론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맛, 인생에서 찾은 맛을 나누며 행복을 느낀다고 믿는다. 그래서 맛객의 요리를 접한 사람들은, 맛은 몰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