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도 못 푸는 사건
린드버그 사건과 경찰소설의 탄생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8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뉴저지 주 호프웰에서 벌어진 일이다. 1932년 3월 1일 화요일.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하루 종일 기분 좋은 햇살이 집 안을 감쌌다. 그러나 태어난 지 겨우 1년 하고 8개월이 지난 린드버그 부부의 아들 찰스는 그날따라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아침에 찬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었을까. 하는 수 없이 종일 저택의 2층 아기방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평소와 달리 불편한 저녁 식사를 마친 린드버그 부인이 잠든 아들의 모습을 확인한 것은 19시경이었다. 열이 높다는 것 말고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정확히 세 시간 후 보모가 확인했을 때, 아기방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집 안 어디에서도 찰스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하얀색 봉투가 하나 발견되었다. 찰스가 자던 방의 하나뿐인 창문틀 위에 놓여 있었다. 안에 든 메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몸값은 5만 달러. 20달러 지폐로 2만5천 달러, 10달러 지폐로 1만5천 달러, 5달러 지폐로 1만 달러를 준비해 놓으면 전달할 방법을 알려주겠다. 아이는 무사하니 경찰에는 알리지 말 것.>
신고를 한 이는 린드버그의 장인인 듯하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대규모 병력을 사건 현장에 파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건 당사자가 대서양 횡단 단독비행의 성공으로 세계적 유명인사가 된 찰스 린드버그였고 그의 아내는 소설가 앤 모로였으며 장인은 『금융제국 J. P. 모건』에 등장하는 그 모건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린드버그 저택의 마당에서 특수제작된 사다리와 톱을 발견한다. 성과는 거기까지였다.
출처_imagetoday |
당시 경찰에게는 ‘몸값을 요구하는 아동 유괴 사건’에 대한 매뉴얼이 전혀 없었다. 덕분에 초동 수사과정은 마치 영화 <살인의 추억>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저택 주변의 발자국과 바퀴 자국은 보존되지 않았고 현장은 구경꾼들로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언론은 ‘백만장자 유명인사의 아들 유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바빴다. 그로부터 사흘 후. 범인으로부터 다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아이는 건강함. 하지만 경찰에게 신고했기 때문에 몸값을 7만 달러로 올린다. 다시 연락할 때까지 기다릴 것.>
경찰에게 신고하는 것을 처음부터 반대했던 린드버그는 이때부터 독자적으로 조사를 시작한다. 그는 조폭들을 고용하여 과거 유괴사건을 벌였던 이들의 면면을 살피게 하고 사기꾼이라 판단돼도 무엇이든 아들에 대한 정보를 가져오는 자들에게 비용을 지불했으며 점쟁이에게까지 찾아가 아들의 행방을 묻는 등 필사적이었다. 범인이 3월 8일 보낸 메시지는 경찰과 언론에 알리지 않은 채 본인이 직접 지시내용을 따르기로 했다.
린드버그와 범인은 신문광고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3월 14일, 그는 “돈이 준비되었으며 경찰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내용의 광고를 신문에 게재한다. 물론 범인들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으로 실었다. 그리고 마침내 4월 2일, 아들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정보를 범인으로부터 제공받는다. 매사추세츠의 어느 해변가 보트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해군이 나섰다. 하지만 대대적인 수색작업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몸값은 이미 범인의 손에 들어간 뒤였다.
찰스가 발견된 건 5월 12일이다. 몸은 이미 차갑게 식은 상태였다. 부검한 의사에 따르면 발견되기 훨씬 전에 죽어 있었다고 한다. 린드버그의 장인이 예상했던 것처럼 범인은 처음부터 찰스를 죽일 속셈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범인은 수사가 혼선을 빚으리라는 것도 예상했을지 모른다. 린드버그 가문의 구성원들은 돈만 많았던 게 아니라 스타였으니까. 실제로 이 사건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했던 인간들이 차고 넘쳤다. 그 과정에서 온갖 거짓 증언과 단서들이 흩뿌려졌다.
이후로 미국에서는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하에 연방법이 개정되면서 ‘몸값을 노린 유괴 사건’의 경우 경찰이 아니라 FBI가 전담하게 되었다는 것과 유괴와 관련한 경찰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단독자로서의 탐정들만 득세하던 추리소설 시장에 비로소 걸출한 경찰들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스터리의 사회학』을 집필한 다카하시 데쓰오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조직으로서의 경찰이 주역으로 등장하여 ‘경찰소설’이라는 장르가 확립된 계기가 된 것은 1932년 린드버그 사건이다. 유괴 사건은 어떤 명탐정이라도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성격의 범죄이므로 경찰의 조직적인 활동이 필수적이다. 범인과의 협상과 이에 대한 조언, 몸값의 전달, 잠복 등 지체 없는 대응이 필요한 만큼 훈련된 경관을 대량으로 비밀리에 동원해야 한다.”
훈련받은 조직이 아니면 대처하기 힘든 범죄와 제아무리 비범한 명탐정이라도 해결하기 힘든 사건들이 현실 세계에서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추리소설 안에서도 마찬가지의 상황들이 반영되었고 그 결과 경찰소설이 급증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탄생한 경찰소설의 걸작들이 바로 토머스 월쉬의 『맨하탄의 악몽』, 윌리엄 맥기번의 『파일 7』, 에드 맥베인의 『킹의 몸값』이다.
대다수 독자가 알고 있는 작품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이겠지만, 다카하시 교수가 지적한 대로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린드버그 사건을 “동기로 사용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범죄 메시지를 전달하고 돈을 건네받는 방법에 대한 서술이나 경찰의 주의를 보모에게 돌리려 한 점(린드버그 집안에서 일하던 보모는 공모를 의심받고 자살한다),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던 부부와 대부호인 장인의 모습 등을 보면 『파일 7』이 더 그럴듯하다. 어디까지나 경찰소설로서 말이지만.
덧붙이자면, 린드버그의 아들이 주검으로 돌아오고 2년 후에 범인이 잡혔지만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의문만을 남긴 채 지금까지도 ‘세기의 미스터리’로 회자되는 현실과 달리 『파일 7』은 ‘이상적인’ 형태로 마무리된다. 당시 제 자식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듯 안타까운 마음으로 뉴스를 시청했던 많은 독자가 소설로나마 통쾌한 결말을 마주하며 박수를 치지 않았을까.
글 |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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