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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간 달렸다, 스위스 자전거 여행

대자연의 품속, 바이커의 꿈속.

페달을 밟아 꿈결 같은 스위스를 달렸다.

●7 DAYS BIKE TOUR 땀 냄새 짙었던 일주일

캐리어는 여행의 거울이다. 휴양지라면 쉬폰 원피스, 근거리라면 가벼운 에코백. 짐 가방엔 목적지가 비친다. 내 캐리어엔 행선지를 불문하고 보통 이런 것들이 담겼다: 비싼 셔츠, 각 잡힌 자켓, 헤어롤 그리고 끝없는 화장품, 화장품, 화장품. 지긋지긋하게 날 옭아맨 각종 ‘품위 유지용’ 물건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원피스 대신 바이커 쇼츠, 팔찌 대신 팔토시. 파운데이션 자리는 산악용 쿨링 마스크와 파스가 차지했다. 흙먼지가 거울에 비친다. 

스위스는 사면이 육지다. 그 땅의 반 이상은 산이다. 알프스 산맥이 스위스 남부에서 중부까지 국토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고, 4,000m가 넘는 산이 45개나 있다(참고로 우리나라 최고봉인 한라산은 1,947m다). 경상도보다 좀 더 큰 땅에 이렇게나 높은 산이 많다니. 진정한 ‘산의 나라’다. 국토의 나머지 30%는 고원지대다. 스위스에서 눈만 돌리면 보이는 건 산 또는 벌판. 그도 아니면 강. 

스위스는 절대 평면적인 나라가 아니다. 삐죽빼죽한 산맥과 둥그런 호수, 직선과 곡선이 뒤엉켜 휘몰아치는 곳. 걷고 딛고 달리고 뛰어야 알 수 있는, 말하자면 4D의 세계다. 이런 입체적인 공간은 다차원적으로 봐야 한다. 하이킹부터 기차여행까지 방법은 무수하다. 그중 나는 안장에 오르는 길을 택했다. 

자전거와 함께라면 스위스에서 못 갈 곳은 없다. 1만2,000km가 넘는 자전거길이 닦여 있고, 알프스를 관통하는 싱글 트레일이 지천이다. 고도 2,000m 위에 자리한 17개 이상의 고갯길은 로드 바이커들의 꿈이다. 단꿈 꾸며 쉬기 좋은 바이커 전용 숙소도 많다. 언제든 푸니쿨라와 케이블카에 자전거를 싣고 편하게 산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는 데다, 자전거 렌탈숍도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다. 필요한 건 오직 딴딴한 두 다리뿐.

땀 냄새 짙었던 일주일이었다. 스위스관광청의 ‘100% 우먼 사이클링 투어’에 참여했다. 전 세계 스포츠우먼들과 자전거로 산 넘고 물 건너, 고개까지 넘었다. 인간과 인간의 유대, 인간과 자연의 유대를 쌓아 가는 것. 경쟁보다 과정에 방점을 두는 것. 그렇게 스위스의 속살에, 본질에, 리얼리티에 가까워지는 것. 그게 이번 내 여행의 전부이자, 내가 지켜 내야 할 ‘품위’였다.

두 바퀴를 굴리는 우먼 파워 100% Women Cycling

2021년 3월, 스위스관광청은 스위스 여성 참정권 50주년을 기념해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춰 ‘100% 우먼 캠페인’을 론칭했다. 전 세계 여성들에게 스위스의 자연을 새롭게 탐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여성들의 도전을 응원한다는 것이 캠페인의 취지. ‘100% 우먼 사이클링’도 그 일환이다. 참가자부터 가이드까지 오직 여성들로만 조직된 여성 전용 바이크 체험 상품을 통해 스위스 깊숙한 곳까지 탐험한다. 스위스관광청 홈페이지에서 코스, 난이도, 테마 등에 따라 50가지 이상 다양한 투어를 예약할 수 있다. 


●OLYMPIA FLOW TRAIL 물 없는 바다에서 서핑

나무가 초록을 퍼트리던 날이었다. 시작은 생모리츠(St. Moritz)역. 푸니쿨라에 자전거를 싣고 찬타렐라(Chantarella)역에서 환승했다. 금세 코르빌리아(Corviglia)다. 해발 2,486m까지 단숨에 올라온 이유는 이번 코스의 방점이 오르막이 아닌, 내리막에 있기 때문이다. 

구불구불 펌프 트랙이 굽이친다. 코르빌리아에 있는 16개 트레일 중 난이도 상에 속하는 올림피아 플로우 트레일(Olympia Flow Trail). 코르빌리아역에서 찬타렐라역까지 내려가는 4.2km의 짧고 강렬한 코스다. 1948년 제5회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당시 사용했던 스키 슬로프를 따라 이어지는데, 지금도 전 세계 겨울 스포츠광들의 발걸음이 이곳에 모인다. 오늘 같은 여름날엔 눈이 있을 자리에 흙과 돌이 있다. 스키 대신 산악자전거를 쥐었다. 

“비탈길을 내려갈 땐 안장을 낮추고 엉덩이는 들고, 두 발 높이를 일자로 맞추세요.” 코치들의 조언에도 팔다리가 제멋대로다. 물 없는 바다에서 보드 없는 서핑 스타트. 급커브와 들쭉날쭉한 경사가 물살 매서운 파도와 닮았다. 흙먼지가 물처럼 튄다. 롤러코스터를 안전바 없이 타면 딱 이런 느낌이려나. 내달릴 때마다 가속도가 붙고, 트랙을 점프할 때마다 심장도 같이 점프다. 튀어나온 돌이라도 잘못 밟는 날엔 휴우…, 일단은 눈앞의 길에만 집중하자. 

한 시간쯤 달렸을까. 거칠기만 하던 턴이 부드러워졌다. 안장에서 1cm도 못 떼던 엉덩이를 이젠 10cm는 뗀다. 공포가 스릴로, 스릴이 재미로 슬금슬금 바뀌는 지점. 초심자에겐 버거운 코스지만, 경험자들은 과연 ‘물 만난 고기’처럼 놀 수 있는 곳이다. 몸의 긴장이 풀리자 이제야 풍경이 보인다. 3,000m가 넘는 알프스 고지대 산들이 물결처럼, 꿈결처럼 이어진다. ‘아름답다’는 수식어마저 초라하다. 꿈보다도 더 꿈 같다. 대자연 앞에서 한낱 미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잠시 브레이크를 밟고 그 거대한 품속으로 ‘점프’하는 것뿐이다.

▶올림피아 플로우 트레일

코스: 생모리츠 코르빌리아역~찬타렐라역(총 4.2km)  

난이도:

탑승 바이크: 산악자전거(BMC Fourstroke AMP L, BMC Fourstroke 01, SCOR 4060, SCOR 4060 Z)

Tip 산악자전거는 로드 바이크와 달리 공기압은 낮추고 앞바퀴 쇼크업 소버(스프링의 신축 작용을 억제해 차체를 안정시키는 장치)는 열어야 푹신하고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해진다. 

● ASCONA-LOCARNO 초록을 넘어선 초록

영락없는 이탈리아다. 로카르노(Locarno)와 아스코나(Ascona)의 첫인상이다. 알록달록한 집들과 야자수, 레몬 나무까지. ‘이태리 바이브’가 확실하다. 기분 탓인가 했건만, 지리적 근거가 있다. 

스위스에는 총 26개 주가 있다. 그중 하나가 남부의 티치노(Ticino)주다. 주 경계의 대부분이 이탈리아와 닿아 있다. 언어도 이태리어를 쓴다. 로카르노와 아스코나는 티치노주 남쪽에 있는 마조레(Maggiore) 호수 북부에 서로 붙어 있다. 둘의 교집합엔 이탈리아 말고도 ‘언덕’이 있다. 로카르노는 남부 알프스 산기슭에 있고, 아스코나는 호수와 주변 산악 지형과의 고도차로 인해 언덕이 많다. 가파르기도 무지 가파르다. 그 경사도는 로드 바이크로 올라가면 진짜 ‘뼈가 저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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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페달에 누가 수박 덩어리라도 달아 놓은 것 같다. 밟는다고 밟는데도 속도가 안 난다. 이런 언덕에선 ‘먼저’나 ‘빨리’ 같은 단어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세상엔 빨리 가는 것보다 ‘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순간도 있는 법이니. “이건 경쟁이 아니에요.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몸의 리듬을 따라가요!” 등 뒤로 투어 리더 사라(Sarah)가 외친다. 한 번 더 페달에 힘을 싣는다.

양껏 땀 흘린 뒤 오른 언덕길. 그 끝은 온통 초록이다. 두 도시는 모두 육지 면적의 약 1/3이 산림이다. 초록이 너무 많아 마치 초록에 포위된 기분. ‘여름 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색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초록을 넘어선 초록, 파랑 그 이상의 파랑. 숲과 호수와 하늘이 세상이 정의 내린 색깔보다 더한 색채를 가지고 빛났다. 

▶아스코나-로카르노 

코스: 아스코나~로카르노(총 52.7km)  

난이도:

탑승 바이크: 로드 바이크(BMC Teammachine SLR 01 & R, BMC Roadmachine 01, BMC Roadmachine AMP, BMC Roadmachine 01 AMP X)

Tip: 언덕길이 부담스럽다면 로카르노 여객선 터미널에서 라프로도 디 마뽀(L’Approdo di Mappo) 식당까지의 코스를 추천. 15분 동안 가볍게 마조레 호수를 곁에 두고 달릴 수 있는 평탄한 길이다.

● TREMOLA SAN GOTTARDO 꿈의 길, 꿈의 정의

누군가 허파에 사포질을 하는 것 같다. 숨은 거칠어지고, 목에선 쇳소리가 난다. 말 못 할 ‘그곳’도 무지 쑤신다. 애는 다 낳았다 싶을 만큼(정말로). 바이커들의 애환이라는 안장통이다. 근데 이 모든 엄살이 무슨 소용일까. 난 지금 트레몰라 산고타르도 한복판을 로드 바이크와 서 있고, 내겐 달려야 할 거리가 있다. 

트레몰라 산고타르도(Tremola San Gottardo). 티치노주에 위치한 스위스에서 가장 긴 도로 기념물이자, 중세 때부터 스위스 북부와 남부를 이어온 중요한 루트다. 해발 1,175m의 아이롤로(Airolo)와 2,106m의 고타르 고개(Gotthardpass)를 연결하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포장도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이라이트는 4km에 걸쳐 펼쳐지는 24개 갈지자(之) 모양의 급커브 도로. 300m 높이를 내리막길 하나 없이 계속 올라가는데, 전부 자갈밭이다. 그 옛날, 로마인들조차 거대한 산 덩어리인 고타르를 피해 갔단다. 바퀴가 자갈에 덜덜 떨린다. 

꿈의 베이스는 고통이다. 쉽게 이룰 수 있다면 그건 가벼운 바람이지, 꿈이 아니다. 힘들기에 꿈이고, 어렵기에 꿈이다. 트레몰라 산고타르도는 로드 바이커들의 꿈이다. 잔인하게도, 꿈에 이르는 길은 꽃길이 아니었다. 평범한 포장길이어도 힘들 판에 자갈이라니. 그보다 대체 끝이 있기는 한 건지. 몸이야 고되든 말든, 눈만은 세상모르고 황홀하단다. 흐르는 땀 사이로 고타르 고개의 산맥이 보인다. 콸콸 흐르는 계곡도, 풀 뜯는 소들도. 지구상에 이보다 더 판타지스러운 장소가 있을까.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 기분이다. 겁 없이 자전거 하나만 덜렁 들고서. 산들이 말없이 인간을 굽어본다. 땀이 더 흐른다. 다행히, 혼자가 아니다.

사방에서 ‘아 유 오케이’가 들렸다. 천천히 가도 된다고, 힘들면 쉬어 가자고. 한 모금 남은 물통의 물도 나눠 마시며, 참가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산맥이 되어 탄탄한 응원을 주고받았다. 신체의 고통은 개인이 짊어져야 할 외로움의 영역이나, 공통된 고통은 공유할 수 있는 공감의 영역이었다.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그 앞에선 중요하지 않았다. 우린 혼자인 동시에 함께였다.  

마침내 나타난 라고 델라 피아자(Lago deella Piazza) 호수. 정상이란 뜻이다. 참가자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몇 시간 새 처절한 고단함을 겪어 부쩍 깊어진 얼굴을 하고서. 낙오자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의 꿈은 현실이 됐다. 그 눈물에 담긴 여러 겹의 감정은, 직접 올라가 본 사람만이 읽을 수 있다. 

우리네 세상사의 대부분에 결론 따윈 없다. 글 쓰는 이의 역할은 하나의 결말을 전달하기보다 총체적인 정경을 전달하는 데 있다. 라이딩도 마찬가지다. 이곳에 과정은 있을지언정 결론은 없다. 여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완주 그 자체가 아니라, 완주하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일 터. 그런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등을 밀어 주듯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스위스가 나에게 가르쳐 준, ‘꿈’의 정의다.

▶트레몰라 산고타르도 

코스: 아이롤로~고타르 고개 정상(총 13.4km)  

난이도: 최상

탑승 바이크: 로드 바이크(BMC Teammachine SLR 01 & R, BMC Roadmachine 01, BMC Roadmachine AMP, BMC Roadmachine 01 AMP X)

Tip: 초심자여도 코스의 재미를 맛보고 싶다면 이바이크(E-bike)란 대안이 있다. 전기 자전거라 체력 소모가 적고 평균 속도가 빠르다. 저질 체력일지라도 가뿐히 언덕길을 오를 수 있을 것.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스위스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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