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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땅끝, 해남에서 찾은 맛과 멋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해남에서 맛이 개화했다. 제철을 맞은 신선한 해산물과 비옥한 땅에서 자란 특산품으로 식탁이 가득하다. 해남이 자랑하는 8미를 맛보기 위해 남쪽으로 떠났다.

해남의 '멋'
●공룡은 멸종하지 않았다
해남 공룡박물관

해남 공룡박물관은 천연기념물 394호 해남 우항리 공룡, 익룡, 새 발자국 화석이 한곳에서 발견된 유일한 곳이다. 규모도 국내에서 가장 크다. 400여 점의 공룡 관련 화석과 희귀전시물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높이 21m의 ‘조바리아’ 용각류 화석이 관객을 맞아 준다. 4D 입체 영상관, 어린이 공룡 체험장, 크로마키 포토존을 비롯한 체험장은 어린이들이 좋아할 요소다. 특히 지하 1층에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 알로사우루스 진품 화석은 공룡이란 생명체의 경이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티라노 사우루스가 사냥하는 장면을 모형으로 연출한 중생대 재현실도 볼거리 중 하나다. 익룡의 골격 특징, 용각류 공룡의 목 길이 변화, 해양파충류의 외형 변화 등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생명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진화했는지 해남 공룡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명량해전의 격전지
우수영관광지

월출산과 서해안, 남해 다도해로 둘러싸인 해남은 평평하고 온화한 곳이다. 그러나 온화함 속에 반전이 있다. 격정적인 역사가 깃든 우수영관광지의 얘기다. 

1986년 해남군에서 국민관광지로 지정한 우수영관광지는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와 군사 120여 명으로 300척의 3만 왜군을 격파한 명량해전 격전지다. 케이블카를 타면 400년 전 승전의 감동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케이블카는 두 종류가 있는데, 일반 캐빈보단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을 추천한다. 투명한 발밑으로 초속 6m로 거세게 몰아치는 울돌목 물살과 곧게 뻗은 진도대교가 보이기 때문이다. 건너편 진도로 넘어가면 드넓은 해남 절경이 한눈에 성큼 다가온다. 

해남 우수영관광지에는 산책로도 마련돼 있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조선 수군의 판옥선이 보인다. 내부에는 판옥선 제작법과 명량해전에 대한 설명이 가득하다. 8자 모양의 구부정한 길인 울돌목 스카이워크를 걸으며 파도 소리를 듣는 것도 매력적이다.

해남의 '맛'
●먹거리를 알리다
해남 제철 진미파티

땅끝마을 해남 삼산면 유스호스텔 대강당에서는 매달 ‘맛’ 잔치가 열린다. 해남군에서 주최하는 제철 진미파티 행사다. 움츠러든 소비를 촉진시키고 해남의 먹거리를 알리는 게 행사의 주된 목표다. 냉이 무침, 김부각, 봄깍두기, 매생이 굴젓, 무청 나물, 닭가슴살구이, 봄동 겉절이 등 제철을 맞은 해남의 음식들이 연회장에 즐비하다. 특히 봄부터 6월까지 가장 맛이 좋은 간자미가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오리 새끼인 간자미는 수컷보다 암컷이 살이 부드럽고 탱탱하다. 찜용 간자미는 입과 내장을 손질하고 바람 부는 곳에서 이틀 정도 말리면 꾸덕꾸덕한 찜용 간자미 재료가 된다. 회무침으로 쓸 땐 마름모 가운데 뼈 부분을 자르고, 껍질은 벗겨 낸 뒤 결 반대 방향으로 숭덩숭덩 썰어서 오이, 미나리, 고춧가루, 들기름, 설탕과 버무리면 간자미 회무침이 완성된다. 새콤달콤한 맛이 겨우내 도망간 입맛을 찾는 데 제격이다.

각각의 요리를 선보인 활동가들은 연회장을 찾은 손님에게 해남의 맛을 소개하고 요리법을 공유한다. 밀키트를 제작해 판매하는 이들도 있다. 제철을 담은 건강한 밥상, 벌써 다음 달 메뉴가 궁금해진다.

●15첩 만찬
본동기사식당 갈치조림

고물가 시대에 1만원으로는 딱히 먹을 게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본동기사식당은 여전히 저렴한 가격으로 신선한 해산물과 제철 나물을 제공한다. 기본 반찬만 무려 15가지다. 그중에는 꼬막과 전복도 있다. 가게 입구에 쓰여 있는 ‘허벌나게 환영합니다’라는 사장님의 말씀이 진심인 게 분명하다.

메인 요리인 갈치조림은 어떠한가. 매콤 짭조름한 갈치의 탱탱함이 계속해서 숟가락을 부른다. 갈치조림에 무와 함께 한 자리를 차지한 해남 고구마는 본동기사식당의 아이덴티티다. 갈치조림 국물이 자글자글해질 때까지 밑반찬 여기저기로 젓가락이 분주하다. 반찬 리필도 가능하니 방문하는 이는 누구든 배가 풍선처럼 부풀게 된다. 맛과 양, 가격의 삼위일체가 완벽하다. 너무 과식했다면 식당 앞 땅끝송호해수욕장을 산책하길 추천한다.

●해남식 닭 코스요리
장수 통닭

주방장이 손님에게 맞춰 음식을 제공한다는 뜻의 오마카세(お任せ)가 요즘 대세다. 해남에도 해남식 맞춤 요리가 있다. 50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닭 코스요리를 판매하는 장수 통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리에 앉으면 묵은지, 삶은 달걀, 나박김치, 양파장아찌, 삶은 두부, 수수찰밥이 조용히 들어온다. 이윽고 생 닭가슴살, 다진 닭발, 닭모래집이 회로 등장한다. 젓가락이 갈 수밖에 없다. 삶으면 퍽퍽해지는 닭가슴살은 회로 만나면 이야기가 다르다.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마치 오징어회를 먹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독거리는 식감의 닭모래집도 인상적이다. 

주방장의 초면 기선에 제압당하고 있는 찰나, 굳히기 선수로 닭 불고기가 나온다. 지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10분쯤 기다리면 젓가락질이 허용된다. 닭 불고기를 상추에 싸서 마늘, 청양고추를 넣고 입에 가져간다. 닭 향과 함께 적당히 자극적인 양념 맛이 느껴진다. 한창 배가 부를 때면 회로 만났던 닭이 백숙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무리로 닭죽까지 해치우면 코스요리는 끝이 난다. 온전히 닭 한 마리를 먹었다고 자부해도 좋다. 

●해남 쌀과 물로 빚은 100년 전통 막걸리
해창막걸리

막걸리는 한민족 고유의 전통주다. 막 걸러내서 막걸리라고도 하는데, 그만큼 예로부터 서민에게 사랑받았다는 증거다. 바다의 창고란 뜻의 해창막걸리는 그 명맥을 10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40여 종의 수목으로 형성된 정원 또한 해창막걸리를 유명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주조장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정원에 찹쌀을 찌는 증기가 그득하다.

대표 막걸리는 ‘해창 12도’. 농도가 짙고 걸쭉하며 거친 입자감과 특유의 감칠맛이 일품이다. 설탕의 200배 단맛을 내는 인공 감미료 아스파탐이 들어가지 않은 점도 해창막걸리의 자랑이다. 무감미료란 뜻이다. 오로지 햅쌀, 찹쌀, 누룩만으로 빚어졌다. 그래서 막걸리 특유의 불편한 트림이 적다. 해창주조장은 2014년 농림축산 식품부 지정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택된 이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잔잔한 단맛과 적당한 풍미를 좋아한다면 꼭 마셔 봐야 할 막걸리다.  

글·사진 김민형 기자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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