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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좋고 곡식 많은 섬, 고흥 득량도

‘섬’ 어디까지 알고 있니? 이야기가 있는 섬

득량도

고흥에서 삼시세끼로 전파를 탄 섬은 ‘득량도(得粮島)’다. 신안 흑산도 만재도보다 농어와 돌게 등의 해산물도 풍부했던 곳으로, 이서진이 직접 배를 몰았고, 에릭의 감자 수제비도 독특해 눈길을 끌었었다.


지도를 펴보면 전남 고흥과 보성 사이에 점 하나가 있는데, 이 섬이 득량도다. 면적 1.75㎢, 해안선길이 6.5㎞의 득량도는 도양읍 신흥마을 서쪽 3㎞ 해상에 위치한다.


이 곳에 가려면 소록도 가는 쪽 녹동항에서 매일 왕복 두 번 운항되는 여객선을 타야 한다. 소요 시간은 40분 정도다.

득량도 포구

이 득량도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아군이 왜군과 대치하던 중 식량이 떨어졌던 곳이다. 그래서 비봉리 선소(왜적과 싸우다가 배가 부서지면 고치던 곳)에서 식량을 조달하여 왜군을 물리쳤다. 그때 식량을 얻은 지역이라 하여 얻을 득(得), 곡식 량(糧)을 써서 득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다.


한편, 만을 막아 생긴 넓은 간척지에서 곡식을 구할 수 있게 되어 득량이라는 지명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이 섬에 사람이 처음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때라고 전한다. 원래 장흥군에 속하다 완도군에 편입된 후 득량면 사무소가 관청 마을에 있었다. 1914년에는 고흥군 도양읍에 편입되면서 득량리로 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1976년경 이 섬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연발전 시설 덕으로 24시간 공급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당시, 자가발전기를 돌려서 일곱 시부터 열 시까지만 잠깐 전기를 썼다. 전기가 일시적으로 들어오다 보니 냉장고도 필요 없고, 김치는 통에 담아 우물 속에 넣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먹었다. 발전소의 등장은 마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었다.

득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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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 한 대 정도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골목길, 마을 끝길로 해서 한 바퀴 돌다가 내려가면 우물 몇 개를 만난다. 그 옆으로 지붕이 있고 보호각을 한, 두 개의 큰 우물이 있는데 일종의 배수지라고 해야 할 구조물이다.


두 개의 우물은 이 섬의 주요 식수원으로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우물 안에는 양쪽으로 많은 호스들이 들어 있고, 우물 바닥은 자갈들로 만들었다. 각 가정마다 펌프가 있어 이 물을 퍼간다. 물맛이 유달리 좋다고 한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대형 저수통이 있다. 이 통에다 두 개의 우물에서 나오는 물을 모아두었는데 넘치면 흘러나가도록 했다.


보호각 기둥에는 이 물에 대한 안내판이 걸려 있다. 양철판에 새겨진 글로, 서울 성북동에 살고 있는 이 섬 출신이 쓴 ‘내 고장 물자랑’이라는 내용이다. 그만큼 식수 사정이 좋다. 이 섬에서는 웬만해서는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득량도

우물이 있는 집 앞에서 오른쪽으로 해안길이 있다. 이 길이 선창마을로 가는 길이다. 마주 보이는 높은 산은 ‘성재봉’이다. 이 섬의 최고점으로 223m의 산이며, 북쪽과 동쪽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성재봉을 중심으로 북쪽 해안의 선창마을과 남동쪽 해안의 관청마을에 민가가 집중 분포한다.


관청마을, 고흥만 간척사업을 하기 전에는 부촌이었다고 한다. 녹동항 인근 득량만은 바지락 채취가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옛 말이 되어버렸다.


고흥만 간척사업은 1991년 시작해 1995년에 방조제가 완공되고, 2008년에는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담수호인 고흥호와 농지 1704㏊가 생겨났다. 이 간척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졌고, 고기는 산란지를 잃었다. 따라서 수입원이 없어지니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득량도 포구

사진/고흥군, 참고도서 이재언 '한국의 섬'

글·사진 최홍길 서울 선정고 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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