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재벌 회장들이 ‘체육협회장’자리에 욕심내는 이유
우리나라의 체육 산업을 이야기할 때 대기업은 빠지지 않습니다. 각종 프로팀의 이름에도 기업의 이름이 반드시 들어가곤 하죠. 하지만 대기업이 프로팀을 후원만 하는 단순한 스폰서가 아니란 사실을 아시나요? 대기업 총수들은 전통적으로 각종 체육협회장을 역임해오고 있는데요. 어떤 기업의 오너가 체육협회장을 역임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국제 대회 성공적 개최
1등 공신 체육협회장
2002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에 큰 공을 세웠다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대기업 오너로서 체육협회장을 맡은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죠. 현재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정몽준의 사촌 동생인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맡아오고 있습니다. 정몽규 회장의 경우 축구 프로팀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의 구단주를 맡아오다 현재는 부산 아이파크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국제축구연맹(FIFA) 의원, 동아시아 축구 연맹 회장, 아시아축구연맹(AFC)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체육계에 한자리씩
차지한 ‘대기업 오너’
올림픽 금메달 효자종목인 양궁협회 역시 현대가가 맡아오고 있습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아 13년 동안 재직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다른 협회장이 잠시 이끌어 오다 2005년부터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다시 양궁협회장을 역임해오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양궁협회가 설립될 당시부터 지금까지 수백억 원 규모의 투자를 이어오고 있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을 맡아 400억 원 규모의 핸드볼 전용구장을 설립해 국민체육진흥공단에 기부했습니다. 故 이건희 회장은 소년 시절 레슬링 경험을 추억하며 대한레슬링협회장을 15년 동안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 역시 2014년 대한스키협회 회장을 맡았고, 한화그룹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대한사격연맹 회장직을 그룹 내에서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회장들이
‘체육협회장’ 욕심내는 이유
이외에도 아이스하키연맹을 후원하는 한라그룹, 사이클연맹의 구자열 LS그룹 회장 등 많은 대기업 오너가 스포츠계에 몸담고 있는데요. 대기업 오너들은 왜 체육협회장 등을 맡아오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처음 이들이 체육협회장의 자리에 앉게 된 이유는 권력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스포츠 산업 융성을 위한 경제적 지원에 대기업 오너들을 동원한 것이죠. 축구나 야구, 농구 등의 프로팀 창단이나 1988 서울올림픽 등 국제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대기업의 경제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대기업들 역시 스포츠를 후원한다는 것이 제법 괜찮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기업마다 상황이 모두 달랐겠지만, 대기업 오너들에겐 명예가 필요하기도 했으니까요. 기업을 성장시키면서 발생하는 안 좋은 이미지를 무마시키기에 스포츠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는 분석입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한다는 사명감이나 개인적인 선호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스포츠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권력의 목적과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체육협회, 명예가 필요한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 지금과 같은 관계가 만들어졌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스포츠 발전에 집중해야 해
실제로 많은 기업인이 체육협회장을 맡으면서 이미지 개선에 큰 효과를 보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대한축구협회장을 역임했던 정몽준 이사장인데요. 정 이사장은 2002월드컵과 대표팀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당시 대권 후보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대기업 회장의 명예와 더불어 기업 홍보에 비인기 스포츠 선수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사례로 뽑히기도 합니다. 지난 2008년 SK그룹에서 여자핸드볼대표팀을 활용한 광고를 내보내면서 기업 홍보와 선수들의 경제적 지원이 함께 이뤄진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협회장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독이 된 일도 있었죠. 대표적인 사례로 대한빙상협회장을 맡았던 김재열 사장이 있습니다. 소치올림픽 당시 쇼트트랙 선수단의 성적 부진과 함께 파벌싸움으로 인한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가 발생하면서 당시 빙상연맹 회장이었던 김 사장이 큰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기업인이나 기업의 이미지보다 스포츠 업계의 건설적이고 건강한 발전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업이 스포츠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실제 해당 스포츠 전문가의 의견이 무시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인데요. 기업의 홍보나 협회장의 이미지 때문에 정작 필요한 것을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 체육협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