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다 비워버린 그 굴비밥상 - 광주 광산구 '송정골'
- 굴비, 떡갈비, 꼬막무침, 게장과 함께 다양한 손맛좋은 반찬이 한 가득- 넓고 쾌적한 실내, 대접받는 느낌 지울 수 없는 남도 한상
기억을 더듬어 보노라니 벌써 10여년이 넘은 일이다.
말로만 듣던 굴비, 굴비에 녹차 말은 밥... 그 경험을 처음 한 곳은 목포였다. 목포의 어느 한정식 집에서 굴비밥상을 호기롭게 시켰었다. 맞다. 분명 그랬었다. 6월의 어느 날이었고 그 전 날은 무안에서 짚불삼겹살에 칠게장 발라 양파김치에 한 입 싸먹었었다.
호기롭게 주문했던 그 날의 점심, 사실 그 속에는 "일단은 먹어보고 사진으로 남겨놔야 한다."는 기록에의 목적이 조금은 더 컸었다.
그렇게 얼음 둥둥 뜬 녹찻물에 밥을 말고 죽죽 찢어진 굴비를 얹고 한 참을 고민했다. 동석한 이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것이다.
'찬 물 말아올린 밥에 또한 생선이라니... 이게 안 비릴 수가 있겠나...'
밥 먹기 싫거나 느즈막하니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았을 때, 입맛 없어 물에 만 밥을 먹을라치면, 이미 식어버린 생선구이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반찬이었다. 어떻게 먹어도 만 밥에 뜨는 생선기름과 입 안에서 퍼져나가는 비린맛과 내음은 꽤나 삼키기 힘든 곤욕이었다.
'그래도 먹을 것 천지라 먹는 방식이 발달한 남도에서 이렇게 먹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 우리네 선조들이 얼마나 똑똑했던가...'
눈 딱 감고 한 입 먹어본 그 녹차말은 밥에 얹은 굴비...곰곰히 씹으면서 생각했다.
'선조님들 참 너무하시네... 이 맛있는 것을 그동안 후손들 몰래 얼마나 자신겨?'
광주 광산구청 인근에 자리한 송정골 |
광주 광산구가 가진 다양한 트레킹 코스들을 며칠에 걸쳐 답사한 후, 마지막으로 올라가기 전 무엇을 먹고 화룡점정을 마칠까 고민했다. 아무래도 송정역 앞에 있는 떡갈비가 여러모로 상징성이 있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떡갈비에 굴비에 바지락무침/꼬막무침에 게장까지 나오는 굴비정식(송정골 정식)이 있다는 말에 그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는다. 애시당초 저렇게 줄줄이 읊어대는데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지 않을까?
광주 광산구청 인근, 떡갈비골목에 자리한 송정골은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남도를 상징하는 음식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손맛 정갈하고 게미(개미; '맛'의 남도방언) 가득한 반찬들과 함께 미역국, 떡갈비, 바지락무침, 굴비, 돌게장 까지 어우러지니 미역국을 먹으며 완도, 진도를 떠올리고 떡갈비를 먹으며 담양과 광주를 떠올린다. 굴비에서 목포나 영광을 더듬어보고 바지락무침/꼬막무침은 장흥과 고흥, 벌교를 생각나게 할 뿐더러 돌게장에서 여수를 추억하니... 남도여행 좀 다녔다 싶은 이들이라면 이 한 상에서 지난 여행노트를 펼쳐볼 수 있을 것이다.
1인당 14,000원 (2인이상)의 가격이 주는 위엄을 보라 |
일단 개별 소개보다는 한 상 가득 차려진 전체를 보여주고 소개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메인메뉴'에 해당하는 음식을 외에도 다양한 나물과 김치, 장아지 등이 어우러진다. 녹찻물은 1,000원 추가다. 이는 원래 녹찻물 없이 '대중적'으로 나오는 구성인데, 굴비를 아시는 분들은 시키라는 배려일 것이다. 처음부터 녹찻물이 나온다면 굴비를 모르는 이들이라면 거의 100% 확률로 시원하게 앉자마자 마셔버릴 가능성이 큰 것이다.
기가 막히게 시원한, 바지락 넣은 미역국 |
먼저 식사에 앞서 한가득 나온 미역국을 나눈다. 바지락을 넣어 뽀얗게 끓인 미역국은 미역 자체의 품질이 우수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바지락에서 나온 시원함과 감칠맛이 어우러져 속을 그대로 풀어준다.
미역 자체의 부들부들한 식감에 착 달라붙는 국물의 맛이 "아... 정말 제대로 미역국 한 대접 먹는구나..."하는 감탄을 자아낸다.
돌게장, 전혀 비리지 않고 감칠맛 가득하다. |
돌게장 하면 또 여수가 떠오른다. 지금이야 여수 돌게장 백반이 무한리필 등의 장점을 업고 여수를 대표하는 필수 음식이 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이 돌게장은 남도를 넘어 서해안을 대표하는 밥반찬 중 하나였다. 일명 '박하지'라 불리는 돌게는 껍질이 단단하고 크기는 꽃게에 비해 작지만 풍족하게 잡히는 수산물로 언제나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재료였다.
하지만 게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엄밀히는 양념게장을 더욱 좋아하는 필자에게 이 간장 돌게장은 하나의 방벽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미 다른 찬에서 이 곳의 손맛을 확실히 알아본 터라 큰 걱정 없이 바로 게딱지를 가져간다. 결과는 필자가 이 게장을 거의 다 비웠다 할 정도로 맛나게 먹은 반찬...이라기보다는 일품 요리.
오늘은 꼬막무침이다. |
그리고 이 꼬막무침...아삭아삭한 갖은 채소와 함께 꼬막살이 어우러진다. 새콤달콤한데다 매콤함까지 갖추니 입 안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최고의 요리이다. 이대로 대접에 무침을 덜어 밥을 넣고 비벼먹어도 그만일 것이다.
시원한 무침 속 씹는 맛을 끌어올리는 꼬막살의 탱탱함이 기가 막히다. 벌교쪽에서 맛 본 꼬막정식의 무침보다 솔직히 이 곳의 무침에 손을 더 실어주고 싶다.
두툼한 떡갈비, 그 맛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다. |
잘 다져진 떡갈비 |
떡갈비 또한 앉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송정동이 떡갈비 골목이 있을 정도로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인지라 한 번 맛을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맛 보게 된다.
보통 소, 돼지, 혹은 소와 돼지를 적절한 비율로 섞는 등으로 갈비의 종류가 나뉘어지는데 이 곳은 가격에서 알 수 있듯이 돼지를 쓴다. 잘 다져진 신선한 돼지고기는 달착지근한 갈비양념에 어우러져 육즙과 향기를 가득 품은채 구워져 나온다. 그대로 밥 위에 올리면 황제의 밥상이 부럽지 않다. 과연 식도락의 도시이다. 남도의 밥상이다.
인당 하나씩 나온 떡갈비, 부족하면 추가금액을 내고 추가할 수도 있으니 참조하면 좋다.
드디어 굴비를 맛 볼 때이다. |
정말 맛있는 한 입이다. |
이제 이 밥상의 메인인, 그 이름이 붙은 '굴비'를 먹어볼 시간이다. 시원하게 녹찻물(1,000원)을 시켜 얼음 동동 띄워진 그 찻물에 밥을 만다. 시원하게 적셔진 밥 위에 점원분께서 직접 찢어주신 굴비를 올린다. 굴비는 '조기'만 접한 일반인들도 쉬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말렸으며 뜨끈할 정도로 구워서 나왔다. 오리지널 스타일로 빠짝 말라비틀어진 굴비가 아니기에 오히려 많은 이들이 등용문으로 접하기에 좋은 편이다.
함께 한 이 중에 아직 이런 스타일의 굴비를 접하지 못한 이가 있다. '정말 당신이 생각하는 선입견이 사라질 것'이라며 내 경험을 토대로 음식을 먹기 전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역시나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당연할 것이다. 미심쩍어하며 한 입 가르쳐준대로 입에 넣는 그 모습, 가만히 씹다가 감탄사가 나오는 그 모습... 그래, 난 그 반전까지도 예상했단 말이다.
단품 요리처럼 차려진 것들을 한 바퀴 순회하는 것 만으로도 밥이 다 사라진다. 각자 한 공기씩 추가하여 열심히 광주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불태운다.
만복후에 싹 비워진 밥상, '역시 이 정도는 먹어줘야 촌놈들이 광주에 온 보람이 있지.'하는 생각이다.
쾌적한 실내와 오픈주방 |
"잘 찍어 주시요. 많이 올려주시요."
음식마다 사진으로 담는 내게 점원분께서 웃으시며 말을 거든다. 그 구수한 남도의 말투가 그대로 음식에 스며든 듯 하다. 김치부터 나물류까지 모든 것이 입에 맞기도 힘든데, 정말 제대로 한 상을 다 비웠다.
깨끗하고 너른 실내와 오픈주방으로 위생과 편안한 식사 모든 부분을 채웠다. 어느 분의 말마따나 "대접받는 느낌의 한상"이라는 말이 정확하다. 1인에 14,000원이라는 가격까지 생각한다면, 이만한 가성비도 정말 없을 식당이다.
광주 송정역에 내린다면, 광주 광산구청 주변에 온다면 반드시 기억할 만한 집이다. 아니, 이 집을 다시 한 번 가기위해 없는 출장도 만들어 볼 만 하다.
● 송정골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로19번길 20 / 062-942-9870
● 메뉴 : 송정골정식 (2인이상) 14,000원, 꼬막비빔밥 10,000원, 바지락비빔밥 10,000원, 육전 20,000원 등
● 영업시간 : 11:00 ~ 21:30 (15시부터 16시 반까지 브레이크타임), 2, 4주 일요일 휴무
● 식당 맞은편 교회 주차가능 (닫혀있을 시 클락션 살짝 울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