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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2019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한 영화가 된 이유

※ The Guardian의 「How Parasite became the most talked about foreign language film of 2019」을 번역한 글입니다.

〈기생충〉 인터내셔널 포스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미국 개봉 5주 만에 매출 1,000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11월 13일 기준 1,130만 달러로, 상영관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만큼 매출 증가 폭도 오히려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영화 시장의 규모를 고려하면 내세울 만한 매출액이 아닐지 몰라도 영어 아닌 언어로 제작돼 자막을 띄워야 하는 외국 영화치고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지난해 깐느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은 미국 시장에서 71만 9,000달러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2016년 2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죠. 〈기생충〉의 성공이 얼마나 큰 성공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올 한해 미국에서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제작된 영화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은 매출을 올린 영화도 단연 〈기생충〉입니다.


물론 흥행만 놓고 보면 역대 외국 영화 최고 기록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합니다. 이안(李安) 감독의 〈와호장룡〉은 1억 2,800만 달러,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5,7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죠. 그러나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은 전 세계 매출 1억 1,500만 달러를 기록하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이어갑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최대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기생충〉이 어떤 상을 받을지에 대한 관심도 고조됩니다.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은 떼 놓은 당상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입니다.

지난해 아카데미에서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멕시코 영화 〈로마〉가 외국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쓸 뻔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로마〉는 91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올랐죠. 오스카를 앞두고는 수상 가능성이 가장 큰 작품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로마〉는 쿠아론 감독이 감독상을 받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물론 감독상을 받은 것도 철저히 미국 시장, 영어, 앵글로색슨 문화 중심으로 돌아가는 아카데미에서 기념비적인 일이었죠. 아카데미는 〈로마〉에 비하면 훨씬 더 미국적인, 그래서 ‘안전하다’고 할 만한 〈그린북〉에 최우수 작품상을 줬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영화계에서는 ‘최우수상에 더 어울리는 영화인 〈로마〉가 왜 상을 받지 못했는지’를 두고 많은 말이 오갔습니다. 할리우드가 영화 시장에 이제 막 발을 들인 ‘신참’ 넷플릭스에게 텃세를 부렸다, 사실 〈로마〉가 시종일관 너무 나른하고 따분하다, 아니면 수상작을 꼽는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영어밖에 말할 줄 모르는, 영어로 된 영화에만 익숙한 사람이다 보니 자연히 다른 언어로 만든 영화에 대한 편견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기생충〉이 작품성에 더해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자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과거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던 영화들이 ‘외국 영화’라서 작품상을 받지 못한 사실이 발목을 잡습니다. 물론 외국 영화라서 상을 받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나치게 단정적일 수도 있지만, 영어가 아닌 언어로 제작한 영화라서 짊어져야 했던 짐이 없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은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서구 영화 시장에서 무협 영화의 새 지평을 열며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감독의 연출력에 대한 찬사도 끊이지 않았지만, 아카데미에서는 〈글래디에이터〉에 최우수 작품상을 내줬습니다. 지난해 〈로마〉도 앞선 작품 〈그래비티〉로 오스카 7개 부문을 휩쓴 최고 감독 중 한 명인 쿠아론 감독이 공을 들여 제작한 수작이었지만, 〈그린북〉을 넘지 못했죠.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봉준호 감독.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아예 자기만의 장르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크 코미디와 소름 돋는 장면이 얽히고설키는 가운데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면서도 절제 있게 보여준 작품은 관객들에게 길고 진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앞서 봉준호 감독은 영어로 두 편의 영화를 제작했지만, 〈기생충〉만 한 호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어떨까요? 답을 아는 건 〈로마〉 대신 〈그린북〉의 손을 들어준 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 AMPAS) 회원들(가운데 투표권이 있는 회원들)만 그 답을 알 겁니다.


지난해 영화계는 〈로마〉를 향해 그야말로 쉼 없이 찬사를 쏟아냈습니다. 특히 작품성과 감독의 연출에 대한 평가는 호평 일색이었죠. 〈기생충〉이 그만한 찬사를 받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기생충〉이 자기만의 특색 있는 진솔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단순히 흥행 이상의 문화적 영향력을 발산한다는 점입니다.


칸에서도 그랬습니다. 〈기생충〉이 칸에서 주목받은 건 권위 있는 평론가들의 점잖은 리뷰보다도 젊은 Z세대 봉하이브(#BongHive, 봉준호 감독의 팬덤을 형성한 이들이 소셜미디어에 붙인 해시태그)의 덕이 훨씬 더 컸습니다. 〈기생충〉을 보고 열광한 젊은 팬들은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BongHive로 도배했습니다. 아직 황금종려상을 받기 전이었고, 전 세계적으로 개봉 일자를 조율하는 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중이었습니다.


〈기생충〉은 어느덧 ‘짤의 성지(meme machine)’ 영화가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트위터를 통해 영화 속 장면을 재연하거나 패러디한 ‘짤’들을 숱하게 접했을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배우 박소담이 연기한 기정이의 초인종 노래 ‘제시카 징글(Jessica Jingle)’ 장면일 겁니다. 기정이가 제시카라는 가상의 인물로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독도는 우리 땅’ 멜로디에 기우와 말을 맞춘 제시카의 특징을 노랫말로 담아 흥얼거리며 외우는 그 장면이죠.



영화는 이른바 ‘문화의 세계화’ 흐름에서 대체로 뒤처져 있지만, 어쨌든 미국 영화가 아닌 영화가 이렇게 온라인에서 전 세계적인 ‘현상’을 일으킨 건 분명 흔한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인터넷이라는 환경이 물론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케이팝과 한류의 확산 자체가 인터넷 덕분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터넷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기생충〉이 BTS의 팬덤에 버금가는 팬덤을 확보하기는 아마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기생충〉은 BTS가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한국어라는 외국어로 말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기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빈부 격차와 계층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입니다. 갈수록 심화하는 불평등은 정치적으로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데도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기생충〉은 빈부 격차나 계층 갈등을 노골적으로 고발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이를 적절하게 소재로 다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특히나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틀에 진저리치는 오케이 부머(OK boomer;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낡은 사고방식과 ‘꼰대’스러움이 싫어서 ‘네, 그만 하세요.’라며 말을 잘라버리는 젊은 세대) 세대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습니다.


지난 몇 년간 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는 회원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이 인터넷에서, 젊은 세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기생충〉을 어디까지 인정해줄까요? 아카데미 수상과는 관계없이 〈기생충〉은 계속해서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이어갈 겁니다. 사실 봉준호 감독도 아카데미 시상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쿨하게 말하기도 했었죠.

오스카는 사실 국제 영화제가 아니잖아요. 대단히 지역적인, 로컬 영화제죠. - 봉준호 감독, 벌처와의 인터뷰

필자 뉴스페퍼민트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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