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하다"…코로나 치명률 '세계 1위' 된 벨기에의 비밀
[롬멜(벨기에)=AP/뉴시스]16일(현지시간) 벨기에 롬멜의 한 화장센터에서 보호복을 입은 한 작업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이 담긴 관을 화장 가마에 넣고 있다. 벨기에 정부는 앞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실시 중인 일시 폐쇄(셧다운) 조치를 5월 3일까지로 연장했다. 2020.04.17. |
이탈리아는 오랜 기간 ‘코로나19 치명률 1위'라는 불명예를 지속했지만 최근 그 자리를 내줬다. 새로운 주인공은 유럽연합(EU) 강소국으로 평가받는 벨기에다.
월도미터에 따르면, 벨기에는 22일 오전 9시(현지시간) 기준 확진자가 4만956명, 사망자는 5998명이다. 치명률은 세계 평균인 7.0%를 훌쩍 뛰어넘는 14.6%로 세계 1위(확진자 100명 이하 국가 제외)다. 서유럽의 작은 나라 벨기에는 어떻게 코로나19 치명률 1위 국가가 됐을까.
벨기에의 독특한 사망자 집계 방식..."잠재 사망자도 포함"
벨기에가 세계에서 가장 치명률이 높은 이유는 '독특한 코로나19 사망자 집계 방식' 때문이다. 벨기에는 코로나19가 사망 원인으로 최종 확인되지 않아도, 의심 증상 후 요양원 또는 자택에서 사망한 '코로나19 의심 사망자' 모두를 코로나19 사망자 통계에 포함한다.
벨기에의 바이러스학자 마크 반 란스트는 이 같은 집계 방식을 "멍청하다"고 비판했다. '치명률 1위'라는 오명이 국제적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부정적 여론도 상당하다. 논란이 커지자 벨기에 정부는 병원과 요양원 사망 건수를 구분해 발표하고 있다.
반면 벨기에의 코로나19 과학위원회 위원장인 스티븐 반 구흐트는 "포괄적인 집계 방식은 우리가 필요한 곳에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게 해주며, 긴장감을 조성해주므로 매우 중요하다"며 "벨기에가 그 점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식 사망자 수 적은 유럽국가 "검사 능력의 한계"
벨기에와 반대로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병원 사망자만을 코로나19 사망자로 집계한다. 이는 전체 사망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양원 사망자들을 대폭 빠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프랑스·영국 등 일부 국가는 요양원 사망자를 통계에 포함하고 있지만, 이들 역시 '제대로 집계하지 않는다'는 의심이 팽배하다. 가디언즈는 지난 9일 보도에서 영국 요양원 대표기관인 '케어 잉글랜드'가 요양원 사망자 수를 1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하는 반면 정부가 집계한 사망자는 20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유럽 국가들이 병원 사망자만을 집계하는 이유는 검사 능력의 한계 때문이다. 제한된 검사 능력을 고려하면 고령 또는 기저질환자가 대다수인 요양원 사망자는 코로나19 검사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셈이다.
실제로 벨기에의 치명률은 다른 유럽 국가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높은 편이 아니다. 벨기에에서 집계된 코로나19 사망자 중 44%는 병원에서, 54%는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병원 사망자만으로 재산정한 벨기에의 코로나19 치명률은 세계 평균에 가까운 6.4%다.
[리에주=AP/뉴시스]지난 27일 벨기에 리에주에 있는 한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보고있다. 2020.04.01. |
벨기에의 '포괄적 집계' 방역에 유효할까
치명률 집계 기준에 대한 벨기에 내부 여론은 엇갈리지만, 더욱 포괄적인 형태의 현 기준 코로나19 확산 억제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벨기에에서 지난 19일 새로 병원에 입원한 코로나19 환자는 232명으로 한 달 만에 가장 적었다. 20일 신규 사망자도 168명으로, 전날보다 62명 줄었다.
벨기에의 코로나19 대책위원회의 대변인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이외에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표가 여러 개 있다"면서 위기의 정점이 지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높은 치명률에 따른 높은 경각심이 확산 방지에 오히려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벨기에 집계도, 다른 국가 집계도 저마다의 부작용이 있는 만큼, 유럽 각국은 코로나19 검사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벨기에 역시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모든 요양원 거주자와 직원들을 검사해 코로나19 치명률을 정확한 수치에 가깝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수현 인턴기자 literature1028@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