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노조 경영·자녀세습 포기’ 삼성의 긴급발표 하자마자 대기업과 삼성 반응
2020년 5월 6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기자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015년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가 확산된 이후 5년 만에 이뤄진 대국민 사과다. 그는 4세 경영을 하지 않겠다는 파격 선언과 함께 ‘무노조 경영’에 대해 반성의 태도를 내비쳤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부터 이어져 온 무노조 경영이 81년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이 부회장의 발표에 현재 삼성그룹 직원들과 대기업 노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노사 문제 해결을 위한 모습에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오히려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과연 무노조 경영 포기가 삼성그룹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무노조, 삼성의 성장 동력?
고 이병철 회장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발언은 익히 유명하다. 이 경영 방식은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으로까지 이어져 삼성그룹의 공식적인 룰로 자리 잡는다. 사실상 삼성이 3대에 이르러 강조한 내용은 무노조보다 비노조에 가깝다.
삼성의 비노조 경영이란,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최고의 복지와 성과급, 임금 등을 통해 비노조 경영을 실현하고자 노력해왔다. 그 결과, 지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대규모 노사 분규가 없는 곳으로 꼽히기도 했다.
(위) 실제 삼성전자 노조 와해 관련 문서의 모습 |
물론 직원 전체가 비노조 경영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2011년 6월 삼성에버랜드 노동조합 설립 이후, 삼성그룹 계열사 내 노동조합 설립 신청이 늘어났다. 그간 작은 형태의 노조가 꽤 많았지만,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조합 설립에 나서는 편은 아니었다.
문제는 회사가 노조 탄압에 앞장 섰다는 점이다. 2013년 폭로된 문건에 따르면, 삼성은 삼성에버랜드 노조 부지회장을 사찰해 알게 된 비리로 그를 해고했다. 삼성전자 서비스 역시 노조가 생겨나자 종합상황실을 신설해 신규 가입자와 노조 활동 등을 예의주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비노조 경영과 매우 상반되는 태도다.
폭탄 발언에 상반되는 반응
이미 전적이 있기 때문일까. 삼성이 변화의 의지를 내비치자 일각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시대착오적인 판단이라 평가받았던 ‘무노조 경영’이 기업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의 변화를 받아들인 이들은 “왜곡된 기업 문화가 사라지길 바란다”는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주식 시장의 반응도 주목할 만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대규모 사과가 있던 날, 삼성 엔지니어링의 주가는 7.21%, 삼성물산은 6.61%나 상승했다. 삼성 SDS(3.51%)와 삼성바이오로직스(3.42%), 삼성중공업(2.40%) 역시 소폭 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노조 출범을 알리는 조합원들의 모습 / yna |
그러나 재계는 무노조 경영 종식에 걱정하는 분위기가 풍기는 중이다.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사건이 드러나자 그룹 내 노조 가입률이 증가했다. 무노조 원칙이 사라지면 계열사별로 노조가 생겨나는 건 시간문제다. 이렇게 되면 노조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되려 삼성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특히 삼성의 주력 사업을 향한 우려가 크다. 노조의 파업이 길어지면 스마트폰과 반도체 사업처럼 선제 투자가 필요한 곳의 생산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경쟁 업체가 선두를 달릴 때 삼성그룹이 뒤처지는 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그간 성과주의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은 기업이기에 노조와의 갈등에서 오는 피해가 더 막심할 가능성이 높다.
강성 노조가 보여준 역기능
노조의 역기능이 더 부각되는 이유는 국내 ‘강성 노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현대차 노조다. 이들은 현대자동차 그룹의 부진에도, 임금 상승과 사내 복지를 요구하며 비판받았다. 노조원들의 연봉이 1억 원을 웃돈다는 사실 역시, 영세 노동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다른 노조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은 귀족 노조라는 별명으로, 총파업에도 대중들의 싸늘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와 같은 일부 국내 강성 노조로 인해 오히려 기업 내 고효율 구조가 양산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실제로 현재 노조가 설립된 삼성 계열사 직원 일부는 무노조 경영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무노조를 고수하던 기업 또한 볼멘소리를 내뱉는 중이다. 특히 재계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임원들이 감당해야 할 법적 책임이다. 법원은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으로 인사 관계자는 물론, 의사결정 임원에게까지 유죄 선고를 내렸다.
이러한 판결에 재계는 “무노조 관행이 불법화된 거나 다름없다.”며 노조 공화국으로 번질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국내 최고의 대기업 삼성마저 무노조 경영을 포기한 상황에서, 노조가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내 노조 경영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무노조가 사내 문화로 굳어진 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성그룹은 무노조 경영 종식만 선언했을 뿐, 노조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다. 과연 삼성그룹이 노조 리스크를 겪지 않고, 건강한 노사 문화를 그룹 내 정착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