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하면 떠오르는 그이름… 국민우익수 이진영
2009 WBC 한일전에서 타격하는 이진영. 중앙포토 |
국민 타자, 국민 배우, 국민 가수… 한 분야에서 최고인 인물에게 허용되는 영광스러운 별명이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선 새로운 '국민 ***'이 탄생했다. 당시 우익수로 활약한 이진영(43) SSG 랜더스 타격코치다.
WBC는 한국 야구 중흥의 도약대가 됐다. 2006년 1회 대회 4강,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을 차지하며 식었던 프로야구 인기가 다시 달아올랐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국제대회 선전을 통해 팬이 늘어났고, 2개 구단이 창단됐다.
SSG 스프링캠프가 꾸려진 베로비치 재키로빈슨 트레이닝 센터에서 만난 이진영 코치는 “대표팀 코치로 나도 WBC에 가고 싶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서 못 뽑혔지만 WBC와 인연이 많은데…”라고 웃었다. 이 코치는 2019년 프리미어12에선 전력분석코치로 대표팀에 힘을 보탠 바 있다.
WBC는 이진영 이름 석 자를 알린 대회다. 일본전에서 보여준 멋진 수비는 아직도 팬들의 머리 속에 남아 있다. 한국은 도쿄돔에서 열린 본선 1라운드 A조 최종전에서 일본에 0-2로 끌려갔다. 그리고 4회 말 2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니시오카 츠요시는 강한 타구를 우측 선상으로 날렸다. 하지만 우익수 이진영이 멋지게 몸을 날려 공을 잡아냈다. 만약 타구가 빠져 안타가 됐다면 사실상 승패가 갈릴 수도 있는 상황을 막았다.
한국은 5회 초 한 점을 따라붙었고, '약속의 8회'에 이승엽이 역전 투런포를 터트려 3-2로 뒤집었다. 그리고 9회 마무리로 박찬호가 나와 경기를 매조졌다. 이진영 코치는 "그 대회가 있어서 저도(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그 영상을 본다. 너무 오래됐는지 이젠 화질이 안 좋더라. 그때 내가 26살이었는데, 오래 되긴 했다"고 미소지었다.
김인식 감독은 훗날 당시 수비 시프트 지시가 잘못돼 잡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고백했다. 이진영 코치는 "평상시 시즌 때 내가 하던 플레이는 아니다. 일본을 꺾어야 한다는 집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수비가 나왔다. 이게 뚫리면 끝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악착같이 뛰어갔다.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몸을 날릴 수 있었다"고 했다.
2006 WBC 2라운드 일본전에서 멋진 홈 송구를 펼친 뒤 환호를 받는 이진영. 중앙포토 |
2라운드 일본과 두 번째 대결에서도 환상적인 수비가 이어졌다. 2회 2사 2루에서 사토자키 도모야의 안타가 터졌으나 이진영이 완벽한 홈 송구로 2루주자 이와무라 아키노리를 잡아냈다. 선발 투수 박찬호는 이진영을 끌어안고, 기뻐했다. 한국은 이날 경기에서 3-2로 승리했다.
일본은 당시 화려한 멤버를 꾸렸다. ‘30년 발언’으로 화제가 됐던 스즈키 이치로, 마쓰자카 다이스케, 우에하라 고지, 후쿠도메 고스케, 이와무라 아키노리, 후지카와 큐지 등이 출전했다. 한국도 박찬호와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등 현역 메이저리거들과 이종범을 비롯한 프로야구 올스타급 멤버로 팀을 꾸렸지만 냉정하게 일본보다는 전력이 아래였다.
이진영 코치는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만 개개인만 보면 일본이 우리보다 전력이 위였고, 우리도 인정했다. 일본은 야구 역사도 길고, 인프라도 우리보다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이 최고의 선수들이 꾸린 만큼, 우리도 최고의 선수가 나갔다"고 설명했다.
2009 WBC 일본전에서 승리한 뒤 펫코파크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이진영(오른쪽)과 봉중근. 연합뉴스 |
WBC 당시 대표팀은 탄탄한 수비와 투수력을 앞세워 승승장구했다. 일본을 두 차례 꺾고, MLB 스타플레이어들이 나선 미국도 이겼다. MLB닷컴은 '저들은 도대체 누구인가(Who are these guys, anyway?)’란 기사로 찬사를 보냈다.
특히 이승엽-김종국-박진만-이범호의 내야 수비는 환상적이었다. 이진영 코치 역시 수비력의 힘이 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 코치는 "국제대회에선 실수를 적게 하는 팀이 진다. 우선 투수력이 좋아야 하고. 수비가 좋아야 한다. 공격은 다음이다. 내가 좋은 수비를 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진만이 형을 비롯한 수비가 잘 됐다. 그래서 승엽이 형의 홈런도 나올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1,2회 대회에서 엄청난 성과를 낸 한국은 3,4회 대회에선 1라운드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그리고 6년 만에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 명예 회복에 도전한다. 조별리그에선 숙명의 한·일전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이진영 코치는 "일본 멤버는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다. 나도 일본(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연수를 했지만, 일본 투수들은 정말 기가 막히다. 올림픽 때도 (한국과 4강에서 호투한)야마모토 요시노부(오릭스 버팔로스)를 경계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이번에도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를 빼도 새 얼굴이 많이 보이더라"고 평했다.
이진영 코치는 현역시절부터 상대 습관이나 경향을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이번 대회 성패를 전력 분석으로 꼽은 이진영 코치는 "한 번도 상대해보지 않은 선수가 많다. 내 경우 투수 습관, 볼배합 같은 부분을 많이 준비했고,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경기에 안 나가도 우리 팀 선수한테 얘기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투수인지 알지만, 왜 좋은 투수인지는 타자들이 관찰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무라카미 왜 좋은 타자인지. 무라카미 무네타카(야쿠르트 스왈로스) 같은 강타자들은 투수들이 약점을 잘 알고 들어가야 좋은 경기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WBC 대표팀에 합류할 김민재 코치(왼쪽부터), 최지훈, 최정, 김광현을 격려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가운데). 사진 SSG 랜더스 |
SSG는 WBC에 김광현, 최정, 최지훈까지 세 명의 선수를 보낸다. 특히 입단 직후부터 이진영 코치와 함께 성장한 최지훈이 막차를 탔다. 이 코치는 "정말 축하할 일이다. 지훈이도 굉장히 원했다. 가서 네가 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팀이 이기는 게 더 중요한 대회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최지훈은 공수주 3박자를 갖춘 선수다. 과거 이용규나 정근우처럼 투지 넘치는 플레이도 강점이다. 이 코치는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있지만 요소요소 필요한 선수가 있다. 지훈이가 아마도 백업으로 나갈 것이다. 박해민도 있지만, 현재 리그에서 수비력으론 지훈이가 탑이라고 생각한다. 대표팀에서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본인도 잘 알고 있다. 나가서 자기가 해결하기보다는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뭔지를 잘 알고 있더라"고 제자를 격려했다.
이진영 코치는 2007·08 SK 와이번스 2연패의 주축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코치로서도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이 코치는 "순간의 기쁨이 지나고 생각하니 보람이 느껴졌다. 투수, 수비, 타격 모두 잘 됐다. 타격을 보면 중요한 순간에 선수들이 좋은 집중력을 보여줘서 한국시리즈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 선수들도, 저도 많이 준비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다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있다. 다른 팀들 전력도 좋아졌고, 특히 투수들의 성장이 높아져 고민"이라고 했다.
이진영 SSG 타격코치와 한승진 데이터파트장 사진 SSG 랜더스 |
이 코치는 타자들의 발전을 독려하고 있다. 최지훈과 박성한을 만든 '밴드 매직'이 대표적이다. 어퍼 스윙을 하던 두 선수는 팔에 골프 스윙 교정용으로 쓰이는 밴드를 감고 훈련했다. 스윙 각도를 낮춘 이들은 3할 타자로 발돋움했다.
이진영 코치는 "지훈이는 다리 드는 타이밍이 좋지만,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스윙이었다. 성한이는 군복무 당시 코디 벨린저(시카고 컵스)를 가지고 왔다. 벨린저는 키(1m93㎝)가 큰데, 성한이와 신체조건이 다른 선수지 않느냐. 눈이 좋은데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만드는 스윙을 권했다. 내가 먼저 얘기하기보단 본인이 먼저 물었을 때 그런 조언을 했다"고 설명했다.
제3, 제4의 밴드 매직 키드도 성장중이다. 8년차 내야수 안상현과 신인 김민준이다. 이진영 코치는 "최근 트렌드가 어퍼 스윙인데 팔꿈치가 들리는 현상이 생긴다. 전의산처럼 힘있는 타자는 어퍼 스윙으로 장점을 살릴 수 있지만, 상현이는 그런 유형이 아니라 고치는 중이다. 민준이도 마찬가지다. 재능 있는 선수"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베로비치(미국)=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