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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장어·곰탕에 남도밥상까지…남의 '맛 고장' 나주 클래스


일일오끼 - 전남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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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는 남도를 대표하는 맛 고장이다. 지금은 중소 도시로 전락했지만, 나주는 큰 도시였다. 고려 시대 전국 8목 중 한 곳이었다. 영산강 뱃길 따라 해산물과 특산물이 나주목에 모여들었다. 자연히 먹거리가 발달했다. 지금도 그렇다. ‘곰탕거리’ ‘영산포 홍어거리’ ‘구진포 장어거리’ 등 이름난 맛의 거리가 세 개나 남아 있다. 남도밥상이나 순대국밥을 내는 수십 년 내공의 노포도 수두룩하다.



백년명가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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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향토 음식으로 첫손에 꼽히는 건 누가 뭐래도 곰탕이다. 조선 시대 관아로 쓰인 금성관 앞에 예부터 큰 장이 섰단다. 오일장이 서면 소를 잡았고, 이때 나온 고기로 육수를 내 국밥을 말았다. 그 유명한 ‘나주곰탕’의 시초다. 금성관 앞은 여전히 곰탕 골목으로 이름이 높다. ‘하얀집’ ‘노안집’ ‘남평할매집’ 등 유서 깊은 곰탕집이 모여 있다.


‘하얀집’은 무려 110년의 역사를 헤아린다. 시장 상인을 상대하던 백반집으로 시작해, 1960년대 곰탕 전문집으로 거듭났다. 현재 메뉴는 곰탕(9000원)과 수육(3만5000원)이 전부다.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눈을 끄는 건 한 아름이 훌쩍 넘는 두 개의 가마솥이다. 가게 뒤편에 가마솥 6개가 더 있다. 모두 8개 가마솥에서 온종일 소고기 육수가 펄펄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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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길형선(60) 사장은 “하루 전 도축한 투 플러스 등급의 한우만 쓴다. 그래야 잡내가 없다”고 강조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소고기 육수가 밥알 곳곳에 배도록 수차례 토렴한 다음 소고기를 올려 상에 올린다. 사골과 양지·목심·사태 등으로 낸 국물은 맑다. 그런데도 맛이 깊고 진하다. 잘 익은 김치와 깍두기에서도 백 년의 내공이 팍팍 느껴진다. 무엇보다 인심이 푸짐하다. 그릇을 비울 때까지 큼지막한 고기가 숟가락에 계속 올라온다.



초보는 홍어삼합, 고수는 홍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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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힌 홍어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도 없다. 누군가는 ‘홍어’ 말만 들어도 찡긋 코가 찌그러지고 마는 것이다. 그 자극적인 냄새 때문이다. 나주에서 홍어를 마다하면 ‘서울 촌놈’ 소리 듣기에 딱 좋다.


멀쩡한 생선을 왜 삭혀 먹을 생각을 했을까. 홍어는 주로 흑산도 바다에서 잡힌다. 한데 나주 영산포의 먹거리로 뿌리내렸다. 이유가 있다. 영산강 물길이 막히기 전에는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 뱃길로 일주일 넘게 걸렸단다. 싱싱한 홍어를 먹을 수 없는 내륙 사람에 의해 자연히 삭혀 먹는 방식이 발달한 게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나주 사람은 홍어를 썩혀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영산포 선창가 앞으로 홍어를 전문으로 다루는 식당과 가공업체가 30곳가량 몰려있다. 이른바 ‘영산포 홍어거리’다. 과장이 아니라, 홍어 냄새가 온 동네에서 풍긴다. 가게마다 홍어를 삭히는 노하우가 제각각인데, ‘영산포 홍어’는 홍어를 넣은 항아리를 저온 황토방에 두어 보름간 삭힌다. 정식을 시키면 삼합·찜·전·튀김·애탕 등 홍어 요리를 아우른 밥상이 차려진다. 1인 기준 아르헨티나산은 2만원, 흑산도산은 4만원. “흑산도산이 보다 고소하고 쫄깃쫄깃하다”고 김영수(53) 사장은 말했다. 곰삭은 홍어는 열을 가할수록 특유의 암모니아 향이 더 강해진다. 하여 홍어 초보는 삼합부터 도전하는 게 수순이다. 고수는 전이나 튀김을 공략한다. 모든 메뉴가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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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는 사라졌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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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 선창가에서 강을 따라 서쪽으로 대략 3㎞ 내려가면 구진포 나루터에 이른다. 옛날 구진포에서 바닷물과 민물이 만났다. 덩달아 바다와 강을 오가는 민물장어도 흔했다. 구진포 장어는, 1981년 영암 나불리에서 목포 옥암동을 잇는 영산하굿둑이 생기면서 종적을 감췄다.


구진포 장어거리의 위세는 예전만 못하다. 한때는 일대에 장어구이 집이 열댓 개에 달했지만, 지금은 뿔뿔이 흩어지고 다섯 집만 남았다. ‘거리’라 부르기엔 옹색한 규모다. 하나 저마다 품은 역사는 깊다. 1964년 문을 연 ‘신흥장어’가 장어거리의 터줏대감으로 통한다. 1대 문정숙(81) 할머니의 손맛을 아들 부부가 물려받았다. 특제 양념 내는 건 며느리, 장어 굽는 건 아들의 몫이다. 덕분에 30년 이상 된 단골도 수두룩하다. 영산강에서 장어잡이 하던 시절의 사진이 식당 곳곳에 붙어 있다.


대표 메뉴는 장어 양념구이(1㎏ 7만5000원)다. 고추장 양념구이로 유명한 고창 풍천장어와 달리, 간장 양념을 기본으로 맛을 내는 것이 구진포 스타일이다. 며느리 김덕희(54)씨는 “장어 뼈를 푹 고아 만든 진액에 간장‧배‧감초 등 10여 가지 재료를 넣어 특제 소스를 만든다”고 했다. 야들야들한 식감의 장어 내장 볶음, 구수한 장어탕 또한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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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에 앉아 차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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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게 먹었다면 잠시 허리띠를 풀고 쉬어가도 좋겠다. 도심의 실내 카페보다는 나무 그늘과 바람이 잘 통하는 툇마루가 있는 전원 카페라면 더할 나위 없다. 나주향교 서쪽 담벼락 너머의 ‘39-17 마중’이 딱 그러하다.


1939년 지어진 난파 정석진 가문의 저택을 한옥 게스트하우스 겸 카페 공간으로 꾸몄다. 30년 가까이 방치돼 있던 집을 2017년 되살렸다. 이를테면 옛 쌀 창고는 카페로, 우물은 족욕장으로 쓰인다. ‘ㄷ’자 형태의 안채는 한국과 일본, 서양의 건축 양식이 두루 섞여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셜미디어에서 인생 사진 명소로 뜬 덕인지, 젊은 연인이 자주 보인다.


워낙 넓어 알아서 거리두기가 된다. 숲을 포함해 전체 규모가 대략 1만2000㎡(약 3500평)에 이른다. 카페에서 음료를 받아다 숲속 정자든, 사랑방이든 각자 맘에 드는 장소에 숨어든다. 카페에서 나주 배로 만든 음료와 디저트를 판다. 개중에서 ‘나주배 스무디(7500원)’가 인기 메뉴다. 배는 인근 농장에서 공수한다. 마침 나주 곳곳에서 햇배 수확이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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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한 남도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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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부터 해야겠다. 나주혁신도시의 신진 맛집을 두루 살폈으나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2014년 나주혁신도시가 들어서며 대략 15개 공공기관이 이전했다. 젊은 인구의 유입이 많이 늘어난 것과 달리, 새로운 식문화는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인상이다. “빛가람동엔 프랜차이즈 식당이 대부분이라” “나주읍성 안으로 가야 맛집이 있다” 등등 이주민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원도심을 수소문해 현지 맛집을 찾았다. 금성관과 서성문 사이에 있는 ‘사랑채’는 푸짐한 남도밥상을 받을 수 있는 집이다. 2만원(2인 이상)짜리 밥상을 주문하면, 홍어삼합과 찜을 비롯해 고등어조림‧소라‧된장찌개 등 20가지 반찬이 깔리는데, 하나하나 정갈하고 맛깔스럽다. 단골이 최고로 꼽는 반찬은 삼겹살 숯불구이와 참치알 조림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전남도지사 시절 자주 드나든 식당으로 유명하다.


남고문 인근 ‘진미옛날순대’도 단골이 많은 집이다. 대표 메뉴라는 막창순대국밥(8000원)을 먹어봤다. 27년 내공의 순대는 한 입에도 알 수 있었다. 누린내가 없이 담백했다. 서울에서 먹던 순대국밥과 다른 음식이었다.


나주=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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